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3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홀딱 벗고 새

이득수 승인 2021.06.26 14:26 | 최종 수정 2021.06.27 11:27 의견 0
Sandeep Gangadharan, CC BY 2.0
홀딱 벗고 새(검은등 뻐꾸기, 인디언 뻐꾸기)[sandeep Gangadharan, CC BY 2.0]

어느 밤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습니다. 곤히 자는 아내 때문에 다시 텔레비전을 켤 수도 없어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이 밤을 어찌 샐지 고민하는데 마침 '홀딱 벗고 새'가 우는 소리가 들려 밖으로 나왔습니다.

히히힉힉(와 그라노?)

(잠이 안 와.)

히히힉힉(뭐 때문에?)

(서글퍼서.)

히히힉힉(이 바보야)

(바보라니?)

히히힉힉(산다는 게)

(산다는 게?)

히히힉힉(다 그렇지.)

....

문득 무언가 좀 당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불시에 잠에서 깨어 졸졸 따라다니는 마초를 보기에도 그렇고. 그래서

(넌 왜 안 자?)

히히힉힉(잠 안 와서.)

(뭐 때문에?)

히히힉힉(그냥 슬퍼.)

(이런 바보!)

(....)

멋지게 한 방 먹였다 싶었습니다. 뭐 다 그렇겠지요. 다 늙은 영감이나 외로운 산새나 뭐 특별히 즐거워서 사는 것이겠습니까? 그냥 살았으니 그럭저럭...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