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3)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1장 1894년 봉당골

1. 1894 봉당골 ③차꼴댁 오두막에 상승같은 처녀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소리 없이 퍼져나가다

이득수 승인 2022.01.01 21:26 | 최종 수정 2022.01.04 11:27 의견 0
ⓒ서상균

이제 말이 달리지 않는 치도(馳道)에 노란 민들레가 피면서 새들이 포릉포릉 날고 아지랑이가 스물스물 피어나며 봉당골에 봄이 무르익기 시작했다. 

그러나 봉당골의 유일한 주민인 차꼴댁의 배고픔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아랫마을 평지(平地)리의 버든마을 세궁민(細窮民)들이 온 들판과 야산을 헤매며 쑥과 나물을 뜯고 찔레와 송기를 찾을 때쯤 희한한 소문 하나가 산 아래 큰 마을인 버든과 장승배기 너머 진장마을과 구시골로 퍼졌다. 쑥과 나시랭이(냉이)로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며 시퍼런 설사똥을 줄줄이 쏟아내는 봉당골 외딴집에 뭔가 수상한 일이 생긴 것 같다는 것이었다.

봉당골에 진을 친 뜨내기, 앞니가 다 빠지고 마귀할멈처럼 늙은 어미와 스무 살이 넘었지만 아직도 아기처럼 조그만 총각과 둘이 사는 월성 이씨 오두막에 키가 장승같은 처녀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야기의 재미를 더하게 하고 점점 멀리멀리 퍼지게 하는 것은 그 처녀가 벙어리라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며 더욱 더 신통한 것은 그 커다란 처녀가 벌써 아이를 배었는데 그게 바로 복성이라는 그 조그만 총각의 소행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에나, 그 조그만 총각이 지하여장군보다도 더 큰 처녀의 배를 불렸으니 세상에 음양의 이치라는 것이 참으로 묘하다는 것이었다.

소문은 읍내장터에도 소리 없이 퍼져나가고 있었는데 그 진원지로 몰린 소캐(목화솜) 장사 이서방은 도무지 발명을 않아 사람들의 궁금증만 더욱 부풀릴 뿐이었다.

복성이와 6촌간인 그는 벌써 장바닥에 상당히 자리를 잡은 데다 쉰이 넘은 매우 부지런한 사내였다. 낯선 처녀가 나타나던 다음날 6촌 형수인 봉당골의 아낙이 나타나 자초지종을 말하자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쌀 두 되와 보리쌀 닷 되를 건네준 너그럽고 침착하며 속 깊은 사내이기도 했다.

한편 처녀 자체도 팔대장승처럼 키는 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굴이나 몸매도 그만그만하고 특히 덩치에 걸맞게 부리부리한 눈빛이나 단정한 콧날이 당당하며 약간 건들거리는 걸음새도 그런대로 맵시가 있는 삼동갖은 규수였다. 마치 우렁 각시처럼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는 소문이 날만도 했다.

처음에는 모자가 거처하던 큰방아랫목에 노파와 처녀가 자고 윗목에 복성이가 눕도록 했는데 밤마다 복성이가 흘낏흘낏 처녀를 넘보며 잠을 못 이루는지라 어느 날 밤 견디지 못 한 노파가 아들을 밖으로 내보내고 처녀에게 다짐을 받았다. 복성이의 아낙이 되어 이 쓸쓸한 봉당골에서 살 수 있느냐는 말에 덩치가 말만한 처녀는 아무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더니 고개를 주억거렸다. 눈구덩이에서 얼어 죽을 목숨을 구해주었으니 달리 할 말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어 노파는 소반에 냉수 한 그릇을 떠놓고 맞절을 하게하고 평소에는 곡식자루나 씨앗이 든 함지나 씨오재기를 달아놓던 쪽방에 신방을 차리려다 자신이 베개를 옮겨오고 말았다.

흉년이 들어 아무것도 쌓아 놓은 것이 없어 물걸레로 깨끗이 닦기만 하면 금방 이불을 깔 수 있었지만 처녀의 키가 너무 커서 다리를 펴고 자려면 빗금으로 누워야할 판이라 하는 수 가 없었다. 사람이나 방이나 모든 것이 나름대로의 분복이고 운명이었던 것이었다.

발 없는 소문이 천리를 간다더니 어느 날 근 1년 만에 덕천역의 역졸 장가가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자네가, 아니, 니가, 니 놈이 여기를 우째 왔노? 여기가 감히 니놈이 발을 놓을 곳이가?”

노파가 부르르 몸을 떨며 악을 쓰는데

“와 그라요? 어무이.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오면 안 되능교? 그건 그렇고 복성이 자네 횡재했구먼. 근데 멀리서 보니 소문대로 처녀의 덩치가 여간이 아니네. 장군감이라, 장군감. 아니 복성이자네는 곧 장군의 애비가 되겠군.”

상대가 되지 않는 조그만 덩치로 빤히 올려보기만 하는 복성이와 마주한 장가에게 바가지 째 들고 온 냉수를 퍼부으며

“이 놈아, 가거라! 당장 나가거라! 안 가면 찬물이 아니라 똥물을 퍼부을 끼다. 당장 나가라!”

악을 쓰자

“아니 왜 그러시요? 어무이.”
“뭐라꼬, 어무이라꼬? 내 니 겉은 자식 둔 적이 없다!”

노파가 펄쩍 뛰는데

“아니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고 하룻밤이면 만리장성을 쌓는다는데 그래 사위가 될 뻔 했던 사람이니 어무이라 좀 불러보면 어떵교? 뭐 내가 복실이를 해코지한 것도 아니고.”
“뭐라고! 이놈아. 기어코 내가 여기 죽어 자빠지는 꼴을 봐야 되겠나? 그래 이놈아, 니 죽고 내 죽자. 어디 한 번 해보자!”

헛간에서 낫을 들고 오는 어미를 재빨리 복성이가 막아서자

“허허 참 성질도 대단하시기는 그래 알았심더. 내 돌아가께요.”

멈칫멈칫 물러서던 장가가 복성이를 손짓해 부르더니

“복성아, 벌써 아이를 가졌다면서. 나중에 몸 풀 때쯤 형편이 어려우면 날 찾아오너라. 내 쌀말이라도 보태 주꾸마. 그라고 죽은 니 누부 복실이의 일은 정말 미안하다. 자네 알다시피 나는 정말 니 누부하고 살 생각이었다. 저 나뿐 놈의 점식이 조가놈만 아니라면 말이다. 정말 미안하다. 니라도 그래 알고 있어라. 내 간데이.”

낮게 속삭이고 물러갔다.

“와, 머라 카더노? 그 썩을 놈이?”
“아임더. 아무것도 아입니더.”

얼버무렸지만 참으로 입에도 담지 못 할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던 것이었다.

ⓒ서상균

그건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이태가 지나 복성이가 열일곱, 누나 복실이가 열아홉 살이던 봄에 일어난 일이었다. 지난해도 긴긴 가뭄 끝에 시작된 비가 이내 장마가 되어 가장 큰 겨울양식인 고구마와 감자는 물론 조도 콩도 수수나 기장도 도무지 제대로 여문 것이 없어 세밑부터 도토리와 칡으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넘기던 초봄이었다.

덕천역 역졸로 있는 노총각 장가놈이 시도 때도 없이 복실이를 보러 봉당골의 오두막으로 드나든다는 소문이 아랫마을과 읍내까지 돌았다.

말만 스물아홉 노총각이었지 비록 역졸로 지낼망정 서부마을 성문 밖의 조그만 초가에 사는 장가는 대대로 작으나마 제 땅을 가꾸던 내력이 뚜렷한 집안이었고 덩치나 인물도 그만그만하고 성격도 무던했다. 그저 하나의 흠이라면 일찍 아버지가 죽고 세상물정에 어두운 어미 밑으로 무려 다섯 명의 여동생이 있어 이태 걸러 그걸 하나씩 여의느라고 그렇게 나이가 든 것이었다.

그래서 지난겨울, 막내동생을 출가시킨 장가가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평소 점을 찍어 두었던 처녀 복실이, 비록 지금은 몰락했지만 월성 이씨, 언양바닥에서는 손색없는 족보에 인물이나 성격이 다 무던한 처녀에게 장가들 맘을 먹고 비번 날이 되면 노리개나 먹을 것을 사들고 들락거렸던 것이었다.

처음부터 썩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지만 복실이도 조금씩 마음을 열고 어미도 모른 척 외면하며 반겼다. 아마도 가을걷이가 끝날 때쯤 혼담이 들어올 것이라고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의 어려운 형편에서 밥걱정이 없는 장가에게 출가시키면 우선은 입 하나를 덜기도 하지만 길게 보면 외동에다 덩치마저 조그만 복성이에게도 무언가는 힘이 될 것 같은 짐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같은 역졸이며 장가와 맞교대인 점식이 조(曺)가가 장가의 근무 날마다 나타나면서 일이 이상하게 꼬이기 시작했다. 조점식이는 원래 언양고을에서 대대로 아전을 지내온 괜찮은 집안으로 그 증조부인가가 무슨 죄를 저질러 파직되고 물러나 농사를 짓고 살다 점식이대에 집안사람의 추천으로 겨우 덕천역의 역졸이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집안의 후광으로 머지않아 양산 역도(驛道)에 소속된 열 곳도 넘는 역중에서 가장 큰 덕천역의 총책임자인 역장이 된다는 말도 있었고 이어 역도의 책임자인 종 6품 역승 양산찰방이 된다는 말도 돌았다.

그런데 왼쪽 눈 아래 손톱만한 점이 있어 점식이로 불리는 조가는 이상하게 왼쪽눈동자에도 좁쌀만 한 점이 있고 늘 핏발이 서 있어 언제 보아도 어딘가 불량하고 험악한 인상이었다. 게다가 나이 서른도 훨씬 넘은 데다 이미 장가를 들어 아이가 셋이나 있었다.

복실이도 슬슬 피했지만 어미가 ‘아니, 자네가 여기 웬 일이냐, 처녀가 사는 방은 왜 흘낏거리느냐?’고 힐책을 해도 ‘아이고 아주머니,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좀 오면 어떻소? 내 같이 일하는 우리 장도령의 아낙 될 사람이 어떤지 구경 좀 하러 오면 안 되능교?’ 하면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그러면서 실실 웃었는데 그 웃음마저 참으로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그렇지만 웃는 낯에 침을 뱉을 수도 없는 일이라 늘 불안한 하루하루가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날씨가 화창해 지난 가을 보아두었던 작괘천 언덕의 커다란 가루 칡을 캐러간 모자가 한나절 내내 씨름을 하다 서너 살짜리 아이 만큼 한 칡뿌리를 캐 지게에 지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집안을 들어서는데 왠지 섬뜩한 느낌이 들어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던 어미가

“복실아! 아이구 복실아!”

를 소리치더니 축담에 풀썩 쓰러져버렸다.

문틀에 띠를 걸고 목을 맨 것이었다. 안 그래도 혼자 두기가 미심쩍어 데리고 가려했지만 복실이는 그날따라 고뿔기가 있어 도저히 힘이 없다며 집에서 쉬겠다고 했다. 혹시 그게 아는 병, 그러니까 아이를 가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며 어서 장가네에서 혼담이 와서 배가 부르기 전에 보내어야겠다고, 그렇다면 문단속을 잘 하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떠났다. 차마 입 밖에 내기는 뭐했지만 혹시 그 흉측한 점식이 조가놈이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은근히 켕기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헐레벌떡 나타난 장가가 복실이의 주검을 보고 대성통곡을 하더니 조가놈을 죽여 버린다며 부엌칼을 들고 나가더니 몇 며칠이나 소식이 없었다. 장가를 피해 점식이가 잠적해버린 것이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서야 장가가 사람을 시켜 널과 수의를 사고 그 위에 엽전 몇 푼을 얹어 장례를 준비를 하라고 보내왔다. 그리고는 입관을 하기 바로 전에 나타나 대성통곡을 했다. 이미 복실이가 장가의 아이를 배어 곧 절차를 밟아 매파를 보낼 판에 조가놈에게 완력으로 몸을 망친 복실이가 목을 맨 것이었다.

참으로 허망한 죽음이었지만 뒤처리는 더 허무했다. 자살의 실질적인 장본인이자 양가의 규수를 겁탈한 점식이 조가는 당사자가 죽어버려 목격자가 없으니 심증은 가지만 죄를 추달할 방법마저 없었다.

이윽고 복실이의 장례를 치른 뒤 조가는 보란 듯이 나타났고 아전자리의 대부분을 차지해 언양현감의 눈과 귀를 막고 수족행세를 하는 일족의 비호로 장가도 조가와 똑 같이 근무지 이탈로 걸려 사정사정해 둘이 동시에 사죄를 받고 억지로 화해를 해야만 했다. 산 사람이나 살아야 된다면서 장가가 쌀 한 가마니를 보냈지만 차마 목에 넘어가지 않아 시장의 목면가게에 밀린 장려 쌀을 갚고 남는 것은 회나무진의 절에 재를 붙였다.

 

장가가 다녀간 지 며칠이 지났었을까, 우려하던 대로 점식이 조가가 봉당골의 오두막에 나타났다.

“아니, 점식이 니놈이, 내 딸을 겁탈해서 목을 매게 한 살인자가 여기에 우짠 일고?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데 무슨 양심으로 여기에 왔단 말이고! 당장 나가라. 당장 나가라, 이놈아!”

차꼴댁이 악을 쓰자

“허허, 지나간 일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내 새로운 여장군이 나타났다 캐서 구경하러 안 왔소? 악질 위에 독질이 있고 독사도 친구가 있다는 판에 사람 사는 집에 사람이 좀 오기로 무슨 죄가 되능교?”

“뭐라꼬? 이 개 철험(天倫) 박힌 놈이!”

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온 노파가 조가의 목을 겨누며

“그래 니 잘 만났다. 안 그래도 내 분통이 터지던 판에 니가 정히 내 손에 죽고 싶단 말이지. 그래.”

곧장 찌르려들었지만 억센 조가의 손에 팔목이 잡혀버렸다.

“그 손 놓으소!.”

씩씩대며 달려드는 복성이를 툭 쳐서 밀어내며

“어이, 이 쥐 부랄 만한 새끼는 빠져라. 인간 같잖은 기 꼴에 여자복은 있어서 말이야.”

비죽이 웃음을 띠우던 조가가 멈칫 했다. 어느새 방문을 열고 나온 커다란 처녀가 팔목을 탁 쳐 노파가 쥔 칼들 떨어뜨리며 노파를 움켜쥔 조가의 손목을 풀어버린 것이었다.

“어어, 과연 천하장사네. 정말 힘도 시네. 그런데 천하장사뿐이 아니라 그 덩치에 얼굴도 과히 빠지지 않는구먼. 하하하 하하...”

갑자기 웃음소리가 뚝 그쳤다. 이번엔 처녀가 조가의 손목을 그러잡더니 사정없이 비틀어 허리 뒤로 돌렸다.

“아이구, 아파라! 놓아라! 놓아!”

껑충 들린 조가가 발을 동동 구르며 소리쳤다. 비틀린 팔목이 얼마나 아픈지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지 얼마 뒤 쿵! 소리와 함께 조가가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조가 넋을 놓고 처녀와 오가를 번갈아 바라보는데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조가가

“내 이놈의 집구석이 얼마나 잘 사는지, 아니 발을 뻗고 자는지 두고 볼 끼다. 이 빌어먹을!”

주춤주춤 물러서며 이를 부드득 가는데

“!”

처녀가 성난 눈빛으로 다가서자 조가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았다.

서기 1895년, 연전에 동학란이 불타올라 사그라진 을미(乙未)년의 보릿고개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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