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65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저 모진 생명력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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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3 16:13 | 최종 수정 2021.06.1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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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풍으로 오래 된 소나무 고사목이 넘어지는 바람에 죄 없는 물푸레나무가 벼락을 맞았습니다.
한 움큼도 안 되는 굵기의 나무가 한 아름이나 되는 나무에 치여 줄기가 90도가 넘게 꺾어졌어도 괭이나 도끼의 자루로 쓰일 만큼 단단한 물푸레나무는 악착같이 삶을 포기 하지 않고 마침내 작은 가지를 내밀어 푸른 이파리를 피어 올렸습니다.
그 잎을 물에 담그면 푸른색으로 물든다는 물푸레나무라 그런지 한층 더 진한 생명의 기운이 풍깁니다.
그런데 도괴(倒壞)목의 피해를 입은 것은 물푸레나무뿐이 아닙니다. 거대한 고사목 때문에 산책로가 막혀 저를 비롯한 주로 나이든 산책객들이 왼쪽으로 우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저 혼자 의기양양하게 쓰러진 나무 아래로 통과하던 마초도 요즘은 저를 따라 우회하는데 익숙해졌습니다.
몇 십 년이 될지도 모르는 긴 세월을 저렇게 힘겨운 자세로 살아야 할 물푸레나무를 차라리 베어버리려다 저보다 몇 배나 더 무거운 바위덩어리(癌)에 눌리고 있는 자신만 같아 그만 두기로 했습니다.
저 역시 저렇게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악착(齷齪)의 한자(漢字)를 풀어보면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 기둥이나 무얼(어쩌면 지푸라기라도) 부여잡고 발을 버둥거리며 한사고 버티는 형상인데 저 물푸레나무나 저나 똑 같은 입장인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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