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물장사 4형제 ①정자항
목포항에서 염분(鹽分)이를 버리고 떠난 지 닷새 만에 기출이는 울산 강동 정자항에 도착하였다. 말이 항구지 백호도 채 안 되는 마을에 불과 여남은 척의 고깃배와 새로 나온 통통배 서너 척이 전부인 작은 어촌이었다. 그래도 넓고 완만한 모랫바닥에서 사철 잡아 올리는 가자미와 도다리, 넙치 외에는 물꽁이라고 불리는 아귀, 물곰 또는 무기라고 부르는 물메기에 매운탕꺼리인 쏠벵이, 삼식이등이 가끔 올라오고 겨울철의 물때에 따라 간간히 등딱지가 사발만하고 한 뼘이나 되고 다리가 대처럼 속이 빈 대게와 등에 둥근 뼈가 들어있는 갑오징어가 주로 잡히는 어종이었다.
그러나 굴곡이 거의 없는 해안에 사철 물이 찬 그곳의 갯바위나 바위섬의 기슭에는 어디에 내어놓아도 손색이 없는 돌미역이 생산되어 인근의 기장지방과 함께 울산미역, 기장대각 등으로 전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최고급 미역으로 특히 산모들에게 더 없이 좋은 특산품으로 그 옛날부터 팔도의 보부상이 몰려들어 전국으로 퍼져나가 한양에서도 알아주는 특산품이라 했다.
심지어 그곳에는 수중에 떠있는 갯바위 하나에도 각각 주인이 있다고 했다. 그도 그를 것이 갯바위 하나에서 나는 돌미역으로 예닐곱 식구가 한해를 먹고사는 것은 물론 커다란 갯바위 몇 개로 한마을이 먹고살기도 했고 공을 세워 나라님으로 부터 개인에게 하사받은 갯바위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비록 좁은 항구지만 마을사람들의 살림살이도 비교적 풍족하고 먹고살기가 넉넉하니 인심도 좋고 편이라 했다.
그러나 기출이가 정자항에 자리 잡은 것은 인근의 돌미역이 좋아서도 사철 붉디붉은 동백꽃이 선연한 포구 앞 목도섬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목도에서 가까운 병영이라는 마을에 지난해 추석을 쇠면 모 호방네 셋째 딸 순님이가 시집간다고 들었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요행히 그 순님이를 접촉하면 막내 끝님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사실 그가 증도의 종일 이글거리는 땡볕으로 이마가 뜨겁고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으로 눈이 따갑고 홀로 지쳐 누운 골방의 잠들기 직전과 깨어난 직후의 그 쓰라린 외로움을 이겨낸 것은 어쩌면 다시 한 번 끝님이를 만나야겠다, 그러자면 계약된 1년 간의 이 지독한 고생을 견뎌내고 임금을 받아 이 지독한 시루섬을 벗어나 당당히 끝님이를 만나야겠다는 결심 때문이었다.
비록 지난번엔 엉겁결에 모 호방으로부터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물러났지만 갑오년의 경장 이후 반상이 폐지되어 양반과 상놈이 없어진 판에 제 아낙 하나 건사할 여력이 있다면 굳이 끝님이와 혼인을 못할 것도 아니었다.
아니 굳이 반상을 따진다 해도 겨우 육방관속인 끝님이네 보다는 오래전 한성의 판윤까지 지내고 낙향한 향반의 집안으로 이미 가세가 기울어져 잔반(殘班)도 못 되는 남의집살이를 할 망정 그 핏줄이랄까, 뼈대랄까, 가문을 운운할 때 굳이 주눅이 들거나 머리를 숙일 것도 없다는 것이 나름대로 그 동안 객지를 떠돈 기출이의 깨달음이고 오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이가 네 살이나 떨어지고 그 만남 자체가 아이보기로 들어간 집의 딸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반상이 무너져도 맺어진 인연 자체가 주인과 머슴, 이미 상하가 뚜렷한 입장이었으니 전연 거리낌이 없는 당당한 사이는 역시 아니었던 것이었다.
그렇다해도 지난번처럼 단둘이 살며시 만나기만 한다면 이것저것 가릴 것도 없이 그길로 바로 야반도주를 할 심산이니 꼭 안 될 것도 없었다. 지난번에는 끝님이가 제 아비의 돈 가방을 훔친다고 했지만 이제 그럴 것도 없는 것이 자신의 수중에도 상당한 돈이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증도의 그 짐승보다 못한 생고생을 한 덕에 자신도 어엿한 한 명의 사내, 아니 어떤 노동도 할 수 있는 일꾼으로서 제 한 몸은 물론 살붙이 아낙이나 피붙이 자식이 한둘 있어도 어떻게든 먹여 살릴 자신도 생기고 배짱도 붙은 것이었다.
문제는 그 돈의 출처가 꺼림칙한 것이었다. 물론 염막의 내외가 일부러 사람만 부려먹고 노임을 떼먹기 위해 그런 험악한 굿을 벌인 것인지는 몰라도 어차피 그 집에서 노동을 하였으니 그 돈이 당당히 자기 몫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사기에 걸렸다고는 해도 이미 그 임금을 포기한다고 순순히 물러선 마당에 그 집 딸인 염분이가 훔쳐온 돈이 틀림없음에는 무슨 장물처럼 어쩐지 떳떳하지가 못 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돈 자체가 자신이 스스로 염막사내나 아낙과 우격다짐으로 뺏은 것도 아니고 자신을 마음에 두고 그 소금 섬을 빠져나와 뭍이나 대처에 살고 싶은 순진한 섬 처녀가 훔쳐온 돈이었고 그 돈으로 그 철없는 섬 처녀와 그는 소고기국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고 여인숙에 들고 오징어와 고구마를 사먹었던 것이었다.
물론 아무리 그 돈이 훔쳐 나온 돈이지만 한 처녀가 한 총각에게 목을 매고 들고 온 돈이라면, 또 그 총각도 그 처녀를 진심으로 받아들여 같이 뜨거운 밤을 보내고 어디 외진 곳에 오두막을 세우고 묵정밭이라도 갈아엎어 아이 낳아 기른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으련만 현실은 총각이 처녀의 몸을 버려놓고 책임도 지지 않은 채 그 돈의 일부를 쓰고 또 일부를 들고 튄 것이었다. 그나마 그 처녀를 길거리에 버려 술집이나 유곽 같은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한 것은 다행이지만 밤새 농락한 처녀를 제 아비에게 돌려주고 도망질한 것 자체도 역시 몹쓸 일 중의 몹쓸 일 이었다.
따지고 보면 염분이의 돈으로 끝님이와 야반도주를 한다는 엉뚱한 꿈을 꾼다는 이야기가 되는 데 이게 언양 장바닥에 떠도는 <체 장사 돈으로 체 맨다>는 말 같기도 했다. 장터 주모가 아침 댓바람에 체 장수에게 마수걸이를 하고 그 돈으로 떨어진 체를 메워 술을 거른다는 그 속담자체가 어찌 보면 말이 되는 것 같지만 마치 빚을 진 소매치기가 돈 받으러 온 빚쟁이의 호주머니를 슬쩍 해서 돈을 갚는 것처럼 어쩐지 어색하고 고약한 어불성설(語不成說) 같은 것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끝님이는 끝까지 지켜주어야 할 여자이고 염분이는 아무렇게나 버려도 좋은 여자인가, 어차피 다 같은 댕기머리에 똑 같은 부자지를 달고 있는 한 사내, 한 처녀라면 서로가 마음을 주고받음에 있어 조금도 차별이 있어서 안 되는 똑 같은 사람대접을 받아야하는 이치였다.
그러나 곰곰 생각하면 조금은 다르기도 했다. 끝님이와 염분이가 한 사내로서 기출이 자신을 맘에 두고 좋아함은 다 같지만 우선 끝님이는 기출이가 아주 어린 일곱 살적부터 팔년이란 긴 세월을 두고 마음을 준 여자였고 그 동안 밉네, 곱네 하면서 이리저리 휘둘린 기출이 자신도 어느새 조금씩 마음이 끌려 비록 여자의 손에 이끌려가기는 했지만 마침내 몸을 섞고 비로소 한 사내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리고 증도 소금밭에서의 그 긴 괴로움을 이겨낸 것도 어떻게든 이 고통을 이기고 다시 끝님이를 만나야겠다는 각오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각오 이전에 아침에 눈을 떠 저녁에 눈을 감을 때까지 단 한시도 떠나지 않는 지금쯤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하는 궁금증과 제 아비 조호방으로부터 모진 매질이나 내침을 당하지 않았을까하는 걱정, 그리고 시시각각 눈앞에 아롱거리는 보고 싶고 그리운 마음 때문이기도 했다.
궁금증과 걱정과 그리움 그 셋 중에서도 남여 사이에서 가장 끈질긴 놈은 역시 그리움일 터였다. 기출이 역시 그랬다. 언양에서의 긴 세월 동안 끝님이누나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신도 과연 끝님이를 좋아하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면서 단지 모 호방과 석암선생과 어른들이 두렵고 그래서 늘 움츠리기만 했던 사이, 그러나 자신이 조금씩 커가면서 마침내 여자에게서 풍기는 그 화아하고 달콤하고 저도 몰래 등줄기를 저릿저릿하게 하는 살 냄새를 느끼게 되면서 은근히 좋은 것 같기도 하면서 늘 수동적으로 끌려 다니다 무려 다섯 해의 객지살이를 해야 하는 날벼락을 맞으면서도 결코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마침내 여자로서는 허신(許身), 사내로서는 합궁(合宮)의 고개를 넘지 않았던가?
비록 두 여자가 다 같은 여자로서 다 같은 숫처녀로서 그에게 몸 전체를 던져왔지만 그 세월의 길이만큼이나 끝님이에게 마음이 쏠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염분이를 만나게 된 그 과정이 끝님이로 해서 벌어진 사단(事端)으로 끝님이를 피해 끝님이를 잊어야한다는 것이 점점 그 끝님이가 더 그리워져 마침내 ‘내 이번에는 어떻게든 끝님이를 만나고 내 손으로 끝님이를 꿰어찰 것이다.’라는 모진 결심을 하고 그 돈벌이를 위해 떠난 외진 염막에서 인연의 실타래가 엉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랬다. 여자나 남자나 그 연모에 있어서 한 가슴에 두 사내나 두 여인을 품기가 결코 쉽지가 않은 것이었다. 하나가 사랑이라면 하나는 동정이거나 미련이거나 집착이었고 하나에 목숨을 걸어 다른 하나를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미련 없이 희생시키거나 엉뚱하게 이용하는 것, 그 모질고 허황함 자체가 바로 사랑 또는 연모, 한 인간이 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입에서 단내가 나는 뜨거운 밤을 보내고 오로지 너를 위해서라면 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이대로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기꺼이 노동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는 그 실체인지도 모르고 그런 난맥 자체가 바로 사랑인지도 몰랐던 것이었다.
이런 난삽하고 혼란한 생각 끝에 결국 나의 첫사랑은 끝님이며 염분이는 저가 날 연모했을 뿐이며 제 스스로 던진 몸을 버리기는 했지만 일단 제 아비에게 인계는 하였고 그 억척같은 염막내외가 두들겨 패는 한이 있어도 어떻게든 건장한 염부를 구해서 시집을 보내고 사람을 만들기는 할 것이라는 쪽으로 덮어주기로 했다. 그래도 혹시 그 하룻밤의 일로 아이라도 생겨 그 먼 언양까지 찾아올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그 역시 가뭄에 콩 나듯. 아니 하늘에서 별을 따듯 드물고 어려울 일일 것이라 덮어두기로 했다.
어린 시절 손위의 두 형들과 자주 못자리의 뜸부기나 솔밭의 꿩알을 찾아내거나 벌써 알을 깸 뜸부기새끼와 꽁삐가리를 수 없이 쫓아본 그로서는 사람은 결코 두 토끼를 쫓아서는 아니 되며 일단은 단 하나의 선택에 목을 매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어이 순님이를 만나고 끝님이를 찾아야하는 것이었다.
그런 기출이의 간절한 소망은 어떻게 순님이를 만날까, 병영이 어느 쪽, 어디쯤이며 작년 가을에 시집온 색시가 있는 군관의 집이 어디인가를 알아볼까, 물때를 보아 한 동안 배가 못 뜨는 어느 항차에 나가볼까하는 고민이 어느 날밤 저녁을 먹으러간 주막집에서 단 한 순간에 결판이 나고 말았다. 너무나 어이없고 허무하게 결론이 난 것이었다.
새벽 일찍 아귀를 잡으러 떠난 배들이 종일 허탕을 치다 오후 늦게 뜻밖에도 참가자미를 그물가득 건져 보리밥풀로 잉어를 낚는 대 횡재, 만선중의 만선이 터진 날이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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