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 제1부 떠돌이 기출이 - 제3장 아이보기 기출이

이득수 승인 2022.01.05 15:31 | 최종 수정 2022.01.08 12:57 의견 0

3. 아이보기 기출이 ①어깨너머로 천자문을 깨치고 ... 

모 호방은 입을 다물었다. 이제 여섯 살 어린아이치고는 당돌할 정도로 똑똑했다. 그리고 얼굴도 눈빛도 맑고 심덕도 있는 것 같아 맘이 끌렸다. 또 무엇보다도 모자라는 자기자식 치만이를 무시하거나 골리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아이보기로 결정이 되고 이튿날부터 기출이는 서촌댁의 품을 떠나야했던 것이었다.

 

이튿날 석암(石巖)선생으로 불리는 신 선생의 손을 잡고 처음으로 남천내를 건너고 물문거리의 성문을 지나 높다란 모 호방네 대문을 넘어섰을 때 

“니가 기출이구나. 듣던 대로 참하게 생겼구나.”

처음 보는 고래 등 같은 커다란 기와집에 갖가지 색으로 물들인 화려한 치장의 마나님 앞에서 기출이는 슬며시 눈을 내리 감았다. 이어

“아이고, 새첩기도 해라. 우리 치만이 하고 동무해서 잘 지내거라.”
“동무는 무슨 동무, 아이보기로 왔으니 도련님이라고 불러야지. 이 도령 모시는 방자처럼 말이야.”
“아니야. 아이보기로 와서 우리 치만이를 돌봐야하니 사실은 형이나 같아. 아무튼 우리 치만이 잘 챙겨 도.”
“에게게, 그럼 저 쥐방울만 한 꼬마가 도로 형이라고?”

귀남이 누나처럼 제법 처녀티가 나는 열 대엿에서 열두어 살이 되는 네 명의 계집애들이 우르르 다가서며 지껄이는데

“이런 버릇없는 앤아들아, 좀 조용히 못 하겠나? 이 근본도 없는 아이 앞에서 무슨 짓거리들이고?”

호방댁이 바로 앞에 선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예, 치만아! 치만아, 니캉 놀아줄 친구가 왔다. 어서 나와 봐라!”

아직도 문설주에 기대 멍하니 선 사내아이에게 손짓을 했다. 아홉 살이라고 했지만 허연 얼굴에 피둥피둥한 몸매가 맨날 구들장을 지고 빈둥거리는 열세 살의 큰형님 선출이보다도 더 커 보였다. 그러나 흘낏 기출이를 쳐다보는 눈빛에 문득 찔금 놀라는 기색이 비치더니 고개를 들어 다시 멍하니 하늘을 우러렀다.

“치만아, 그러면 안 된다. 큰 누부랑 내려가자.”

옆에선 처녀가 억지로 손을 끌고 마루로 내려왔다.

“치만아, 오늘부터 니캉 친구같이 지내면서 한방에서 잘 기출이다. 자, 둘이 인사해라. 손도 잡아보고.”
“...”

어미의 채근에도 기척이 없자

 “내가 기출이야. 치만이 형님아, 앞으로 잘 지내자.”

기출이가 먼저 손을 잡자 마님의 입가에 비로소 웃음기가 비쳤다.

“됐다. 이제, 큰님이하고 작은님이는 우선 이 아이를 좀 씻기고 큰님이는 치만이 옷 중에서 젤 작은 것 한 벌 찾아오고.”
 
이렇게 어색한 만남 뒤에 늘 넉넉히 먹지 못해 얼굴에 마른버짐이 덕지덕지하던 기출이는 비록 치만이가 어릴 때 입던 헌옷이기는 하지만 명주바지저고리에 조끼까지 일습을 갈아입고 말쑥한 성내의 도련님이 되었다. 그리고는 치만이와 겸상을 해서 점심을 먹는데 잡곡하나 없는 하얀 이밥과 기름방울이 동동 뜨는 소고기국에 연방 침이 넘어가면서도 감히 손이 가지 못 했다. 

 “치만아, 어서 한 숟가락 먹어라. 그래야 니 동생 기출이도 밥을 먹제.”

 아이를 보러 일부러 낮에 집에 들른 모 호방이 낮은 목소리로 채근했다. 아무리 호랑이 같고 승냥이 같은 호방나으리도 제 자식 앞에서는 어미 소처럼 인자해지는 모양이었다.

 “그 애 참 먹성도 좋구나! 예, 큰님아, 정지에 가서 밥 좀 더 가지고 오라고 해라.”

마지못해 수저질을 시작하는 치만이를 보면서 슬몃슬몃 수저질을 시작한 기출이 어느 새 제 몫의 밥과 국은 물론 상위에 놓인 김치와 나물을 태반이나 먹어치우고 열심히 나박김치를 떠먹는 것을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던 호방댁이 말하는데 하필이면 그 때 기출이의 입에서 푸 하고 배부른 트림이 나오자 네 딸아이들이 쿡쿡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보기는 기출이에게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하던 대단한 호사의 시작이었다. 기출이가 호방네 집에 들어가면서 독선생 석암선생은 해가 중천을 지나 서천으로 넘어가는 신(申)시경이 되면 버든의 집으로 돌아가 한 이틀을 묵고 읍으로 나와 또 한 이틀을 묵으며 공부를 가르치다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으니 치만이도 살판이 났지만 청소와 소소한 심부름을 하는 기출이에게도 한 번씩 공부방을 빠져나오는 일이 싫지 않았다. 게다가 날마다 들이랑 개울가를 떠돌며 가재나 게를 잡고 모래집을 지으며 놀던 처지라 기름지게 먹고 포시럽게 사는 성내생활이 갑갑한 기출이에게 

“오는 길에 복숭 꽃이 피었더라, 벌써 찔레가 먹기 좋도록 토실토실 살이 쪘더라. 구늪 사는 땅꾼 김 첨지가 오소리를 두 마리나 잡아 횡재를 했다는구나.” 
 하는 담 너머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좋았다. 게다가 더욱 살판나는 일은 공부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사내아이는 이렇게 네 누이의 치마폭에 얹혀 살 것만이 아니라 감나무에 올라가 홍시를 따다가 떨어져 장독간의 약탕관을 깨거나 강아지를 발로 차더라도 사내답게 놀게 놓아두어야한다는 바람에 온갖 놀이를 하거나 밖으로 쏘다니는 일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일이었다.

처음 같은 상에 밥을 먹고 방에 자더라도 치만이는 도무지 기출이에게 말 한 마디를 하지 않았다. 겁이 많아 늘 남의 눈치를 보는 데다 동작이 굼뜨고 어딘가 허술한 치만이가 밥을 먹다 젓가락을 떨어뜨리면 슬쩍 주워주고 잠자리에 들어 갑자기 오줌이 마려워 허둥거리면 재빨리 요강을 대령하는 일이 며칠간 반복되면서 처음으로 기출이에게 마음을 연 것은 어느 저녁밥을 먹는 자리에서 였다.

마침 울산에서 올라온 싱싱한 갈치를 사서 풍로 위에 석쇠를 놓고 노릇노릇 구워 상에 올렸는데 두 사내아이의 상에는 공교롭게 세 토막이 올라있었다. 제일 살찐 토막을 치만이에게 건네주고 자기도 한 토막을 집어 그야말로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운 기출이가 아직도 첫 번째 토막을 젓가락으로 조금씩 등만 긁어먹어 뼈가 약간 드러난 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치만이를 흘낏흘낏 바라볼 때였다.

머리가 주먹 하나보다도 더 올라오고 덩치가 두 배나 큰 치만이가 벌쭉 웃더니 젓가락으로 남은 갈치 한 토막을 냉큼 집어 기출이의 밥그릇에 올려준 것이었다.

“난 배부르다. 니 무라.”

사방에서 쳐다보는 어미와 네 누이의 눈길에도 놀라지 않았다. 진작부터 기출이에게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튿날부터 둘은 갑자기 친해져 온갖 장난과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기출이가 키가 작다고 손을 들어 기출이의 머리 위로 내리꽂는 시늉을 하며 치만이가 놀리면 기출이는 치만이의 키가 너무 크다고 손을 위로 치켜세우기도 하고 너무 뚱뚱하다고 양팔을 벌리는 시늉도 했다.

다음에 시작한 게 잠이 들었는지 눈까풀위에 손을 흔들어보다 갑자기 눈썹하나를 잡아당겨본다든지 잠든 입가에 슬그머니 먹물을 칠하는 것이었다. 그러다 발전한 것이 가위바위보였는데 이내 위의 두 누이가 끼어들었고 어떤 때는 누이들의 공깃돌로 살구 받기도 했다.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라 그해 가장 먼저 익는 과일인 살구가 높다란 가지에서 떨어지는 것을 맨손으로 받는 일에서 유래한 놀이인지도 몰랐다.

그런데 가장 어린 기출이가 다섯 개의 조약돌로 하나 받기, 둘 받기, 셋 받기, 모두 받기인 모듬 받기, 공깃돌을 손등 위로 던져 올려 안전하게 받아내는 자세놀이로 받은 돌이 쉰 개가 되면 이기는 이 살구 받기를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그 조그만 손으로 그것도 왼손잡이로 모듬 받기의 네 알을 흘리는 일 없이 능숙하게 움켜쥔다거나 그 좁은 손등에 올려놓고 공중으로 던진 후 손바닥을 뒤집어서 잡는 자세동작이 너무나 신기하면서도 귀여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 손 좀 만져보자며 밑에 누이 둘이 달려들다 위의 언니들에게 남녀칠세부동석도 모르냐면서 혼이 나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꼬마들의 장난은 집안전체에 조금씩 생기를 불어넣었고 이어 제기차기, 자치기로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이 도망을 갈 정도로 마당가득 활기로 채웠다. 처음 공부는 않고 저렇게 놀기만 해서 어쩔까 걱정하던 호방내외도 이제 삼시세끼를 잘 먹어내고 깊게 잠들어 숨소리도 고를 치만이의 혈색이 몰라보게 좋아지고 사람을 겁내지 않고 먼저 웃어주거나 인사를 건네는 모습을 보고 그저 흐뭇할 뿐이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영 안 하는 것은 아니었다. 석암선생이 사랑에 계시는 날에는 진시부터 오시까지 서너 시간 공부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 조금 더 신시까지 한 시간 남짓 복습을 겸하여 어디어디를 외우라는 숙제를 내고 공부를 마쳤다. 치만이가 공부를 시작하면 기출이는 밖에서 이런저런 심부름을 하기도 했지만 별일이 없으면 같이 방에 앉아 두 사람을 흘깃흘깃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어느 여름날이었다. 날씨가 너무 더워 조금 일찍 공부를 마치고 서부마을 방천 둑을 따라 한참 걸어 올라가 버드나무가 우거진 웅덩이에서 세족(洗足) 겸 목욕을 하고 온 석암선생은 청각과 미역을 넣고 맛나게 담근 오이냉국에 찹쌀새알을 넣은 수제비로 차린 저녁상을 대하고 있었다. 노란 참외와 탁주 웃물을 뜬 청주도 한 주전자가 있었다. 배불리 먹고 나자 은근히 시심이 솟아나 푸를 청(靑)자를 운으로 시구(詩句)를 다듬는데 방문밖에 두 사내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태껏 풋감을 따고 자치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저녁을 먹으려고 우물가에서 손을 씻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치만이 행님아, 봐라. 하늘 천(天)자가 그래 애렵더나?”
“그래. 써 놓은 것을 보면 알겠는데 막상 쓸라꼬 붓만 잡으면 도통 생각이 안 난다.”
“그럼 내가 가르쳐주까?”
“니가?”
“응. 형이 배우는 거 어깨너머로 보고 쪼깨 안다.”
“어떻게?”
“내가 우선 팔을 옆구리에 바짝 붙이고 걸어 볼께. 좌, 봐라. 지금 내가 무슨 글자 같노?” 
“진짜, 희한하게도 사람인(人)자 같네.”
“맞제? 사람이 또 이렇게 양팔을 쫙 벌리고 걷거나 누우면 얼마나 커 보이노? 그게 클 대(大)자란다.”
“그렇구나. 클 대자. 그런데 나는 얼핏 보니 디딜방아같구먼. 디딜방아.”
“그렇지 디딜방아도 요래 생겼지만 아무튼 클 대자로 외우면 수월하겠지.”
“그렇구나.”

같이 걷는 치만이는 잠잠한데 헉, 소리를 내면서 석암선생이 깜짝 놀랐다. 한 번도 가르친 일이 없는데 기출이가 한문을 몇 자 아는 것이었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군.

벌써 마흔 해도 더 지난 언양 읍내가 들썩거리던 젊은 서생 둔기마을 이 참봉댁의 참사가 떠올라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술잔을 내려놓았다. 

“허어 거 참, 거 참.”

석암은 자신에게 천자문을 가르쳐주던 반동(磻洞)선생의 발그레한 얼굴과 늘 열에 들뜬 벌건 눈빛이 생각나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술잔을 드는데

“행님아, 큰 대짜까지 알면 하늘 천(天)자는 누워서 떡 묵기다. 바로 큰 대짜에 커다란 보자기를 씌운 것, 그러니까 천장을 생각해봐. 사람이 팔을 벌리고 걸어가는 큰 대자 위에 보자기를 하나 씌우면 바로 하늘 천자인기라.” “그렇구나. 내일은 니 말을 생각하며 한 번 써 보꾸마.”

(저 조그만 아이가 벌써 천자문의 글자를 깨치고 남에게 가르치려들다니 한 번도 배우지도 않은 녀석이, 그저 어깨너머로 몇 번 쳐다본 놈이...)

석암선생이 늘 위태롭게 생각하던 하나의 우환, 기출이의 내력, 머리도 좋고 사람도 좋지만 무슨 일이 생기면 그 대쪽 같이 강직하며 화톳불처럼 잘 타오르는 집안의 기질이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일이었다.

비록 일개 서생이 감히 관, 그것도 현감나리에게 맞서다 험한 꼴을 당했지만 그 당랑거철(螳螂拒轍), 수레 앞의 사마귀처럼 제 소신껏 팔을 휘젓고 언사에 거리낌이 없어 몰락했지만 워낙 존경하던 스승이라 40년이 지난 지금 그 후손 하나를 그저 굶어죽지나 않고 밥이나 넉넉히 얻어먹고 자라나라고 슬며시 거둔 것이 어쩌면 다시 머잖은 장래에 저 총명한 머리와 거침없는 언사로 제 일신을 망침은 물론 석암선생 자신에게도 결코 적지 않은 위기를 몰고 올 것이 자꾸만 우려되는 것이었다.

비단 이번 일이 아니고 위기는 전에도 또 한 번 있었다. 기출이를 데려오고 한 달이나 지났을 때였을까. <계속>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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