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48 봄날은 간다 - 아름다운 엉겅퀴 꽃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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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19 15:47 | 최종 수정 2021.05.2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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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보이는 식물이 가시도 사납고 이름도 억샌 엉겅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예쁜 새색시가 화장할 때 쓰는 붓처럼 부드러운 느낌의 진자주 빛의 꽃이 참 곱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엉강꾸라고 불렀는데 잎에 가시가 있어 소도 잘 먹지 않고 꼴을 베는 초동들도 기피하는 아주 기분 나쁜 풀이었지만 유독 자줏빛의 꽃송이가 크고 엄지손톱만한 말벌이 늘 붙어있어 꿀이 참 많은 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20, 30년 전 엉겅퀴가 간에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약초꾼은 물론 등산객까지 너도나도 뿌리째 캐가는 바람에 엉겅퀴가 구경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도 간암수술을 받고 수많은 사람이 간에 좋다고 권하는 약과 식품, 그걸 다 먹으면 병이 낫기보다는 배가 터져죽을 약방문 중에서 평소의 음식에 속하는 부추(정구지), 바지락과 함께 엉겅퀴를 차로 끓여먹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농업학교동창 하나가 등산길에서 엉겅퀴군락을 발견했다고 해서 아내랑 셋이 채취하러 갔는데 자주 꽃이 만발한 엉겅퀴의 바다를 보고 아내가 이제 우리 영감은 살겠다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때 잘라온 엉겅퀴 잎으로 차를 마시고 씨를 뿌려 집 안팎이 온통 엉겅퀴 밭이 되었는데 이를 본 아들이 인터넷을 검색해 엉겅퀴 추출물로 만든 미국산 알약을 여러 통 사다주어 한동안 먹다 말았습니다. 동서양이 다 약으로 먹는다니 아무튼 약효는 있는 모양입니다.
텔레비전을 보니 전라도 쪽에서는 어린 새순을 나물로도 먹고 또 구소련 권 어느 나라는 저 엉겅퀴 꽃을 국화(國花)로 삼는 나라도 다 있었습니다.
몸에 좋은 약이 아니라 눈에 좋은 꽃이라고 생각하고 야외에 나가시면 유심히 한 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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