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70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매실이 남아돌아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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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0 13:00 | 최종 수정 2021.06.14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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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군자 매란국죽(梅蘭菊竹)이니 한매불매향(寒梅不買香)이니 얼음처럼 차갑고 단아하며 지조 있는 꽃으로 인식되는 매실나무꽃 매화를 직접 길러보면 뭐 그렇게 고고하거나 아름답지도 않고 그저 벌레가 잘 꾀는 평범한 과일나무 같습니다.
화투장의 2월 매조처럼 선홍색꽃이 피거나 파랑새가 날아오는 경우도 없고 가시도 은근히 사납고 비루, 진딧물 같은 병충해도 많아 재배하기도 만만찮고 그야말로 자세히 보아야 겨우 연분홍을 느낄 만큼 그냥 하얀 봄꽃입니다.
거기다 장마의 전조인 매우(梅雨), 민망한 병 매독(梅毒)등 느낌이 썩 좋지도 못하고 우매보꾸라는 매실장아찌처럼 어쩐지 왜색의 느낌이 풍기기도 합니다. 물론 매실음료수처럼 긍정적인 요소도 있지만 어쩐지 좀 과대평가된 느낌이 듭니다.
모든 농작물이 다 그렇듯이 한 때 붐을 이룬 매실재배가 이제 과잉생산단계에 이르러 지금은 가격이 수확하는 인건비에도 못 미친다고도 합니다. 저도 화단에 매실나무 한 그루를 심었는데 하필이면 다른 매실보다 한 달 이상 늦게 피는 데다 분홍빛이 거의 없는 하얀 꽃이 피어 특별한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마을이장에게 부탁해 농협에서 유박이라는 좀 비싼 퇴비를 사서 복숭아, 배, 모과등 다른 과일과 함께 듬뿍 뿌려주었더니 올해는 복숭아처럼 커다란 열매가 주렁주렁 익어 온 화단에 향기가 진동합니다. 해마다 전라도의 사돈이 매실을 보내 매실엑기스도 충분해 달리 쓸 일도 없어 그냥 두고 보면서 저절로 떨어져 땅에 뒹굴며 썩어갈 때까지 향을 즐기기로 했습니다. 남아도는 과일, 말하자면 잉여(剩餘)농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 어릴 때는 잉여라는 말이 매우 중요한 화두였는데 그건 보릿고개에 잉여농산물로 불리는 미국산 원조(援助)밀가루로 연명했기 때문입니다. 가난과 보릿고개, 약소국가 등을 떠올리는 어딘가 씁쓸한 단어이며 손창섭의 <잉여인간>이란 소설의 내용 또한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람이나 물산이 모두 그저 넉넉할 정도라야지 너무 남아돌면 오히려 골칫거리가 되는 셈입니다. 물론 사랑도 그렇고요. 아무튼 올해의 명촌별서는 매실향기 가득한 초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시인, 소설가 / 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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