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5)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4장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이득수 승인 2022.01.12 16:13 | 최종 수정 2022.01.16 12:51 의견 0
ⓒ서상균

4.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③논골로 시집간 귀남이 누나, 아편쟁이 자형 
 

“우야고, 우야꼬! 이기 도대체 무슨 일이고? 대명천지 밝은 날에 남의 귀한 자식을 누가 이렇게 피 칠갑으로 만들었단 말이고 기출아, 기출아!”

대문을 들어서는 기출이를 보고 서촌댁이 대경실색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이나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주며 온몸을 훑어보던 어미는 황급히 큰솥에 물을 끓여 피가 엉겨 붙은 옷을 벗기고 씻기기 시작하다 회창회창 가는 팔뚝에 눌러 붙은 피딱지를 떼어낼 때마다 기겁을 했다. 억세고 큰 덩치도 소용이 없었다. 기출이가 볼까봐 고개를 돌려 훌쩍거리는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이 두 뺨을 타고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상에, 시상에! 모자라는 지 자식 갈칠라고 데려간 남의 자식을 이리 물고를 내다니? 그라고 그 기 어디 내 자식이 잘 못한 일이가? 아직 콩만 한 기 바람기가 많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그 끝님이년이 잘 못한 일이지. 남 같으면 남사스러워 말도 못할 일을 가지고 부끄럽지도 않나?”

자꾸만 자초지종을 묻는 바람에 종일 비가 와서 온 식구가 낮잠에 빠진 오후에 끝님이가 자신을 불러 도장방에 데리고 갔고 굽은 떡과 조청을 먹은 뒤에 억지로 웃물을 한 잔 먹으라고 해서 한 모금 마시고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보니 그 지경이었다고 말하자

“허허 그년이 인자 열다섯 그 맹랑한 년이, 우째 그래 도둑질, 협잡질 잘 하는 지 애비를 닮아서 내 아들만 골병을 들여 놓노? 인자 열 살, 아직 깜동부랄도 안 생긴 아이를...”

쯧쯧 혀를 차면서 씻기던 기출이의 고추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어리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집안내림이 자라고추라 일곱 살 호방네에 갈 때까지 저래서 어째 오줌이나 눌까 싶을 정도로 새끼손가락의 손톱만한 앙증맞은 고추를 달고 있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도 그저 삶은 시락뿌리만큼 약간 길어지기는 했을망정 맨 그대로였다.

 

그렇게 한참이나 아이를 씻기고 이열(瘀血)에 좋다는 똥물을 길러 측간으로 나서려는 판에 어험, 어험 헛기침소리가 나더니 장터거리의 솜집주인이 마당에 들어섰다. 솜을 타다 왔는지 상투꼭대기와 무색 저고리에도 희끗희끗 솜조각과 실타래가 붙어있었다.

“종수님, 많이 놀랬지요? 아아는 좀 괜찮능교?”

이렇게 들어선 소캐집 가서방은 손에 든 보퉁이에서 미역 한 타래와 열합(裂蛤) 한 줄을 내려놓고 모 호방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넘의 자식 얼추 죽여 놓고 미역은 무슨 미역이고 열합은 무슨 열합이고. 우리 얼라가 몽둥이찜질로 이열이 들었지 어데 몸을 푸나, 아아를 놓나!”

혀를 끌끌 차는 어미를 외면하고 아이를 한참 들여다 본 후에

“좌우지간 자초지종은 잘 아실 거고 호방나리는 이번 일로 하도 기가 막혀 아이단속을 못 한다고 안방마님이랑 한참을 싸우고 난리가 났다 아잉교? 그라고 아직 출가 전인 세 딸 작은님이, 순님이, 끝님이가 시집을 다 갈 때까지, 그러니까 한 5년만 기출이가 호방댁을 얼씬거리는 것은 물론 버든에 그대로 살아도 안 된다고 했심더. 온 식구가 다 떠나기는 어렵겠지만 우선 기출이가 몸을 추스르면 그 애만이라도 언양땅을 떠나 한 오년 안 보였으면 한답니다. 만약 그 안에 자기 눈에 뜨이는 날이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든지 우짜든지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다고 했심더. 그라면서...”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내어놓았다. 쩔렁거리는 엽전도 있고 지전도 있었다.

“아이구 시장시러버라! 세상에 돈이면 다가? 벼슬했다고 유세부리면 다가? 남의 자식 개잡듯이 잡아놓고 돈 몇 푼이면 다가?”

서촌댁이 돈을 밀어내며 푸념인데 아랫목에 고양이처럼 웅크리고 앉았던 선출이의 눈이 번쩍하며 침을 꿀꺽 삼켰지만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기분이 나빠도 돈은 챙기소. 논마지기나 살 정도는 될 깁니더. 우쨌기나 그리 아시고 잘 요량하이소. 지는 건너갑니데이.”

6촌 가서방이 삽짝문을 나갔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늘 제 일처럼 도와주면서도 정작 일이 잘 못 되자 마치 호방댁에 줄을 대준 자신의 잘못인양 미안해하는 것이 참으로 성정이 착한 사내였다. 돈을 대충 뭉쳐 장롱 안에 넣고 서촌댁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미역을 빨기 시작했다. 열합을 넣고 죽을 끓일 요량이었다.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인 열 살배기였지만 속 깊은 기출이는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몸을 옹송그리고 누워 잘 참아내었다. 그러면서도 밤에 잠이 들면 자주 끙끙 앓으며 몸을 뒤척이는 것이 여간 괴로운 것이 아닌 모양이었고 그런 자식을 보는 서촌댁의 가슴을 예리한 칼날로 조각조각 난도질하는 것만 같았다.

아직 어린애라 그런지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조금씩 엉겨 붙었던 피딱지를 떼 낸 자리의 시커먼 얼룩도 사라지고 터지고 찢어진 자리에도 쉽사리 새살이 돋기 시작했다. 단지 빗맞아 접질린 오른쪽 발목이 쑤셔 한동안 걷지 못하던 기출이가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리며 작대기를 집고 마당가를 맴돌기를 이틀이나 지나 다친 지 열흘째가 되던 날 앞새메와 웃각단의 제 외갓집을 돌고 오더니 이튿날 단단히 옷매무시를 고치고 마당에 내려섰다.

벌써 떠나는가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은 어미가 어디 가느냐며 눈물이 글썽해서 묻자 걸음연습삼아 논골 귀남이 누나네에 가서 누나며 자형도 만나고 이제 7개월쯤 지났을 생질 깐얼라 만택이도 좀 보고 올 거라며 장롱에서 지전만 약간 챙겨 넣고 집을 나섰다.

 

봉당골 고개를 넘어 장승이 있는 옛길 장승배기를 버리고 새로 공굴이 난 덕천역 수남마을을 지나고 중남면사무소가 있는 작하마을과 구멍난 바위가 있어 아낙네들이 아들 낳기를 비는 공암(孔岩)마을을 지나 들내, 강당, 방터를 지나 통도사 앞 새뜰마을에서 아이를 먹일 엿이랑 자형이 마실 탁주도 한 병 사고 아이와 누이의 옷을 만들 무명도 다섯 마를 사서 기출이가 물어물어 논골의 누님댁을 찾았을 때였다.

“...!”

미리 짐작은 했었지만 누님이 산다는 움막집을 쳐다보던 기출이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나왔다. 도무지 집안 꼴이 아니었던 것이었다.

동네이름 마저 논이 많은 논꼴(畓谷)이라 집집이 먹고사는 것은 걱정이 없다고 했는데 우선 다 쓰러져가는 움막집에 도랑에서 주워온 돌에 볏짚을 넣어 갠 흙으로 쌓은 나지막한 담이 여기저기 무너지고 그 사이를 때운 소나무가지들도 태반이나 무너져 안팎의 구별도 없이 찬바람이 넘나들며 지푸라기가 날리고 있었다.

“누부야, 누부야, 누님!”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 방문을 탕탕 두드리니 한참 만에

“눙교?”

봉두난발의 중늙은이가 엉금엉금 기다시피 나와 머뭇거리며 방문을 열었다.

“...”

어디가 아픈지 와들와들 떨고 있는 사내가 아무리 봐도 지난 해 초례청에서 본 그 멀쩡하게 잘 생기고 배운 사내인 큰 자형은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40,50은 넘은 중늙은이의 모습이었다.

“기, 기 기출이 망내이 처남이 아이가? 니가 여 웬일이고?”

덜덜 떨며 손을 내미는데

“야, 기출임더. 그런데 자형은 어데 아풍교?‘

“그래. 내가 쪼옴...”

흐릿한 눈길로 하늘을 보며 말끝을 흐렸다. 집안 전체가 어딘가 스산하고 도무지 먹을거리라곤 없는 것만 같은 것은 닭도, 돼지도, 그 흔한 개도 한 마리 없는 것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서너 개밖에 독이 없는 장독간도 횅하니 비어 있고 단지 수채 옆에 커다란 분꽃 한 포기가 여기저기 빨간 꽃을 푸지게도 매달고 있었다.

“이기 누고? 아이고 기출이 아이가?”

순간 방안이 아닌 사립 쪽에서 누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를 하러갔던지 머리위에 마른 따북대와 큰물에 떠내려 온 서까래 토막 몇 개를 이고 있었다. 등 뒤에 젖먹이 만택이도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여릿여릿한 몸매에 연지 볼이 빨개 맵시하나는 버든마을 최고라던 귀남이 누나이 모습이 아니었다. 시집 온지 겨우 1년 반이 조금 지났건만 너무 여위고 찌들어 벌써 10년이나 지난 서른 넘은 아낙의 모습이었다. 기출이 얼른 품에서 엿을 꺼내 낯선 외삼촌을 쳐다보며 우는 아이의 입에 넣어주자 금방 울음을 그치며 쪽쪽거리며 빨았다. 아이도 넉넉히 먹지 못한 모양이었다.

누나가 김치를 가져와 기출이가 받아온 탁주를 사발에 부어 매형을 먹였다. 그 제서야 눈빛의 흔들림이 가라앉고 손이 조금 덜 떨리면서 매형의 호흡이 차분해졌다.

슬금슬금 눈치를 보다 마침내 기출이의 품에 안긴 만택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면서 ‘니가 웬 일이냐, 어머니와 선출이, 또출이, 재출이는 잘 있으며 호방댁과 치만이는 잘 있느냐?’ 누나가 한꺼번에 온갖 것을 다 물어서 정신이 없는데 갑자기 자형이 마시던 탁주잔을 방바닥에 떨어트려 술을 엎지르더니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걸레를 가져와 방바닥을 닦으며 귀남씨는 애써 기출이를 외면했다. 자주 봐서 그런지 별로 놀라지도 않는 만택이와는 달리 화들짝 놀란 기출이는 저게 아마 아편중독인가 싶은 생각이 들면서 자신의 가슴도 와들와들 떨리기 시작했다.

“여 눕으소!”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눕힌 누님은 계속 와들와들 뜨는 남편을 애써 외면했다. 김치보시기가 놓인 술상을 치우고 손짓으로 기출이를 방문 앞으로 불러낸 누나가

“기출아, 내가 할 소리는 아니다만 니 돈 있나?”

가슴으로 도로 빨려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응 쪼깨.”

기출이 바지춤에서 지전을 꺼내 보이자

“그래 누부야 좀 빌리 도. 그라고 나랑 새뜰에 좀 가자.”

아이를 엎은 누나와 둘이 나란히 들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이제 장마가 끝나고 나락이삭이 펴기 시작하는 들판에는 시원한 바람이 논둑을 쓸어 가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덩치도 작고 색깔도 연두 빛인 작은 메뚜기들이 팔딱팔딱 뛰어오르고 간간히 고추잠자리도 하늘 높이 날았다. 기분이 좋아졌는지 만택이도 무어라고 옹알거리고 있었다.

“니 요서 잠깐 기다려라. 누부야가 누구랑 무얼 하고 무얼 샀는지 절대로 넘한테 이바구하면 안 된다. 알겠제?”

기출이의 지전을 받아든 누나가 사방을 둘러보더니 부산에서 서울로 새로 난 신작로가 통도사 입구와 만나는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선 새뜰 신평마을의 어느 기와집 앞에서 한참이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는 무엇인가를 받아 조심스레 치마폭에 감추고 돈을 건네더니 어떤 가게 집에 들어가 쌀 두 되를 사고 두부도 한 모를 샀다.

ⓒ서상균

다시 한참 들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다

“니 요 잠깐 앉아봐라.”

길가의 어느 논두렁가의 좀 넓은 풀밭에 먼저 주저앉더니 등에 업힌 아이를 내려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니, 아까 봤다시피 니 자형은 아편쟁이다. 한 사흘만 아편을 안 맞으면 사람 꼴이 아니다. 그간 집안에 있는 돈 될 것은 다 팔아 아편을 맞아서 인자 하루하루를 묵고 살기도 걱정이다. 나도 잘 못 묵어 만택이 젖도 잘 안 나온다.”

푹 울음을 터뜨리며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다.

“평생 처음 누부야집이라고 동생이 왔는데 밥 한 끼도 못 해먹이고 내가 동생 돈을 빌려 자형 아편을 사고 쌀을 팔았다. 우야꼬, 우야꼬? 내가 마 팍 죽어뿌까?”

슬며시 바라보는데 흥건히 눈물이 고여 있었다.

“말이 논꼴이지 지 논 한 마지기도 없는 판에 들이 넓으면 다 무슨 소용이고? 속았지. 속았어.”

“...”

“하긴 처음부터 없지는 않았는데 쫄딱 망했다 카더라. 그것도 니 자형이 아편을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

“하기사 내가 험 있는 계집으로 시집을 왔으니 속였다고 뭐라 할 말은 없지. 우짤 끼고? 다 내 팔잔데.”

“...”

토로록, 물꼬를 타고 내려온 미꾸라지 한 마리가 도로 물길을 타고 오르려는 서슬에 바르르 풀잎이 흔들리며 물방울이 튀었다. 뚜루룩 뚜욱 꾸욱! 벼포기 사이에서 황급한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방금 뱀에게 먹힌 모양이었다.

“배웠다는 것도 양반이라는 것도 다 헛말이었다. 객지 가서 배운 것이라고는 아편밖에 없는 모양이더라. 하기야 나라가 망하고 세상 모든 정치가 다 무너지고 봉수대, 역말까지 다 없어지는 판에 어디서 무얼 배우고 어떤 밥벌이가 있었겠노?”

“...”

“그래도 남정네라고 지 분에 못 이겨 사람은 와 패는지 모리겠다. 밥은 굶어도 매 맞고는 못 산다는 말 니 들어봤나?”

“...”

아직 어린아이에게 할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귀남씨가 금방 입을 닫았다. 기출이는 도무지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누님이 오죽 답답하면 저렇게까지 이야기를 늘어놓나 싶어 가만히 듣고 있었다. 어쩌면 몇 달 만에, 아니 시집온 지 일 년 반이 넘도록 단 한번도,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제 세상을 알듯 말듯 한 막내 동생에게 비로소 꺼내놓는 것인지도 몰랐다.

“...”

“그렇다고 사람까지 나쁜 건 아니다. 맨 정신이 돌아오면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모른다. 니나 내나 복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니는 내만 안 만났으면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미안해 할 때는 나도 눈물이 나고 팔자가 서로 같으니까 이래 만난 기 아닌가 싶어 같이 안고 울기도 많이 했다.”

“...”

“우짜면 니 자형은 오래는 못 살지도 모른데이. 몸도 몸이고 아편도 아편이지만 우선 돈이 없고 양식이 없어 제대로 못 묵으니 달리 방법이 없지. 세상에 안 묵고 낫는 병이 어데 있겠노?”

“니 자형이 죽으면 나도 이 한 많은 세상을 끝냈으면 싶지만 저 아무 것도 모르는 불쌍한 아 만택이를 보면, 또 엄마나 우리 시어마시를 생각하면 차마 죽지도 못 하고. 우짜겠노. 우짜면 좋겠노?”

“...”

이제 대놓고 어깨를 들썩이더니 아예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고개를 드는 누나의 얼굴이 환하게 개어있었다.

“기출아, 누부야가 참 철 없제? 그래도 니를 만나 오랜만에 실컷 신세타령도 하고 울기도 하니 가슴이 다 후련하다. 그래도 이 세상에는 부모형제가 제일인기라. 나는 니가 태어나던 그날 그 말갛던 눈동자를 생각하면 지금도 니가 한 번씩 보고 싶었다. 그라고 기와집에 댕길 때 삶은 강냉이 하나만 생겨도 반을 뿌질러서 니를 갖다 주던 일 말이다.”

“...”

이제 다시 아이를 업고 집으로 향하면서도 누님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등에 업은 아이가 징징거려 무심코 손에 쥔 메뚜기를 쥐여 주자 사정없이 입으로 가져가는 걸 황급히 빼앗자 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드렸다. 어미가 토닥거리자 울음을 그친 아이는 금방 잠이 들었다.

“그래도 정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부산 어디에 가면 니 자형 같은 아편쟁이를 고치는 병원인가 수양소가 있다고 하더라. 단지 돈이 없어서 탈이지.”

“...!”

문득 기출이의 머릿속이 번쩍하며 장롱에 넣어둔 엽전생각이 났다.

“돈이 얼마나 든다 카더노? 누부야.”

“몰라. 많이 들겠지. 아마 논 몇 마지기 값은 들겠지.”

“그으래?”

기출이가 걸음을 멈추고 우뚝 섰다. 돌아보는 누나에게

“누부야, 내 집에 갔다가 내일 오꾸마.”

“와? 갑자기 와 그라노?”

“내일 오께. 내일 오면 다 안다.”

기출이가 냅다 버든마을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일찍 왔네. 니 누부랑 자형은 잘 있더나? 아도 잘 크고?”

후다닥 방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기출이를 보며 서촌댁이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는 곧장 농짝으로 다가가는데

“농짝은 와?”

“엄마, 자형이 많이 아픈데 돈이 있어야 된단다.”

“그래. 그런데 거게 돈 없다.”

“와, 난 지전만 조금 가져가고 엽전이랑은 다 남았은데?”

“니 큰 생이가 다 가주갔는 모양이더라.”

“큰 생이가 와? 언제?”

“아까 참에, 니 가자 말자 바람 쏘인다며 나갔는데 그때 가져간 모양이더라.”

“엄마, 안 된다! 그 돈이 어떤 돈이라꼬?”

“글치만 우짤끼고? 내가 읍내까지 나가서 알아봤지만 선출이는 안 비고 물문거리의 목물집영감이 아침 일찍 키가 작고 눈이 반들반들한 총각 하나가 부산 가는 신작로로 타박타박 걸어서 덕천고개를 넘어갔다 카더라.”

“...!”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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