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2)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1장 1894년 봉당골

1. 1894년 봉당골 ②한겨울 차꼴댁에 연꽃이 피다

이득수 승인 2022.01.01 21:07 | 최종 수정 2022.01.03 18:45 의견 0
ⓒ서상균

그러니까 재작년의 봄날이었다. 강남제비 돌아온다는 삼월삼진, 먹고살만한 부잣집에는 꽃피고 새 우는 춘삼월호시절이지만 곡기 떨어진 비렁뱅이들이야 목구멍에 풀칠하기가 가장 힘든 그야말로 보릿고개의 첫 고비였다.

그날은 며칠을 내리 굶으며 시퍼런 쑥물만 들이키다 끝내 붉은 피 한 모금과 진 초록색 쑥물을 토하고 죽어간 아비의 제삿날이었다. 겨우겨우 멧밥 한 그릇을 떠놓고 꽁꽁 숨겨두었던 명태 한 마리와 홍시 하나, 대추 일곱 개로 제사상을 차리던 어머니 차꼴(茶洞)댁이 아궁이 맞은편의 땔감 밑을 이리저리 부지깽이로 파헤치다 물동이와 간장독을 놓아둔 살강 밑과 온 정지를 뒤지더니 혀를 끌끌 찼다.

그리고는 뭔가 허술한 제사상을 손으로 한번 쓰윽 훑고는 무서운 눈초리로 복성이를 쳐다보았다.

“니제? 니가 묵었제?”

땔감 밑에 묻어둔 알밤을 말하는 것이었다. 설날의 명절제사와 초봄의 기제사에 쓸려고 묻어둔 알밤이 불을 땔 때 하나씩 불거지면 아직은 많이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나씩 주어먹다 마침내 바닥이 난 모양이었다. 늘 굶주린 데다 돌멩이라도 소화시킬 한창 나이라 망설이거나 생각할 겨를이 있을 리 없었다.

“하나도 안 남았나? 나는 불 때면서 나오는 족족 하나씩 주워 먹어도 그렇게 바닥이 날 줄은 몰랐네.”
“에이, 불효막심한 자식이로고. 제사상엔 의례히 조율이시(棗栗梨柿) 순서라는데 빰이 없으면 우짜노 말이다.”
“엄마, 마 아부지가 다 알아서 새길 끼요. 자식이 배가 고파 묵었는데 우짤끼요? 굶어죽는 것보다는 안 났나? 아마 귀신처럼 알아서 이해할 것이요.”
“에라이, 썩을 놈. 지 애비를 닮아서 말 하나는 청산유수라, 누가 서당집자손인 줄 모를까 봐서...”

벌써 한 달 가까이 눈이 내리고 있었다. 동짓달의 햇솜처럼 부드럽고 가볍던 눈송이는 겨울이 깊어지면서 조금씩 크고 탐스럽지만 마침내 앞이 보이지 않는 빼곡하고 차가운 눈보라가 되어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마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늘과 소나무와 밭둑과 마른 고춧대까지 봉당골전체가 어둡게 눈밭 속으로 가라앉으면 움막집의 두 모자는 어느새 눈발 사이로 녹아들듯 고요한 정적에 묻혀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눈발이 옅어지며 노란 햇살이 잠깐 오두막을 비추는 한낮에 조심스레 문을 열고 마당에 나와 보지만 이내 어문고개(운문령)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에 실려 사람이든 짐승이든 차마 눈도 뜨지 못할 거친 눈보라에 동면하는 산짐승처럼 자고 먹고, 먹고 자고, 자고 또 자는 깊고 깊은 적막에 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밤새 퍼붓던 눈발은 다시는 해가 뜨지 않을 것처럼 점점 눈송이가 굵어져 가뜩이나 낮고 평평한 봉당골의 흙담에 억새지붕으로 어설프게 엮은 외딴 오두막을 삼켜버렸다. 그 흐릿한 지붕 위로 흐린 하늘과 신불산이 덩어리째 칙칙한 어둠속에 녹아내리고 그 질긴 눈발에도 재 너머서 시작된 산불은 벌써 며칠 밤을 잉걸불속의 철사토막처럼 신불산의 능선을 따라 빨갛게 타오르고 있었다.

“눈 먼 토까이라도 한 마리 걸맀을까?”

복성이가 바지춤을 추켜올리며 축담으로 나와 짚신을 찾아 신었다. 가뜩이나 작은 키에 살점이라고는 없어 족제비처럼 좁은 얼굴에 핏발선 눈동자만 반들거렸다. 휘잉, 찬바람이 눈발을 한 움큼 목덜미에 퍼붓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눈을 털던 그는 부르르 몸을 떨며 몸서리를 쳤다. 그 엄동설한에도 그의 바지저고리는 솜을 넘지 않은 무명 홑바지였다.

울타리도 사립문도 없는 집이라 두어 발 되는 마당을 벗어나면 바로 덕천역의 보발이나 파발이 다니던 한길이었다. 추워서 그런지, 태평무사해서 그런지 근래는 한성에서 부산포로 향하는 마발의 말발굽소리를 들은 지도 오래고 걸어가는 보발꾼을 구경한 적도 가맣게 기억이 없었다. 세상이 변해서 한성에는 나무도 기름도 없이 잘만 타는 번쩍번쩍 번개 같은 불이 대궐을 밝히고 실처럼 가느다란 줄로 서울서 부산포까지 곧바로 말을 주고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대궐이 있는 한성에 앉아서 삼천리강산의 소식을 바로 알 수 있으니 굳이 벼슬아치를 파견하거나 파발을 띠울 필요가 없으니 언양현의 객사나 덕천역의 말도 무용지물이 되고 만 모양이었다. 이제 곧 아무 쓸모가 없어진 덕천역의 역마나 부로산의 봉수대나 방터의 신원, 어음의 보통원, 덕현의 석남원 같은 원(院)들도 없어진다는 말도 돌았다. 겨우 몸을 누일 곳을 마련한 판에 역이 없어진다면 이 보잘 것 없는 움막집마저 사라지고 다시 또 어딘가를 떠돌아야 할지도 몰랐다.

ⓒ서상균

처음 복성이내가 양산 큰돌(大石) 마을에서 이사를 오던 10년 전만해도 사흘이 멀다 하고 뽀얀 먼지를 날리며 언양에서 양산으로 또는 양산에서 언양으로 힝힝 사납게 콧김을 내뿜는 파발마(擺撥馬)가 달리고 봉꼴산으로 불리는 부로(扶老)산에는 낮에는 시꺼먼 연기로, 밤에는 새빨간 불빛으로 저 남쪽 끝의 부산포에 나타난 이양선(異樣船)이나 변고를 대궐이 있는 한양에 기별하기가 급급했고 길갓집인 억새지붕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았다.

이제 그 역마나 파발은커녕 걸어 다니며 소식을 전하는 역졸, 보발(步撥)마저 통 보이지가 않으니 어쩌면 곧 천지가 개벽된다거나 조선이 망해 임금이 물러나고 팔도강산이 되놈이나 왜놈들의 세상이 된다는 말이 진짜인지도 몰랐다.

눈밭을 천천히 걸어가는 발길에 뭔가 투다닥 걸리는 것이 있어 걸음을 멈추고 눈 속을 헤집던 복성이 퉤 침을 뱉으며 말라붙은 말똥 한 덩이를 눈밭에 팽개쳤다.

‘내가 배를 곯아 헛것이 보이는가, 하긴 개 눈에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더니...’

다시 천천히 한참을 걷자 눈앞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장승이 눈발을 뒤집어쓰고 그를 맞았다. 언양에서 양산, 동래를 거쳐 부산포로 가는 첫 번째 고개를 지키는 장승으로 사람들은 이 장승 한 쌍이 있다고 이 고개를 장심배기라고 불렀다. 고개 아래 작괘천을 건너 뒷벌을 가로지르면 드넓은 중남뜰과 새 뜰이 나오고 원이 있는 방터를 지나 두 번째 고개인 새빨간 황토로 질그릇을 빚는 옹기점을 지나면 양산고을로 접어들 것이었다.

‘장승은 참 좋겠다. 먹지 않아도 되고...’

지난여름 작천정 어름의 돌부처 벅수를 보고 근동의 아낙들이 아들을 낳기 위해 돌로 코를 갈아서 돌가루를 떼어가도 아무 것도 모른다고 저를 죽인다고 써 놓은 종이쪽을 보고도 검은 것은 먹이요, 흰 것은 종이로다, 하고 희희 웃는 까막눈이 우리 서방보다도 더 바보등신 벅수라고 깔깔 웃던 생각이 났다. 그런데 이젠 바보든 등신이든 벅수든 비록 맨발로 눈발에 젖고 서있더라도 이 길고 어두운 겨울을 먹지 않고도 버틸 수 있는 장승마저 그냥 부럽기가 한이 없는 것이었다.

“아이구 냉그라버라. 엄마는 호박풀데기를 맹그나, 오소리를 잡나?

연기가 자옥한 정지문을 열고 복성이가 들어서는데

“어서 온나. 벌써 호박풀데기를 안칬다. 니는 그 칠기나 좀 쪼개가꼬 가루나 받치지.”

빈손으로 들어오는 게 민망한 복성이게 어미가 신이 나서 말했다. 확실히 오늘은 어딘가 몹시 들뜬 모양이었다.

“아니. 엄마, 오늘은 호박풀데기만 무믄 안 되겠나? 오늘 하루만 살 것도 아니고.”

“그럼 그래라. 조금만 기다리면 풀데기가 익을 끼다”

어미는 연신 웃고 있었다. 그런 어미를 바라보는 복성이의 눈앞에 5년 전 아비가 죽기 며칠 전의 광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망해도 참 오지게도 망했지. 더럽게도 망했지.”

7년 전, 벌써 몇 년째 자리보전을 하며 시난고난 앓던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가 내뱉은 푸념이었다. 아버지는 외면하듯 고개를 외로 꼬고 대답이 없었다.
“양반꼬랑대기면 뭐 하고 공자맹자를 읽으면 뭐하능교? 차라리 무시꼬랑대기라면 삶아묵기라도 하지?”
“...”
“옛말에 없는 집에 제사 닥치듯 한다더니 다 망한 집안에 남은 것이라고는 문지 폴폴 나는 족보 책하고 제사밖에 더 있능교? 거처할 집 한 채, 땅 한 쪼가리 없는 판에 제사는 와 그래 자주도 닥치고 사람 앉을 자리도 없는 오두막에 굴러다니는 병풍에 놋그릇에 목기며 촛대는 다 뭐 할 끼요? 하긴 그것도 큰 재산이라고 지난 봄 보릿고개를 큰 집에서는 유기를 팔아 넘겼다는 구먼. 치마 한 감 떠서 큰님이도 치우고...”
“...!”

말은 않았지만 아버지의 눈빛이 험악해졌다. 멈칫 놀란 어머니가

“내가 뭐 없는 말 했나? 양반집에 시집간다고 몸종 삼월이까지 딸려서 시집 온 내가 거처할 방이 없어 십칠 년을 같이 지낸 삼월이년을 돌려보내고 내손으로 물을 여다 밥을 짓고 시집살이만 지독하게 했지. 명색 서당훈장을 지내며 밥술깨나 뜨는 신씨네들을 가르쳤다면서 우째 땅 한 쪼가리 없이 다 팔아묵었노? 층층시하 시집살이라도 한 자리에서 십 년도 채 못 채우고 둔터에서 구늪으로, 구늪에서 대석으로 남의 집 섭포(夾戶)살이를 몇 년이나 했노? 명색이 양반이라카면서...”
“...!”

말은 않았지만 두 눈이 활활 불타올라 끄응 신음소리를 내고 돌아눕던 아버지는 이튿날 새벽 눈을 뜬 채 죽었고 이웃마저 없는 허허벌판이라 읍내에서 솜 장사를 하는 6촌과 구늪의 6촌들이 쌀 한 말씩을 가져와 급한 대로 겨우 초상을 치렀던 것이었다.

모처럼 호박풀데기를 끓인다고 넉넉히 불을 때자 부엌으로 통하는 정지문에 얼룩덜룩 불빛이 너풀거리고 방바닥이 조금씩 따뜻해지면서 온몸이 노골노골 풀리며 흐물흐물 잠이 몰려오는데 때맞춰 늙은 호박과 팥이 익는 들쩍지근한 냄새가 풍겨오기 시작했다.

“벌씨러 다 익었나?”

어미가 정지문을 나가 호박풀데기 두 대접을 얹은 개다리소반을 들고 들어왔다. 그동안 옳은 밥이 아닌 메밀묵이나 삶은 도토리, 칡뿌리로 때우던 끼니라 잘 꺼내지도 않았던 배추김치와 국물김치도 꺼내 모처럼 상이 푸짐했다.

상이 놓이자 말자 아직도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뜨거운 죽을 후후 불며 떠 넣은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어미가

“야야, 이기 무슨 소리고?”

문밖으로 쫑긋 귀를 세우고 물었다.

“바람소리겠지. 새 한 마리, 짐승 한 마리 얼씬 않는 이 눈밭에 무신 일이 있을 끼고?”

잠시 숟가락질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던 복성이가 눈발 속으로 뭔가 차르륵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듯도 하여

“바람이겠지. 바람에 수숫대 흔들리는 소리겠지. 엄마도 어서 잡수소.”

고개를 흔들며 어미에게 숟가락을 쥐어주어 모자가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는데

“어어, 어어어, 어어어...”

방문에 커다란 산짐승이라도 나타난 듯 시꺼먼 그림자가 출렁거리더니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떨어져 나갔다.

“우야꼬! 이기 무슨 일이고?”

차꼴댁의 고함과 함께 모자가 뛰어나가는데

“사람이 죽었다! 사, 사람이 죽었다!”

복성이 커다랗게 소리치는데

“이이다. 살았는지도 모린다!”

어느새 정신을 차린 차꼴댁이 쓰러진 사람을 흔들어 깨우며 눈꺼풀을 뒤집어 보고 있었다.

“살았다. 아직 숨이 붙어있다!”

모자가 낑낑대며 송장처럼 뻗은 낮선 방문자를 방으로 옮겼다. 머리를 땋고 치마를 입은 것으로 보아 여자, 그것도 처녀가 분명한데 키가 엄청 크고 허리통도 굵었다. 사내라면 엄청난 용력을 쓸 장사였을 것이었다.

“여기 따신 데 눕히고 손발이랑 가슴을 주물러보자. 아니 니는 정지에 나가서 물부터 낋이라!”

갓 쉰이 넘었지만 이미 호호백발 노파가 된 차꼴댁의 목소리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복성이가 미지근한 물을 커다란 기명(器皿)통에 가득히 담아 방으로 돌아오자

“살았다. 숨이 돌아왔다. 니는 물만 주고 나가서 호박풀데기나 새로 뎁히거라.”

낮선 처녀의 왼쪽 가슴, 심장을 문지르던 어미가 정지에 대고 커다랗게 고함을 질렀다.

“그래 맞다. 연꽃이다. 이 한겨울에 우리 집에 연꽃이 피뿐 기다.”

이제 말이 달리지 않는 치도(馳道)에 노란 민들레가 피면서 새들이 포릉포릉 날고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피어나며 봉당골에 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계속>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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