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아이보기 기출이 ⑤유복자

...안 그래도 서촌댁의 눈에 늘 밟히던 아이였다. 세상에 제 자식 남의 집에 보내고 맘 편하게 잠들 어미가 있으랴만 어린 아들 셋을 단지 입하나 줄이려고 남의 집에 보낸 서촌댁은 잠에서 깨는 아침이마다 아이들 생각이 간절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려고 이불을 까는 밤마다 뭔가를 잃어버린 듯 허전했다.

 

그중에서도 막내의 기출이는 혼곤하게 잠이 들거나 잠에서 깨어 뿌연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아직도 자신의 품에서 꼬무락거리며 어미를 바라보는 것 같았고 허겁지겁 젖을 빨거나 젖무덤에 얼굴을 묻고 새근거리며 잠이든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늘 애를 태웠지만 다행히 모 호방 내외가 아직 제 앞가림도 못하는 어린것을 데려가 먹고 자는 모든 일에 제 자식처럼 건사하며 솜 넣은 새 옷까지 지어준다는 소문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막내아들 하나만은 제대로 먹고 자라 저렇게 늘 방구들을 지고 골골대며 눈만 빠끔한 장남 선출이나 벌써 8년 전에 죽은 약골서방 복성이와는 달리 부디 외탁을 하여 외삼촌 곰쇠를 닮은 키가 훌쩍한 장골로 자라날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아, 기출이. 그래 우리 기출이가 어떤 아이란 말인가?

늘 춥고 배고팠던 스산한 봉당골에서 큰 딸 귀남이를 낳았을 때 큰딸은 살림밑천이라면서 웃으면서도 시어머니 차꼴댁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 못 했다.

이어 버든에 새집을 짓고 내려와 좁지만 제 땅을 가꾸어 겨우 끼니를 이어가면서 태산 같은 며느리가 덩치 값을 하느라고 그런지 이태 걸러 하나씩 내리 아들 셋을 낳자 그만 입이 딱 벌어졌다. 그 메마른 허리에 날마다 아이를 업어 허리가 더 굽고 날마다 등에서 똥오줌 냄새가 진동을 해도 앞니가 몽땅 빠진 합죽한 입가엔 웃음이 떠날 날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뿐. 반가(班家)에서 귀하게 태어나 몸종을 거느리고 시집을 왔지만 그 시집살이가 시작되는 그날부터 시가는 몰락을 걷기 시작하고 자신마저 부초처럼 여기저기를 끝없이 떠도는 것이 그녀의 팔자였던 것이었다. 없는 놈이 바지저고리 두 벌 되면 죽는다더니 비로소 솥 달아맬 걱정을 놓고 아이들 재롱소리에 얼굴에 웃음이 필 때쯤 만사가 끝나버렸다. 유일한 자식 복성이가 죽어버린 것이었다.

 

명색이 사남매의 아비이면서도 하루 걸려 고뿔이며 배탈과 몸살을 달고 살며 일하는 날보다도 구들장을 지는 날이 더 많은 약골이었다. 꿈처럼 나타난 우렁각시 덕에 집과 아이가 생기고 손바닥만 한 땅을 가졌지만 명색 일곱 식구의 가장이란 작자가 그 좁은 땅덩어리하나를 가꾸지 못했다.

소를 몰아 밭을 가는 쟁기질은 두고라도 논두렁을 만드는 삽질도 삽이 제 키나 비슷하니 오히려 사람이 삽에 매달린 모양새였다. 옛 부터 내려오는 ‘난쟁이 똥자루만 하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형국이었다.

벌써 여덟 해가 지난 임인(壬寅)년 봄이었다. 모처럼 흡족하게 봄비가 내려 온 들판에 초록빛이 넘쳐나고 진장만디 떡갈나무 숲의 연두 빛 새순 뒤로는 아지랑이가 아롱거리고 강남에서 돌아온 뻐꾸기가 길게 울음을 터뜨리자 기생오라비처럼 날렵한 제비들은 연신 찌찌거리며 금방 넘칠 듯 남실거리는 연당과 앞 새메를 낮게 날며 온갖 벌레를 잡기에 바빴다.

감자 심을 거름을 지고 진장밭으로 향하던 웃각단의 처남 곰쇠가 저 만큼 대추나무 서 마지기에서 들려오는 방금 숨넘어가는 소리를 듣고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마침내 길옆에 지게를 벗어놓고 성큼성큼 소리 나는 곳으로 다가갔다. 매부 복성이가 쟁기 뒤에 대롱대롱 매달려 벋대는 늙은 소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것이었다.

아직 농사일이 몸에 붙지 않은 사냥꾼이 오죽하면 대신 쟁기를 잡았을까. 고삐를 빼앗다시피 한 곰쇠가 이랴, 워, 워띠, 이라로, 물러. 앞으로, 멈춰, 좌로, 우로, 뒤로. 아무리 외워도 익숙하지 않은 경상도식 구령으로 사정없이 소를 윽박질러 한나절에 쟁기질을 끝내고는 새참을 들고 온 여동생 서촌댁의 눈길을 피할 때였다.

저만큼 물러났던 복성이가 눈을 반짝이며 다가왔다. 확실히 쟁기질과 막걸리는 달랐다. 밥 장군에 일 병신이란 말이 있듯이 조막만 한 복성이는 쪽쪽 소리를 내며 잘도 마시는데 태산 같은 곰쇠는 소년 적 산중에서 술을 접하지 않은 탓으로 아직 술맛을 잘 몰랐다. 한 되짜리 주전자에 겨우 큰 사발로 석 잔이 나오는지라 마지막 남은 잔을 둘이 나누려는 것을 자기는 생각이 없다고 복성이 잔에 부어주니 그 조그만 매부는 사양하는 빛도 없이 단숨에 마셔버렸다.

민망해서 어쩔 줄 모르는 누이를 모르는 척 벗어놓은 지게 쪽으로 향하던 그의 입에서 ‘저 덩치 저 힘으로 어떻게 아이는 벌써 넷이나 잘도 만들었을까?’ 중얼거리다가 ‘아하, 그렇구나! 비록 매부가 덩치는 작아도 술 마시는 재주, 아이 만드는 재주는 또 별도로 타고 난 모양이구나. 그 세상 이치가 참으로 묘하구나. 그래도 씨 하나는 좋은 모양이야.’ 혼자 중얼거리는데 하필 누가 들은 모양이었다.

“이 사람아, 그건 저 복성이가 씨가 좋아서가 아니고 자네 누이의 밭이 좋아서야. 사내는 베개를 들고 문찌방을 넘어서거나 촛불을 불어 끌 수만 있으면 씨를 뿌릴 수 있다 아이가? 워낙 자네 누이의 밭이 좋으니 앞으로 한 두름쯤 아이들을 낳을 지도 모를 일 아이가? 허허.”

사람 좋은 모단(못 안(池內) 김손이 웃었지만 그는 모르는 척 했다.

그렇게 겨우 모내기 준비를 마친 복성이가 저녁 숟가락을 놓자말자 곯아떨어지더니 이튿날 날이 새도 일어나지도 않았다.

할미가 막내를 업고 뒤란의 채전 밭에 나가고 방에 남은 아이 셋이 올라타고 집적대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바닥에 쑥을 넉넉히 깔고 보리쌀에다 밀기울을 섞어 밥을 안치고 냉이와 돌미나리로 나물을 무쳐 밥상을 차리던 서촌댁이 문득 심상찮은 생각이 들어 방으로 들어갔다.

“보소, 귀남이 아부지!”

흔들어보는데 평소보다 좀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무 기척이 없었다. 엎드린 고개를 돌려보는데 딸깍! 소리와 함께 옆으로 픽 돌아갔다.”

“와 이라요? 일나보소, 일나보소, 귀남이 아부지!”

소리쳐도 소용이 없었다. 이불을 들추고 들어 올리자 그대로 축 늘어져버렸다. 와중에 아이들이 코를 싸고 물러났다. 바지 가득 똥을 싸고 죽어버린 것이었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는데 살 비비고 살던 남편이 죽으면 어디에다 묻는 것일까? 이미 한 오십 년 살갑게 해로한 호호백발의 할머니라면 아지랑이 아롱대는 저 하늘 끝이나 선연한 주황빛 노을에다 영감을 묻고 이어 자신도 한 마리 불새나 저승 새가 되어 그곳으로 날아갈 염을 할 것이다. 또 전쟁이나 사고로 불각 중에 사별한 여인네라면 도무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가에 묻어 시도 때도 없이 그 무덤을 적시며 재회할 것이었다.

그러나 서촌댁에 있어서 그 작고 게으른 남편은 여염의 남편과는 판이하게 다른 너무나 알록달록 화려하고도 옹골찬 보물이나 그 무엇이었다.

당장 내일 무슨 화를 당할지도 모르면서 남매가 헤어지던 저 갑오년에 오라비 곰쇠가 한 말처럼 손이 희고 성질이 유한 사내를 만난 지리산 포수의 딸에게는 비록 늘 골골대며 구들장을 졌지만 똥그랗고 하얀 이마에 번쩍이는 눈빛이 한 쌍의 가시버시로서, 한 사내로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 부드러운 손길로 아녀자의 가슴을 열게 하고 깐죽깐죽 천천히 속살을 파고들며 팔대장승 그 거대한 아낙의 정신 줄을 빼놓던 사내, 태어나서 단 한 사람 접해본 사내, 제 아이들의 아비, 그 빛나던 눈빛의 동그란 상투머리를 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제 낭군을 눈가에 묻어놓고 깨어나는 아침, 잠드는 저녁, 잠 못 들어 뒤척이는 한밤중에 또 꿈에서 깬 어둠속에서 늘 바라보는 것 같았다.

또 어떤 때는 귓가에 묻어 바람이 부는 소리에도, 가는 빗방울이 처마나 장독대를 두드리는 소리나 멀리서 컹컹 개가 짖는 소리에서도 방구들을 지고 누워 이불을 뒤척이며 사부작거리던 소리로 새기는 모양이었다. 또 어떤 때는 ‘봐라, 자나, 자나?’ 농사와 젖먹이를 챙기느라 초주검이 되어 잠에 빠진 그녀를 깨우던 그 간지럽고 달짝지근한 목소리로 새기는 것 같았다.

그런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자기의 코밑 인중에 심어놓거나 장독간에 난초가 피고 분꽃이 피는 향기에서 또 갈분을 만드느라 앞세메에 담가놓은 보리나 감자가 뜨는 쿰쿰한 냄새에서 또 수제비를 끓이는 저녁나절의 밀가루와 멸치냄새에 모깃불의 매캐한 냄새, 더더욱 초여름의 장맛비와 김이 무럭무럭 솟는 두엄의 냄새 속에서도, 자주 씻고 닦아 늘 반질반질하고 하얀 얼굴과 옆구리와 가슴에 고이던 땀 냄새로 되새기는 모양이었다.

심지어 뒤통수의 비녀 끝에다 남편을 매달았는지 밥을 짓다가 밭에 가다가 김을 매다가 혹시 등 뒤에 아이아비가 온 것처럼 시도 때도 없이 돌아보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매양 죽은 서방만 추억하고 살 수 없는 것이 서촌댁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기도 했다.

이번에도 처남 곰쇠와 저자거리 6촌의 추렴으로 비록 최하품이지만 널과 죽음 옷과 탁주와 향촉 등의 출상준비를 갖추던 저녁나절에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등불을 들고 우물과 측간과 뒤란으로 통하는 감나무에 매달고 술 단지와 떡 반티를 이고 나타났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지만 본동 사람으로 인정해 같은 상포계(喪布契)로 받아들인다는 뜻이었는데 아무래도 사돈 간인 곰쇠네 처가의 위세 덕분이었던 모양이었다.

달리 문상할 사람도 없고 자식들도 어린 데다 그나마 어미를 앞선 악상(惡喪)인지라 간단하게 2일장을 치르기로 하고 죽은 복성이와 산 서촌댁이 처음 언양땅에 정착했던 봉당골의 길모퉁이에 조그만 봉분을 짓고 돌아와 작은 방에 빈소를 차리고 혼백(魂魄) 단지를 올려놓고 마지막으로 여섯 살 큰아이들 선출이에게 절을 시키고 나서였다.

“야야, 며늘아, 우짜겠노? 죽은 사람은 죽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고 니가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야지. 등에 업힌 저 두 살짜리랑 사 남매를 보아서라도 말이다.”

가슴에 자식을 묻은 어미 차꼴댁이 가 앞산에 서방을 묻은 아낙 서촌댁에게 말했다.

“예...”

무심코 대답을 해놓고 서촌댁은 입술을 달막달막하다 등에 업힌 아이를 한 번 쿡 쥐어박고 말았다. 그리고는 그 황소 같은 덩치를 들먹이며 갑자기 섧디섧디 울기 시작했다. 어린 아이들 앞이라 이제껏 참고 참던 눈물이 마침내 터진 것이었다.

“우짜겠노? 아아들은 애리고 나는 늙었고 니가 이제 우리 여섯 식구 목심줄이다. 우짜겠노?”

“...”

한참을 더 울던 서촌댁이 눈물을 닦더니 정색을 했다.

“여섯 이가 아니고 일곱 킴더.”

“뭐라꼬?”

눈이 휘둥그레진 시어미가 며느리의 배꼬리를 한참이나 바라보더니

“아이구, 아이구, 그새 또 손님이 왔는가? 허허 그 참 복도 많다 복도...”

기가 차서 숨을 고르고는

“우야겠노? 생겼으면 낳아야지. 그까짓 것 넷이 키우나 다섯 키우나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 그게 그거다.”

그런 체념 끝에 태어난 게 바로 유복자(遺腹子) 기출이였다.

 

비록 덩치도 크고 그 덩치만큼 속내도 깊어 여간해서 흔들리지 않는 서촌댁이었지만 아비가 죽고 없는 핏덩이가 태어나자 시어머니 차꼴댁은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비록 덩치도 크고 그 덩치만큼 속내도 깊어 여간해서 흔들리지 않는 서촌댁이었지만 아비가 죽고 없는 핏덩이가 태어나자 시어머니 차꼴댁은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이를 들여다보다 혹시 죽은 서방 생각이라도 하며 마음이 약해질까 봐 제 어미 서촌댁의 손이 닿을 새도 없이 그 불쌍한 핏덩이를 안고 업고 어르고 종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오죽하면 그동안 자기가 죽으면 물을 떠놓을 장손이라고 태산처럼 떠받들던 장남 선출이가 할매는 이적지 눈도 못 뜨는 깐얼라만 좋아한다고 볼멘소리를 다 했을까?

그런 차꼴댁도 처음에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 차라리 한 둘쯤은 성이 같은 집안에 양이라도 보낼 생각에 몰래 읍내의 판수집에 보리쌀 두 되를 들고 찾아가 새로 난 유복자의 사주를 넣고 팔자를 알아보다 아무소리 않고 돌아왔다. 그 핏덩이 막내가 다섯 자식 중 유일하게 부모 곁을 떠나지 않을 종신자식으로서 비록 살아서 애는 많겠지만 후에 가문을 펼칠 자식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에 아차!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종일 아이를 손에서 놓지 않던 차꼴댁은 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기출이가 다섯 살이 되던 초봄에 그렇게 매일 와글거리던 아이들 곁을 떠났다. 동지 때부터 고뿔에 걸려 시난고난 앓더니 막상 해동이 되자 맥이 풀려 죽은 것이었다.

 

위에 두 형이 간혹 집에 들어오는 날이면 유독 얼굴이 하얗고 복스러운 데다 모 호방네에서 멀쩡한 입성은 물론 솜바지저고리까지 얻어온 아우를 늘 부러워했다. 그러나 이미 남의집살이에서 한번 쫓겨나 세상살이의 험난함을 깨달았는지 그 조그만 막내는 담담하기만 했다.

외삼촌 곰쇠가 기출이의 소식을 듣고 찹쌀 한 되와 크고 쌀찐 말린 홍합인 열합(裂蛤) 한 줄과 달걀 몇 개를 들고 왔다. 어린 것이 놀랐을지도 모르니 달걀을 넣고 열합 죽을 끓여주면 힘을 차릴 것이라고 했다. 여간해선 닭 한 마리도 잡기 힘든 시절에 저 멀리 통영인가 어디서 가져온다는 굵고 붉은 말린 홍합, 열합은 가난한 농사꾼에게는 일 년에 한 두 번 먹는 쇠고기에 버금가는 보약이었다. 아직 어린 생질이었지만 유복자로서 갓난애시절부터 애틋한 정이 간 데다 모 호방네에서 읍내로 퍼진 눈치가 빠르고 머리가 영민해서 커서 뭔가 남다른, 무슨 일을 저지를 놈이란 소문에 은근히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열 합 죽을 끓이자 아직 어려서인지 입이 짧아서인지 당사자 기출이는 잘 먹지도 않고 늘 구들장만 지던 장남 선출이가 눈을 반짝이며 밥상머리로 달려들었다.

열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것이 없다고 생각 같아선 넉넉히 죽을 끓여 재출이, 또출이까지 불러 밤톨 같은 네 아들이 실컷 먹는 것을 보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촉촉한 찹쌀과 빨간 열합에 달걀의 흰자, 노른자가 고루 풀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쳐다보기만 해도 절로 침이 넘어가는 죽이 완성되자 옆에서 춤을 꼴깍거리는 귀남이에게도 단 한 숟가락 주지 않고 기출이를 챙겼지만 정작은 게으름뱅이 선출이만 횡재를 한 것이었다.

사람이든 재물이든 하다 못 해 죽 한 그릇도 다 임자가 있다더니 그야말로 음식이란 먼저 먹는 사람이 임자였다. 그러나 서촌댁은 그 게으른 선출이가 먹기는 해도 그 역시 장남에다 평소 몸이 약한 것이 늘 마음에 걸리던 판이라 저렇게 잘 먹으면 키라도 좀 자랄지, 어서 총각 티가 나야지 기대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모처럼 자신이 늘 고이는 두 아들 장남과 막내가 같은 방에서 뭐라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지가 않아 아무쪼록 맏이와 막내 두 아들이 사이좋게 지내며 살갑게 정이 들기만 바랄 뿐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일, 당분간 식구들이랑 묵새기며 누이랑 형들이랑 어울리며 어미의 사랑도 듬뿍 받게 하고 가을걷이 때쯤 어디로 꼴머슴이라도 보내자는 오라비 곰쇠의 말대로 서촌댁은 당분간 기출이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고 콩 한쪽이라도 더 찾아 먹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서도 저잣거리의 소캐점(솜가게)에 부탁해 새 일자리를 부탁해 놓았지만 아직 기별이 없었다.

대신 밤마다 그 살가운 막내를 꿀단지처럼 가슴에 품었다. 늘 애인(哀憐)하던 기출이를 품에 안고 누울 때마다 서촌댁은 자신이 낳은 다섯 아이의 몸 냄새가 다 다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슬며시 웃었다. 우선 맏이 귀남이는 같은 여자지만 자그만하면서 오동통한 몸매의 걸어가는 뒤태가 출렁거리고 낭창거리는 머리채가 자신과는 달리 어딘가 여성스럽고 앙증맞아 사내들의 눈을 끌 것만 같았다.

또 재출이, 또출이는 제 외삼촌 곰쇠를 닮아 벌써부터 어깨가 벌어진 땅딸보에다 널찍한 얼굴에 검은 빛이 돌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그냥 징그러운 사내들이였다.

그런가 하면 큰놈 선출이는 그야말로 손이 희고 성질이 유한 제 아비를 닮아 문득문득 죽은 서방 복성이가 살아온 듯 착각을 느끼게 하여 늘 빈둥대고 놀며 애를 먹여도 차마 어쩌지 못 하는 그야말로 애물단지였다.

그런데 막내 기출이는 얼굴이 희고 반듯하며 손이 희고 유하기는 제 아비와 똑 같지만 유일하게 지리산 달궁을 주름잡던 제 외조부 왕포수의 왼손잡이를 물려받고 손재주도 좋아 후리후리하게 큰 키에 회창회창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오물쪼물 온갖 것을 다 만들어내는 참 특별한 아이였다.

비록 유복자이긴 하지만 저 아이를 안 낳았으면 아까워 어쩌랴 싶을 정도로 이목구비도 반듯하고 피부도 하얀데다 약간 붉은 빛이 도는 깊숙한 눈빛이 나중에 기집들 속깨나 썩일 것만 같기도 했다. 말하자면 손이 희고 성질이 유하기는 제 아비나 큰형 기출이와 비슷하지만 그 둘이 가지지 못 한 무엇인가 사람을 끄는 애처로운 눈빛이 있는 그런 자식이었다.

그 귀한 막내가 초저녁에는 어미의 품에서 손이 잡힌 채로 얌전하게 잠들다 새벽이 되면 마치 젖먹이처럼 어미의 가슴에 손을 넣고 간혹 꼼지락대며 간질이는 것이 너무나 황홀해 가만히 숨을 죽이고 음미하던 서촌댁은 가끔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넘기는 커다란 소리를 내어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지만 눈을 감은 기출이는 내색을 하는 법이 없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