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75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석류, 이렇게 고운 꽃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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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9 09:31 | 최종 수정 2021.06.2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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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릴 적 석류는 매우 귀한 과일로 초가을에 빨간 석류가 벌어 여러 개의 씨앗이 구슬처럼 희게 반짝이는 속살이 드러나면 길 가는 아이들이 괜히 침을 삼키며 석류나무가 있는 집을 부러워했습니다.
그러나 추석제사 때 석류를 먹어볼 기회가 생기면 작은 열매 속을 대부분 하얀 씨방이 차지하고 석류 알은 겨우 몇 십 개 정도인데 맛도 시큼해 별로였지만 참 귀한 과일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세종대왕이 5세 신동 김시습을 불러 시재(詩才)를 떠보자 김시습이 단번에
석류반개 쇄홍주 石榴半開 碎紅珠
반개한 석류열매 붉은 구슬 부서지듯
라는 멋진 시를 지었고 그 자리에서 상으로 내린 비단 한 필을 너무 어려 들 수가 없어 그 끝을 잡고 질질 끌며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또 껍질 속에 소복하게 들어있는 석류 알이 다산, 특히 다남(多男)을 상징한다고 여겨 민화(民畵)에도 많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석류 자체가 많이 열지는 않는 모양으로 정은숙의 <석류의 계절>이란 노래에는 <메마른 가지에 석류 한 송이>로 나옵니다. 제 기억으로도 아무리 큰 석류나무에도 열매는 한 여남은 개 안쪽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귀하던 석류나무나 석류가 이제 모두 천덕꾸러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상인이 이란 산(産)의 큼직한 석류를 대량으로 수입해 피부와 다이어트에 좋다고 선전하는 바람에 수입석류가 선풍을 일으키며 백화점과 과일가게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석류 하나에 여남은 개 정도의 씨앗뿐인 국산과 달리 수백 개의 씨앗이 들어있는 엄청 큰 수입 산의 승리가 너무나 당연한 일, 지금의 젊은이들은 국산 석류가 있는지도 모르고 제사상에도 수입석류를 올릴 것입니다.(아마 석류의 원산지가 그 쪽인 것 같음)
이제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석류지만 초여름이면 선홍색의 아름다운 꽃을 피워 이제 따먹지도 않지만 꽃이 곱다면서 시골사람들은 굳이 베어내지는 않습니다. 우리 집에도 한 5년생의 석류나무가 올해부터 꽃을 피우기 시작했는데 아마 내년쯤에는 솜씨 좋은 도예가가 구워낸 찻잔처럼 아름다운 열매가 열 것입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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