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58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 - 아아, 꿈은 사라지고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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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01 16:01 | 최종 수정 2021.06.02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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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봄은 체력이 많이 회복되어 정신없이 <봄날은 간다>에 열중하는 동안 어느 듯 6월, 초여름이 되었습니다. 특별한 무엇을 찾아내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일상을 나름대로 해석하고 재구성하다 보니 발상이나 전개가 많이 편해져 아직 올리지 못한 에세이도 10편이 넘습니다. 모두가 열심히 읽어주신 분들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여름은 인생의 계절로 치면 2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까지 가장 젊고 건강하며 희망이 가득한 열정의 시기라 할 것입니다. 연두에서 초록으로 점점 짙어지는 녹음과 드넓은 산야를 쓸어가는 싱그러운 바람과 열정이 가득한 개구리 울음소리, 점묘(點描)화처럼 아물거리는 해수욕장의 인파와 다디단 수박향기, 그리고 불현듯 팽만(膨滿)하는 관능(官能)과 후끈한 살 냄새...
그러나 한편으로는 장마와 홍수와 태풍과 열대야는 물론 얄미운 모기떼까지 창궐하는 수난의 계절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 많은 여름의 얼굴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희망적인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를 타이틀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가기로 하겠습니다.
제가 풀어가는 <나뭇잎이 푸르른 날에>는 미당 서정주의 시 <푸르른 날에> 나오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감미로운 긍정의 메시지가 아닌 최무룡과 조영남이 각각 노래한 가요 <꿈은 사라지고>에 나오는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여름이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아아 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의 아쉬움과 회한이 가득한 독백입니다. 결국 젊음이나 여름은 오래 가지 않고 아름다움의 뒤끝은 언제나 쓸쓸하며 인간은 만고불변의 그 철칙에 함몰(陷沒)되어 끝없이 그리워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꿈은 사라지고>의 노래는 최무룡 버전과 조영남 버전이 있는데 최무룡 버전은 만고풍상을 겪은 소박한 중년이 이제 젊은 날의 꿈과 사랑을 다 벗어버리고 쓸쓸하게 애상(哀傷)에 젖는 소박한 회상이라면 조영남의 노래는 아직도 열정이 가득한 눈빛의 노총각이 아쉬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차마 못 잊은 꿈과 사랑을 절규(絶叫)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수많은 이질적 얼굴을 가진 여름은 결국 가을이란 아름다운 퇴로에 빠져들지만 우리는 굳이 태풍이나 홍수, 열대야 같은 질곡을 떠올릴 것이 아니라 그냥 푸르른 녹음과 싱싱한 젊음, 별이 총총한 밤을 떠올리며 가장 열정적인 한 시절을 보내면 될 것입니다. <꿈은 사라지고>의 가사 1절을 올립니다.
꿈은 사라지고
나무 잎이 푸르던 날엔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귀뚜라미 지새 울고
낙엽 흩어지는 가을에
아~~꿈은 사라지고
꿈은 사라지고
그 옛날 아쉬움에
한없이 웁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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