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80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지푸라기 잡는 심정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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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2 13:33 | 최종 수정 2021.06.24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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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이웃에서 옛집을 고쳐지으며 파서 버린 늙은 대추나무를 옮겨 심었습니다. 한 겨울이기도 하고 또 나무가 크고 늙을수록 이식(移植)이 힘들어 반신반의했는데 과연 봄이 되어 다른 나무들이 모두 꽃을 피우고 신록이 우거지기까지 싹이 트지 않았습니다.
보기 안쓰러워 파내버리려다가 아까운 생각이 들어 껍질을 벗겨보니 연두 빛 속살이 살아있어 버리지도 못 하고 잘 해서 살기만 하면 1년에 대추 몇 되는 너끈히 딸 것이라고, 또 나처럼 늙고 병든 나무를 함부로 버리기도 뭣해서 그냥 두었습니다.
그런데 사방의 나무들이 모두 녹음이 우거지고 다른 대추나무에는 벌써 열매를 맺는 6월이 되어 슬그머니 몇 개의 여린 싹을 틔웠습니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은인자중(隱忍自重) 얼마나 분발했을까요? 이 소생(蘇生)의 기운이 가득한 공간에서 저 나무처럼 늙고 병든 나도 다시 일어설 꿈을 버리지 않기로 다짐하는데 마침 이웃에 사는 누님이 오는지라
“누님 저 다 죽어가던 늙은 대추나무에서 싹이 다 터네요.”
대견한 듯 말하는 저에게
“야야, 대추나무는 옛날부터 그렇단다.”
아주 무상심하게 말했습니다.
(이런 눈치 없는 할마시 같으니...)
하다 그만 벌쭉 웃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제가 아플 때마다 감자밭, 고추밭에서 한 나절 씩 울기를 두 번이나 한 누님이 아닙니까? 그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제 마음이 너무 절실해서 그런 것을...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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