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55 봄날은 간다 - 보리수 심은 뜻은
허섭
승인
2021.05.19 15:32 | 최종 수정 2021.05.26 14:08
의견
0
몸도 마음도 다 지친 날 문병 온 딸을 따라 외손녀 현서(7)가 오자마자 산딸기와 앵두, 보리수를 따고 감자를 캐다 여름 꽃이 흐드러진 화단에서 저랑 사진을 찍었습니다.
같은 또래인 서울의 두 손녀가 못 와 섭섭하지만 힘들여 명촌별서에 나무를 심고 꽃을 길러 손녀가 그걸 즐기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아주 먼 훗날 어느 여름에 이 아이가 제 딸아이를 데리고 와서 오늘처럼 다시 산딸기와 보리수를 따고 화단에서 꽃을 보면 좋겠습니다.
보리수는 여러모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첫째가 새 각시 볼처럼 발갛고 예쁜 열매임에도 맛이 시고 떫어 아예 시금털털한 개살구 수준에도 못 미치게 너무나 맛이 없어 누구나 빛깔만 보고 몇 개 덥석 입에 물었다간 그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뱉고 맙니다.
속담에 “시면 떫지나 말지”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온전히 이 보리수에서 나온 말일 것 같기도 합니다. 거기다 언양사투리로 <물포구>라고 접두사에 물자를 넣어 비하하는 것만 보아도 많이 괄시당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이 하찮은 보리수가 불교경전에서는 부처님이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든지 하는 식으로 매우 성스러운 나무나 수보리라는 제자의 이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한국에선 쌀보다 못한 천덕꾸러기 보리의 보리수가 말입니다.
사실 이 보리(菩堤)수는 불교가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온 나무 보리자나무에서 잘못 유래된 말로 동그란 열매로 염주를 만드는 그 보리자나무와는 전혀 다른 이름만 비슷한 짝퉁나무랍니다.
세상에 물 좋고 정자 좋은 경우가 흔치 않듯이 사과나 복숭아처럼 예쁘고 맛 좋은 과일보다 어느 한쪽이 기우는 과일이 더 많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인체에는 이롭다하니 재미사마 시큼털털한 보리수를 한 몇 개 먹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