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모 호방네의 기막힌 내력 ③도장방, 끝님이와 신랑각시놀이
“자나? 여게도 전부 다 자나?”
끝님이의 목소리였다. 모르는 척 숨을 죽이고 있는데
“잠티 치만이는 잘 끼고 기출이 니는 안 자제? 기출아, 기출아 일나 봐라!”
쑤욱 문을 잡아당기는지 습한 공기를 타고 차가운 빗방울 몇 개가 기출이의 얼굴 위로 떨어졌다. 밖은 여전히 창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방문을 등지고 지우산을 받쳐 든 끝님이의 머리채와 얼굴 윤곽에도 구슬처럼 하얀 빗방울이 튕기고 있었다.
“기출아, 기출아. 어서 일나 봐.”
손을 뻗어 기출이의 발바닥을 간질이는 바람에 그만 푸우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그럴 줄 알았다. 어서 나와 봐.”
이번에는 문지방에 한 발을 걸치고 사정없이 손목을 낚아챘다.
“아아, 알았어.”
엉겁결에 베잠방이차림으로 끌려나온 목덜미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차가웠다.
“어데 갈라꼬? 이 빗속에...”
“엄마도 큰 언니도 둘째, 셋째도 다 잠들었다. 온 집안이 다 잠들고 눈 뜬 건 니캉내캉 둘뿐이다. 걱정 말고 따라 온나.”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아래채 모퉁이의 광 앞에 우뚝 멈춰 섰다.
“우리 도장방 안에 들어가서 놀자. 거 게는 묵을 기 많다.”
벌써 쇳대까지 챙겨온 모양이었다. 재빨리 무거운 나무문을 열어젖히더니
“어서 들 온나.”
손짓을 했다. 벽을 등지고 쌓아둔 쌀과 보리쌀 가마니와 콩과 팥을 넣어둔 자루와 주렁주렁 매달린 메주와 보자기 위에 펼쳐놓은 질금(엿기름)가루, 탁주를 병에 넣어 띄우는 초(醋)병에서 온갖 냄새들이 진동했다. 마른 미역과 다시마, 김과 멸치와 새우젓에다 고춧가루, 소금 가마니에서 나는 냄새들이 한데 엉켜 퀴퀴하기도 하고 들큰하기도 했고 간간이 소금냄새 먼지 냄새, 짚 냄새가 훅 하고 코를 스치며 연기처럼 매캐하기도 했다. 말린 대추와 곶감도 있었다.
“자, 여기 앉아 묵어봐라. 내 조청하고 꿀도 찾아 오꾸마.”
커다란 쌀독 앞에 보자기 하나를 깔고 기출이를 앉혔다. 그리고는 대추와 곶감과 떡국용의 말린 떡인 <꿉은 떡> 조각을
펼쳐놓고 꿀이나 조청을 찾느라고 부스럭거렸다.
“됐다. 그냥 묵자. 이러다가 누가 오면 우짜노?”
“우짜기는? 아무도 올 사람이 없다. 그냥 묵고 놀면 된다.”
평소 떡국을 즐기는 호방을 위해 지난 설날 무쇠솥뚜껑을 뒤집어 불로 달구고 찹쌀가루로 노릇노릇하게 구운 널찍한 굽은 떡을 길쭉길쭉 먹기 좋게 잘라 매달아논 것을 어디에서 찾아왔는지 조청에 찍어 기출이의 입에 넣어주고 자기도 한 입 먹으며
“꼬깜하고 대추도 실컷 묵어라. 어데 있는지 꿀도 내 찾아 오꾸마.”
끝님이가 잔뜩 신이 났다. 처음 너무 말라 입속을 뱅뱅 돌던 꿉은 떡이 차츰 촉촉해지더니 꿀 한 숟갈을 떠 넣으니 갑자기 입속이 극락처럼 황홀해졌다. 거기다 멸치와 김과 곶감까지 머금으니 그 맛이 형용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엔간히 맛있는가 베. 자, 내가 알밤도 까 주꾸마.”
밤 껍질을 깨트리고 보네를 벗기기 시작하던 끝님이가
“니 잔칫상에 왜 알밤을 놓는지 아나? 그 기 남자한테 좋아서 새신랑이 묵으면 금방 아들을 놓는다 안 카나?”
아하, 그래서 우리 논꼴 자형도 합근 주를 마실 때 알밤을 먹고 바로 생질 만택이를 낳았구나 싶으면서도 뭔가 미심쩍어
“남자한테 좋다니?”
기출이가 묻자
“니는 아직 모른다. 말하자면 알라를 만들 수 있다는 기다. 이따 내가 가르쳐 주께. 그건 그렇고 우리 술 한 잔 갖다 무까?”
“술을? 술은 웬 술을?”
“남녀가 정분이 나는 데는 술이 최고란다.”
“정분이라니?”
“니는 아직 모를 끼다. 글치만 나는 안다. 명촌에 시집간 우리 큰 언니가 친정 와서 형부랑 자면서 하는 신랑각시놀이를 내가 다 훔쳐보았지. 그래서 나는 머시마가 사내가 되고 가시나가 아낙이 되는 이치를 다 안다. 그라고...”
신나게 말을 잇던 끝님이 갑자기 멈추었다.
“그라고?”
“...”
끝님이가 말없이 웃물 한 잔을 내밀었다. 지난 설에 시집간 큰님이 언니가 친정에 오면서 차반으로 가져온 맑은 술이었다.
“난 안 묵을란다. 한 번도 안 묵어봤다.”
“괜찮다. 나도 제사상 치우다가 두어 번 맛만 봤는데 묵을 만하더라. 처음에는 목구멍이 따끔하고 가슴이 화끈하지만 금방 온몸이 후끈후끈 풀리면서 괜찮아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자, 내가 묵는 거 봐라.”
간장종지에 부은 웃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독한지 숨구멍에 걸렸는지 캑캑 두어 번 기침을 하고 나서
“봐라. 까딱없지. 여자인 나도 묵는데 니도 무 봐라.”
곶감 한 쪽을 씹으면서 억지로 술잔을 디밀었다.
“난 진짜 안 묵을란다.”
“안 묵기는? 이 술 한 잔만 묵으면 내가 아까 말하다 말은
남자가 되고 여자가 되는 기 뭔지 다 이바구해주께. 자 묵어봐.”
사정없이 들이미는 바람에 엉겁결에 잔을 받은 기출이가 한 모금 들이키다가 캐액 기침을 하며 금방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콜록콜록 한참이나 기침을 해댔다. 날카로운 칼끝이 울대를 베어가거나 타고내린 뜨거운 물이 식도 끝을 태우는 통증이 이제 열 살 조그만 소년을 못 견디게 했다.
“하하하, 참 잘했구나. 그럼 우선 여기 앉아봐. 내가 다 이바구 해주꾸마.”
주섬주섬 자리를 치운 끝님이가 기출이를 자기 옆으로 앉혔다. 그리고는 기출이의 손을 꼭 끌어 잡고는
“자, 잘 들어봐라. 그러니까 머스마가 사내가 된다는 것은 한 열대여섯이 되면 거 뭐이고 고추도 커지고 부랄도 커지고 또 시꺼머지면서 여자를 만나면 아이를 가지게 하는 거란다. 또 여자도 열 서넛이 되면 그 뭐꼬 아랫도리에 꽃이 비치기 시작하는데 그 기 사내를 만나면 알라를 만드는 것이란다. 그래서 우리 큰님이 언니처럼 혼인을 하면 남녀가 그 얼라를 만드는 신랑각시놀이를 하는 것이란다.”
한 모금의 술에 온몸이 노골노골한 기출이는 끝님이가 신나게 하는 이야기가 이승인지 저승인지 알 수 없이 그저 우당탕탕 내리는 장맛비와 홍수에 휩쓸려 가는 건지 천둥이 울고 벼락이 치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기출아, 나는 지난봄에 여자가 되었다. 살구꽃이 한창 피던 오후에 앵두나무아래 장독간에 앉았는데 밑이 이상해져 깜짝 놀라니까 우리 작은님이 언니가 얼른 나를 데리고 작은 방에 가서 고쟁이를 갈아입히며 갈차주더라. 벌겋게 아래를 적신 것을 꽃이 피었다고, 이제 여자가 되었다고 이약 해주고 사내를 조심하라고 했지. 그때 우리 엄마가 와서 ‘가시나가 시근은 자래콧구멍만 한 기 어망만 터졌다.’고 씨익 웃었지. 그리고 속옷이랑 개짐도 새로 장만해주고 치마저고리도 한 벌 해주었지.”
“...”
듣는지 마는지 기출이의 눈이 빨개져있고 숨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우리 오늘 신랑각시놀이 함 해보자. 니는 아직 사내가 아닌 머스마라서 아무 탈도 없을 끼다.”
역시 눈이 빨개진 끝님이가 쪼옥 소리가 나게 기출이와 입맞춤을 했다. 어안이 벙벙했지만 몸을 못 가누어 팔을 한 번 저어보다 마는데 끝님이는 이어 기출이의 얼굴과 목덜미와 가슴을 더듬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베잠방이 사이의 조그만 젖꼭지를 만져보며
“에게게, 팥알보다도 작은 녹두알이로구나.”
혼자 중얼거리더니 이어 아랫배를 거쳐 숨을 고르더니 단번에 바지춤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에게게, 이게 뭐야? 고추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혀를 끌끌 차며 씨익 웃는데 창피해 죽을 지경인 기출이가 몸을 뒤틀자 도로 주저앉히려던 끝님이가
“어어, 이것 봐라!”
눈이 동그래지더니
“생겼다. 생겼다. 기출이 니도 곧 사내가 될 낀가 봐! 젓가락만큼 꼿꼿하고 손가락보다도 더 굵다!”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씨익 웃었다.
“가만 있어봐, 기출아. 니는 그냥 가만히만 있어봐.”
다시 쪼옥 입을 맞추고는
“우리 진짜 신랑각시놀이 한 번 해보자. 우리 큰님이언니랑 형부가 하는 것을 봐서 니는 가만있어도 내가 다 알아서 할 수 있을 끼다.”
저고리를 벗자말자 꽁꽁 홀쳐맨 치맛말이 나타났고 치맛말을 훌렁 벗어버리자 봉곳한 젖가슴이 드러났다. 아기의 주먹처럼 작고 귀여운 가슴이었지만 정신이 혼몽한 기출이는 제대로 쳐다보지를 못 했다. 이어 다시 기출이 쪽으로 몸을 기울인 끝님이가
“그래 가만 있어봐. 가만히만 있어.”
귓속으로 호오 입김을 불어넣으며 아래쪽으로 더듬어 내려가는데
“에라이. 이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덜컹 도장 문이 열리며 마당 쓰는 빗자루가 끝님이의 등허리를 강타했다. 외출했던 모 호방이 돌아오다 난데없이 숨넘어가는 신음소리를 듣고 나타난 것이었다.
상소문으로 연을 만들었던 첫 번째의 쫓겨남과는 달리 두 번째의 추방은 훨씬 더 가혹하고 단호했다. 마당 쓰는 대빗자루로 등짝을 얻어맞은 끝님이야 제가 좋아 저지른 일이지만 아무 영문도 모르고 생전 처음 마시는 낮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바람에 죽도록 치도곤을 당한 것은 오히려 기출이었다.
“네 이놈, 처음 너를 보러 버든에 갔을 때 어딘가 당돌하고 사람을 해칠 것만, 아니 사람 여럿 잡아먹을 것 같아서 내 잠깐 망설였지만 소캐집 가서방을 보고 거두어주었는데 지지난해 연 만든 일은 제쳐두고라도 아직 대가리 피도 안 마른 녀석이 여자를, 그것도 나이가 네 살이나 많은 주인댁 아씨를 집적댄다는 것이 어디 사람의 자식이란 말인가? 그러고도 인간이란 말인가?”
부지깽이에 홍두깨에 이남박까지 손에 집히는 대로 던지고 내리쳐 술이 번쩍 깨다 못해 피투성이가 되도록 박살을 내고는
“당장 내 집에서 나가. 이 개만도 못한 자식아! 내 아들 선찮은 것도 억울한 판에 웬 불한당 같은 놈이 들어와 딸들까지 망치려고 지랄이야. 썩 꺼져. 이 도둑놈의 자식아!”
이번에는 지개작대기를 찾아들고 본격적으로 몽둥이찜질을 시작하려는 판에 잠에서 깬 치만이가 어슬렁거리고 나타나더니 사태를 파악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넝마처럼 널브러진 기출이의 등짝을 감싸 안았다. 불시에 당한 일로 아직 털도 나지 않고 새집에서 떨어진 참새새끼처럼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기출이를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입가에 피를 닦아주던 치만이가 벌떡 일어서더니 무서운 눈빛으로 제 아비를 쳐다보았다. 분노와 원망이 가득한 눈빛이었다. 단 한 번도 그런 눈빛을 보지 못한 호방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서며
“이, 이 이 자식이 잘 하면 애비 치겠다!”
중얼거리면서 손에 든 작대기를 떨어뜨렸다. 치만이의 꽉 진 주먹이 부르르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어 끝님이의 옷매무시를 다듬어주면서 주먹으로 등짝을 두 번이나 두들겨 패면서 혀를 끌끌 차던 호방댁이 작은님이와 순님이를 시켜 기출이의 옷가지를 뭉친 보따리를 들고 오게 했다. 평소 좀 심술기가 있는 작은님이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그 험한 몰골의 기출이와 눈이 마주치자 혀를 쏘옥 내밀었다.
호방과 호방댁, 작은님이, 순님이가 끝님이를 이끌고 물러나자 도장방 앞에는 엎드린 기출이와 구부정한 어깨로 내려다보는 치만이만 남았다.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이며 울던 기출이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작은님이가 던져준 옷 보퉁이를 집어 드는데 치만이가 기출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
가지마. 가지마. 말을 않아도 그 덩치 크고 순진한 아이의 눈빛이 말하고 있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는 해도 기출이의 헝클어진 머리와 피투성이의 이마에 쉬지 않고 작은 방울들을 쏟아지고 있었고 치만이의 널따란 등짝도 후줄근히 젖어들고 있었다.
(가야 된다. 안 가면 치만이 형도 괴롭고 끝님이 누나는 더더욱 힘들 끼다. 난 가야 된다!)
단호한 기출이의 표정을 보며 기출이의 심중을 짐작했는지 말없이 길을 열어준 치만이가 주춤주춤 기출이를 따라와 뚝다리를 건너 버든마을 고샅길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비로소 돌아서며 손을 흔들었다.
“우야고, 우야꼬! 이기 도대체 무슨 일이고? 대명천지 밝은 날에 남의 귀한 자식을 누가 이렇게 피 칠갑으로 만들었단 말이고 기출아, 기출아!”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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