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이보기 기출이 ②연날리기로 겨울을 보내고
비단 이번 일이 아니고 위기는 전에도 또 한 번 있었다. 기출이를 데려오고 한 달이나 지났을 때였을까.
한결 밝아진 치만이에게 이젠 그 딱딱한 천자문(千字文)보다 이야기꺼리가 있어 알아듣기 쉬운 명심보감(明心寶鑑)을 가르쳐 구체적인 글자나 문장은 아니더라도 남의 생각도 알고 세상의 이치도 깨칠 겸 시작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였다.
어느 날 저녁 잠자리에 들었는데
“위 선자는 천보지이 복이요. 위 불선자는 천보지이 위악이니라.”
뜻밖에도 두 도령이 잠든 방에서 낭랑히 명심보감을 외우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었다. 열심히 가르치기는 해도 아직 알아듣는지 아닌지도 모르게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던 치만이가 언제 저렇게 줄줄 외우는가 싶었는데 자세히 듣고 보니 아닐까 다르랴, 치만이가 아닌 이제 일곱 살 난 기출이의 목소리였던 것이었다.
허어, 거 참 희한한 일도 있구나. 여섯 살짜리가 배우지 않은 명심보감을 다 외우다니, 생각하다 잠이 든 석암선생은 이튿날 조반을 마치자 말자 호방댁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들어야했다.
집안일에 신경을 잘 쓰지 않는 호방이 이네 현청이 아닌 군청으로 일을 보러 나가기 무섭게 볼이 잔뜩 붓고 입이 튀어나온 호방댁이 사랑채로 찾아왔다. 그리고는 미혼의 딸을 넷이나 키우는 집에 이 무슨 해괴한 일이냐면서 저 굴밤만한 녀석 기출이를 당장 내보내야겠다고 했던 것이다.
뜻밖의 방문이기는 해도 그녀가 찾아온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한 석암선생이 도대체 왜 그리시냐고 능글맞게 반문을 했을 때였다. 호방댁이 이건 뭐 참 입으로 담지도 못 할 해괴한 말이니 아무소리 말고 기출이를 내보내거나 정 억울하면 기출이가 어젯밤에 네 딸들이 기거하는 본채 쪽을 향해 몇 번이나 중얼중얼한 욕을 다시 한 번 해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 제서야 정색을 한 석암선생이 그건 욕이 아니라 명심보감이라는 책의 첫 구절이며 원래는 치만이가 배우던 내용인데 치만이는 평소 소리 내어 외우기를 잘 하지 않아 그렇지 치만이 역시 늘 그렇게 발음하는 구절이라고, 그 말이 거기를, 그러니까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그곳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보답한다'는 뜻이라고 장황히 설명했지만 통 알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하긴 그 때까지만 해도 호방댁이나 네 딸은 그저 문종이에 먹물로 세로로 흘려 쓴 춘향전, 심청전, 조웅전 따위의 이야기책이나 보며 언문을 익혔을 뿐이지 굳이 진서(眞書)라 불리는 한문까지를 배우지 않았으니 말뜻을 알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기출이가 불려왔다. 욕을 했다, 그런 뜻이 아니었다, 설왕설래 시끄러운 판국에 호방이 나타났고 자초지종을 들은 후
“허허, 그 참. 딸을 넷이나 키우다보니 별일이 다 있는구먼. 저 조그만 아이가 너무 영리해서 탈이야. 어깨 너머로 들은 것을 낱낱이 외운 것이 기특할지언정 해도 욕을 먹을 짓을 한 건 아니니 임자는 너무 추달하지 말구려.”
라면서 수습이 되었던 것이었다.
공부에 흥미가 없는 치만이는 석암선생이 본가로 돌아가거나 낮잠을 즐기는 오후가 가장 홀가분하고 편했지만 좋아하기는 기출이도 마찬가지였다. 훈장 석암선생이 대문을 나서거나 목침을 찾아 눕는 순간 늘 맹맹하던 치만이의 얼굴에 금방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말은 없이
“...?”
기출이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어서 밖으로 나가자는 채근이었다.
처음에는
“구구우 구구 구구우 구구.”
소리 질러 앵두나무 그늘에서 열심히 땅을 파 지렁이나 굼벵이를 잡는 한 무리의 닭들을 불러 싸라기나 등겨를 뿌려주었다. 무심코 모이를 먹는 암탉에게 갑자지 빨간 벼슬이 당당한 수탉이 볏을 물고 등 뒤로 올라가 두어 번 껍죽대다 금방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내려오는 것을 구경하곤 했다.
그런데 치만이도 그게 무슨 일인지 아는 모양으로 기출이보다 더 열심히 모이를 주고 괜히 암탉을 빙빙 돌다 재빨리 볏을 물고 등을 타오르는가 하면 어느새 땅에 내려와 시침을 떼는 수탉을 보고 벌쭉벌쭉 웃곤 했다.
얼마나 즐기는지 모이로 주는 싸라기가 떨어져 마지막엔 흙이나 모래를 던져 허탕을 시키기도 했지만 역시 닭대가리라는 말처럼 그 물색만 화려한 짐승은 무언가 던지며 부를 때마다 쪼르르 달려왔으며 누가 부르거나 모이를 주지 않고 저들끼리 있다가도 수탉이 갑자기 암탉을 맴돌다 볏을 쪼고 올라가는 일은 쉼 없이 계속되니 심심한 저녁나절을 보내기엔 가히 제격이었다.
마당에서 즐길 거리가 꼭 닭뿐만이 아니었다. 멀뚱멀뚱 먼 산을 보거나 낮잠을 자다 시도 때도 없이 닭을 덮치는 삽살개 두 마리도 있었고 눈이 반질반질한 검정색 도둑고양이도 수시로 담을 타넘었다. 가끔씩 삽살개가 벼락같이 담장을 덮칠 때는 앵두나무 뒤에서 뒤란을 돌아 작은 대밭에 이르는 담구멍에 방금 황급히 들어가며 숨은 족제비의 갈색 꼬리가 보이기도 했다. 가끔씩 그 족제비가 쫓던 쥐를 잡은 도둑고양이가 담 위에 앉아 쥐를 발겨 먹는 벌건 입가를 보며 셋째 끝님이와 넷째 순님이가 징그럽다고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덩치나 키에 비해 모든 것이 어둔한 치만이를 위해 기출이는 제기도 되도록 얇은 엽전과 가벼운 문종이로 만들고 금방 넘어지고 마는 팽이를 좀 더 세게 돌리도록 일부러 주황색의 닥나무뿌리를 캐다 부드럽게 두드려 팽이채에 달아주었다. 자세히 보면 덩치와는 반대로 두 살 적은 기출이가 만사 형 노릇을 하니 가히 아이보기로서는 맞춤이었다.
하늘처럼 동그란 원을 그리고 각자가 엄지를 고정시킨 채 자기의 한 뼘만큼 손을 돌려 반달 모양의 집을 짓고 사금파리를 세 번 튕겨 집을 만들거나 빼앗는 땅따먹기놀이나 동그라미꼰, 사발꼰 같은 고누를 둘 때도 늘 어둔한 제 동생이 안쓰러운 끝님이 순님이가 끼어들었는데 어떤 때는 정작 치만이는 흥미를 잃고 물러나고 순임이, 끝님이, 기출이가 엄나무에 그늘이 지고 어둑해질 때까지 열중하기도 했다.
그러나 치만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읍성의 남문인 영화루를 돌아 서부마을의 성둑 위에 사는 체장수 집에서 늙은 체장수가 한쪽으로 돌아간 입을 삐죽거리며 동그란 테를 메우거나 물에 적신 버드나무 끈을 늘어뜨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이었고 어떤 때는 무시무시한 전설이 전해오는 화장산 굴바위를 구경하고 오기도 했다.
또 남천내가 흐르는 방향으로 방천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사방이 미나리꽝으로 둘러싸인 마흘동네가 있었는데 거기서 남쪽으로 진장만디를 보고 둑다리 하나만 건너면 꿈에도 그리운 제 어미 서촌댁과 귀남이 누님과 선출이 형님을 만날 수 있는 버든마을이었지만 절대로 건너지 않았다. 혹시라도 몰래 제집을 들락거린다고 소문이 나면 삼시 세때 이밥을 먹는 호방댁 아이보기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비록 버든의 집으로 가지는 못 해도 남천내 뚝다리를 건너 마구뜰을 가로질러 땅꾼과 거지들이 사는 봉꼴산 아래 '걸뱅이마실'을 서성거리기도 했다. 아무리 먹고 자는 것이 넉넉해도 기출이에게는 그냥 앞이 확 트인 들판과 비뚤비뚤 꼰들거리는 돌을 밟고 위태롭게 건너는 뚝다리와 남천내 물속의 중태기와 가재와 새우, 왕새우 징거미가 좋았고 가을날 벼 포기 사이에 다닥다닥 붙은 메뚜기와 크고 화려한 무지갯빛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홍굴래와 그 등에 업힌 새끼가 아니라 신랑이라는 빼빼한 때때, 그리고 메뚜기보다 조금 크고 통통한 소금쟁이, 회색 날개의 상주메뚜기가 좋았고 그놈들을 쫒고 잡는 것이 더 없는 즐거움이었는데 숨이 가빠 잘 뛰지 못하는 치만이도 조금씩 재미를 붙여가다 나중에는 먼저 가재나 메뚜기를 잡으러 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가을이 저물면서 기출이는 평생처음 솜이 들어간 바지저고리를 입을 수 있었다. 모 호방의 아내는 고을에서 알아준다는 명촌 김 씨네에서 순탄하게 자란 사람이라 기왕 제 자식 치만이와 같이 기거를 하는 판에 싹싹하고 심부름도 잘하고 인상도 또랑또랑 귀여운 기출이를 제 자식인양 생각하고 크게 인심을 쓴 것이었다.
거기에 꿍심이 많아 이런저런 농간으로 뒷돈을 심하게 밝혔지만 타고난 천성이 그리 포악하지 않은 호방도 별 타박을 하지 않았으니 제 집에선 등겨 죽으로 입에 풀칠을 하기도 버거운 기출이로서는 그야말로 팔자를 고친 셈이었다.
그렇게 두 소년이 새 옷을 차려입고 남천내 물문을 건너 정거장으로 우줄우줄 걸어가는 모습을 본 석암선생이 깜짝 놀랐다. 덩치만 커다란 치만이보다 자그맣고 반들반들한 기출이가 훨씬 더 옷을 잘 받아 모르는 사람들은 누가 도령인지 누가 방자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아니 누가 봐도 귀태가 나는 어린 도령을 덩치 큰 하인이 데리고 나온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사랑방으로 물을 떠오라고 기출이를 불러들인 석암선생이
“그 귀한 새 옷을 집안에서는 입더라도 사람이 많은 저자거리나 이웃마을로 마실을 갈 때는 절대로 입지 마라.”
“훈장님, 집안에서야 헌옷을 입어도 되지만 찬바람 부는 바깥에서 입으라고 소캐옷 지어준 것 아잉교?”
“이 밤톨만한 녀석 좀 보아. 너 그러면 영영 그 소캐옷을 못 입도록 해줄꺼나?”
설왕설래 다그치니 입은 삐죽 나왔으나 다시는 입지 않았다. 석암선생은 녀석이 본심을 알아들은 것으로 짐작했지만 호방댁과 네 딸애들은 기출이가 그저 새 옷을 아끼는 줄로만 아는 것 같았다.
나락을 베어낸 빈 논배미에 흩어진 이삭을 줍느라고 까악까악 울음소리도 요란한 갈 까마귀 떼가 수천, 수만 마리 하늘이 새까맣도록 날아와 버든의 마구뜰과 직동의 감대거랑과 송대뜰, 동문밖 뜰을 뒤덮으면 주황빛으로 시들어버린 논둑의 오동바랭이와 밥보재기 풀에 알을 낳은 메뚜기와 방아개비, 땅강아지와 귀뚜라미들이 바짝 마른 빈 죽데기가 되어 날개를 접고 죽어 가면 본격적으로 찬바람이 불고 무논에는 살얼음이 얼기 시작했다.
쌀이 찌고 몸이 둔한 치만이는 살얼음이 낀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을 늘 무서워했고 얼음이 깨어질까봐 얼음지치기는 물론 얼음판에서 팽이도 치지 않아 망아지처럼 동서남북으로 내닫기를 좋아하는 기출이가 꾀를 낸 것이 연날리기였다.
원래 음력 정월대보름날 달집을 짓고 쥐불놀이를 한 다음이면 2월 초하루 영등할머니를 모실 때까지의 농한기에 성내는 물론 성 밖 마을의 아이들은 물론 장정들까지 꽁꽁 언 남천내에 나와 연을 날렸는데 대부분 조그만 가오리연이나 조잡한 방패연들이었다. 그러다 가끔 남문인 영화루에서 현감이 참관하는 가운데 연날리기대회가 열리면 성내의 남녀노소가 모인 가운데 점잖은 도령은 물론 나이 지긋한 영감님까지 손수 만든 연들을 날렸는데 그 때는 박쥐나 봉황, 용을 새긴 크고 화려한 연들이 대부분이었다.
기출이가 연날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우선은 산과 들을 내닫기 좋아하는 사내아이이기도 했지만 아득한 하늘 높이 한 마리 솔개처럼 팔랑대던 작은 가오리연이 어느 순간 병아리를 덮치듯 논바닥에 내리 꽂히거나 줄이 끊어져 어딘지 모를 낯선 곳으로 훨훨 날아가는 것이 좋았고 사금파리 조각과 아교로 빳빳하게 풀을 먹인 연줄로 서로 겨누다 마침내 줄이 끊어져 날아가는 커다란 방패연과 이긴 편의 환성과 진 편의 탄식도 늘 귀에 쟁쟁 맴돌았다.
더욱 그가 연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아직 나이는 어리지만 그까짓 가오리연이나 방패연정도는 문종이 한 장에 댓가지 조금, 실과 풀, 풀이 아니면 밥풀이라도 조금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그 희한한 기술을 익힌 것은 마치 지리산의 곰처럼 우직하게 보이는 외삼촌 곰쇠가 저쪽 바닥에서는 알아주는 연날리기선수였고 또 연을 만들고 줄에 풀을 먹이기에도 전문이라 이웃에서 자라던 눈썰미 좋은 생질 기출이가 저절로 배우게 되었는데 어쩌다 둘이 같이 회창회창하게 살을 깎고 꼬물꼬물 풀칠을 하는 숙질간의 두 왼손잡이가 참 신통하게도 능수능란한 모습들이었다.
좌우간 지난겨울 내내 치만이와 기출이는 그렇게 연줄과 씨름을 하며 세월을 보낸 것이었다. <계속>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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