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8 나뭇잎이 푸르던 날에 - 곱디고운 부용꽃

이득수 승인 2021.07.01 19:40 | 최종 수정 2021.07.01 19:53 의견 0

6월말 경 화단에 풀을 뽑다 좀 낯선 풀 두 포기를 발견하고

“이게 무슨 꽃, 혹시 아욱이 아닐까?”

아내의 물음에

“글쎄. 야콘을 좀 닮기도 했고. 작년에 비슷한 걸 뽑지 않고 두었다가 도둑놈가시 도꼬마리를 키웠다고 누님에게 욕을 먹었잖아?”

하고 한참을 의논하다 그중 약한 놈 하나는 뽑고 하나는 두었습니다.

무궁화와 닮은 잎에 접시꽃을 닮은 작은 꽃송이가 무럭무럭 자라더니 어느 날 아침 문득 고와도 너무 고운 붉은 꽃이 피었습니다. 순간

“아아, 부용(芙蓉), 그렇지 목부용!”

절로 탄식이 튀어나왔습니다. 제 나이 38세, 부산시 서구 옛날 법원 앞의 부용동이라는 작은 동사무소에 처음 사무장으로 발령 받아 한 두 번 들어보기는 해도 부산시민 누구도 그 위치를 모르는 인구 1000이 좀 넘은 작은 마을 부용동을 알리려고 ‘부용동을 아시나요?’라는 홍보문을 만들어 전국적으로 알리려고 설치다가 괴짜사무장 소리를 들었지만 덕분에 창의적인 공무원으로 성장한 동기(動機)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제가 그 ‘부용동’의 유래를 알아본 결과 19세기 말 부산에 진출한 일본인이 법수천(보수천) 하구 개펄을 매립할 때 냇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자리에 동그란 모래톱이 있어 처음 중도정(가운데 섬)으로 이름 지었다가 해방 후에 다시 부용동으로 바뀌었는데 그 이유는 옛날의 모래섬에 연꽃이 피어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한시나 한문은 물론 한글사전에도 부용을 찾으면 대체로 연꽃이라고 나오고 간혹 목부용이라고도 나옵니다. 유학의 대가 주돈이(周敦頤)가 <애련설(愛蓮說)>이라는 명문을 썼듯이 연꽃을 즐겨 글감으로 삶는 동양인들을 연꽃을 연(蓮), 부용, 하(荷)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모란과 함께 꽃의 으뜸으로 칩니다.

그런데 부용은 보시다 시피 잎이나 꽃이 접시꽃이나 무궁화에 가깝고 아주 큰 꽃송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아야 연꽃의 느낌이 조금 납니다. 그러니까 개펄에서 자라는 연뿌리가 아닌 땅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宿根草)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부용꽃이 연꽃이 되었을까요? 인터넷에 보니 성천(成川)에 살던 매우 아름다운 기생 연화(蓮花)가 부용(그러니까 목부용)을 좋아해서 유래했다고 하니 기가 막힙니다. 일개 기생이 좋아한 꽃이 멀리 떨어진 한 지역(법정 동(洞))의 이름이 되다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책에서 부용이란 기생의 이름을 흔히 본 것도 같습니다.

사족이 너무 길었습니다만 보면 볼수록 은은하게 고운 부용꽃입니다. 어찌 보면 햇살도 바람도 다 맑은 오후에 곱게 늙은 여인이 홍화씨를 빻아 염색한 붉어도 너무 곱게 붉은 천을 간짓대에 널어 조용히 나부끼는 모습, 또는 그 여인의 약간 건조한 입술 같기도 합니다. 찬찬히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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