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시인의 명촌리 사계(四季) 56 봄날은 간다 - 그리워라 돌냉이김치
이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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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6 14:11 | 최종 수정 2021.06.0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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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식물이 돌냉이입니다. 돌냉이(돌나물, 돈나물)는 보통 언덕의 아랫부분이나 돌 틈에 피어나기를 좋아하고 평지에는 잔디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한국의 들녘에선 좀 특이한 식물로 일반 잡초와 곡식과는 달리 다육식물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아무데서나 잘 자라며 특히 바위나 돌 틈에서 자라는 놈이 잎이나 줄기가 튼실하고 불가사리처럼 생긴 노란 꽃도 예쁘게 핍니다. 땅이 기름지거나 평평하면 이상하게 졸아들어 볼품이 없지만 음식물 찌꺼기를 던져둔 거름 밭의 돌 틈이나 자갈밭에 불꽃처럼 번져나가는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를 느낄 따름입니다.
요즘은 한겨울에도 돌나물이 식당에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별미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인공재배도 하는 모양입니다만 예전에는 주로 들판의 돌담이나 논두렁의 수로 옆에서 많이 뜯어다 주로 돌냉이 김치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시원함이 단순한 시원함이 아니라 시원함에 싱싱함과 개운함을 합친 것 같은 아주 깊은 맛이 났습니다.
20대에 고향을 떠나 40이 넘어 초등학교 동창회에 가서 정달모라는 친구의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아침에 오랜만에 노모가 담아준 돌냉이 김치를 먹고 탄복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 후 아내에게 가끔 이야기하면
“그 까짓 것 내가 못 만들까 봐?”
하면서 선뜻 만들지 않는 것이 역시 새로운 도전은 두려웠나 봅니다. 그리고 팔순이 다된 누님들도 이제 새삼 그걸 만들 마음은 없지만 그 김칫국물이 시원한 것 많은 인정한다면 웃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저 돌나물 초무침은 건강식품으로 포장되어 미래의 마트나 식탁에 자주 등장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20년이 지나면 촌사람들이 먹던 본래의 ‘돌냉이 김치’라는 단어는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개인택시를 운행하던 그 달모라는 친구는 성품이 소탈하고 인정이 많아 객지에 나갔던 동창들이 돌아오면 늘 반갑게 맞아주며 동창회 모임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당뇨가 심해 음식도 많이 가려야 하는 형편에도 객지 친구가 오면 자기는 이미 술도 매운 음식도 못 먹는 판에 중태기 매운탕을 사주며 친구들이 먹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또 그 힘든 몸으로 동창회장을 맡아 등산행사에는 해발 1200미터의 신불산에도 오르면서 늘 밝은 모습을 보여 우리 동창들에겐 그 이름 석 자 자체로 ‘고향 언양’과 같은 친군데 당뇨로 오래 고생을 하다 재작년에 그만 먼 길을 떠났습니다. 명복(冥福)을 빕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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