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물장사 4형제 ⑤막내의 꾀
서촌댁 4형제가 이렇게 한꺼번에 장사에 나선 것은 기출이가 읍내 솜집 아저씨의 소개로 사철 내내 문어 오징어 열합 군소 미역 김 같은 건어물과 철따라 갈치 조기 고등어 대구 명태 청어 가자미에 복어까지 떼다 파는 어물전 김씨를 따라 감포로, 울산으로 몇 번 물건을 떼다 난장에서 팔아 나름 짭짤하게 수입을 올리면서 낸 꾀였다.
기출이가 버든마을로 돌아온 후로 위의 두 형은 저녁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머슴살이를 하는 그 먼 마을에서 본가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어머니나 형을 찾고 인사를 했지만 이젠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기출이만 찾는 것이 언제나 수중에 돈이 떨어지지도 않을 뿐더러 마음도 여려 웬만하며 군말 없이 두 형이 원하는 대로 탁주잔이나 두부모도 잘도 사는지라 공연히 술이 먹고 싶어서 오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워낙 배도 크고 돌멩이라도 삼키기만 하면 바로 소화가 될 나이이기도 하지만 그저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엇이든 덜렁 저지르고야마는 덩덕꾼이 같은 성질이 문제였다.
열 살 전후에야 밥만 먹여주면 되는 꼴머슴으로 들어갔지만 진작 덩치가 태산만 하여 한 사람의 장정으로 노임을 인정해주는 <들돌>도 열 세넷에 들어 올린 장사에 쟁기질, 써레질을 다 하고 그 어렵다는 콩밭에 끌도 잘만 부치는지라 이젠 한 해 새경도 너덧 섬은 받는 상머슴이었지만 그들의 수중에는 언제나 돈 한 푼, 쌀 한 됫박이 남아있는 날이 없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비교적 한가한 겨울철, 특히 설날에서 보름전후의 명절뒤끝에 가끔 동네머슴들의 초당 방에서 골패짝이나 화투장을 잡다가 진작 새경을 날리는 경우도 있었고 또 또출이의 경우는 지나가는 마을처녀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기다 들켜 몽둥이찜질과 함께 쌀가마니나 빼앗긴 일이 있었다고는 하나 그렇게도 휑하니 빈손인 것은 아마도 그렇게도 저녁마다 못 먹어 환장을 하는 술추렴으로 다 날아간 모양이었다.
나무하러 가는 머슴들의 이약에
“이 산 저 산 다 잡아먹고도 아가리만 딱 벌리고 있는기 뭐꼬?”
“그 기사 정지구석에 부석이지.”
수작을 하는 부엌아궁이, 부석처럼 그야말로 이것, 저것 다 집어먹고도 눈만 뜨면 배가 고파 늘 아우성인 저 곰 통 같은 두 형의 등쌀에 마음여린 기출이도 마침내 몸서리가 난 것이었다.
어느 날 기출이는 두 형들에게
“새이야, 너거 죽도록 너무 집을 살아도 맨날 빈주먹인데 차라리 나를 따라 생선이나 떼러 다니자. 새이들이 힘이 장사라 엔간히만 부지런하면 먹고 살고 장가밑천도 벌릴 것이다.”
처음으로 제안을 해도 반응이 시큰둥하지 꾀를 내어
“새이야, 그 장사라는 거 무시 못 한다. 엔간히만 되면 저녁마다 국밥도 먹을 수 있다. 그라고 혹시 횡재라도 만나면 경주 쪽샘에 있는 색시 집에도 갈 수 있다.”
꼬드기자 귀가 솔깃해 각기 득달같이 주인집으로 달려가 급한 가을걷이만 마무리하고 한달음에 달려온 것이었다.
과연 셋이 다니니 물건도 많이 떼고 적적치도 않을 뿐더러 간혹 기출이를 집적거리던 감포 왈패들도 두 형들의 덩치를 보고 슬슬 피해가니 일석이조도 아닌 일석삼조에도 벌이도 넉넉하고 기출이 말대로 저녁마다 장국밥에 탁주도 넉넉히 마실 수 있어 두 형들로서도 대만족이었다.
옛말에 곰이 재주를 부린다더니 그 곰통 같은 형제가 뭔 커다란 꾀를 낸다고 한 것이 큰형 선출이에게 함께 장사를 다니자고 꼬드긴 것이었다. 형이 그저 아무 말 없이 눈만 반짝거리자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형이 같이 다니기만 하면 짐은 우리가 많이 덜어주고 형은 반만 지고 다니면 되고 그렇게 한 몇 달만 부지런히 하면 형도 벌고 우리 3형제도 좀 보태고 해서 형님 장가부터 보내드린다고, 형님이 어서 장가를 가야 우리도 장가를 갈 텐데 자신은 물론 또출이, 기출이까지 저녁마다 불두덩이 근질근질해서 죽을 지경인데 명색 큰형님이 도무지 장가를 가지 않고 앞을 가로 막으니 죽을 지경이라고 재출이가 말하자 문득 벌쭉 웃음을 웃던 선출이가 이튿날 아침 슬그머니 따라나선 것이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저 건너 큰 산 밑에 강강술래
동백 따는 저 큰 아가 강강술래
앞 돌라라 인물 보자 강강술래
뒷 돌라라 태도 보자 강강술래
인물태도 좋다마는 강강술래
눈 주자니 너 모르고 강강술래
손치자니 넘이 알고 강강술래...
입가에 시꺼먼 검댕이 묻은 채로 두 형들이 다시 겅중거리며 뛰어가기 시작했다. 얼마나 재게 걷는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강강술래 역시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고받고 있었다. 몸이 약한 큰 형을 잘 챙겨오라면서 기출이의 지게를 벗겨 이제 둘이 각각 두 깨씩 엎어서 지고 있었지만 선출이가 따라잡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야, 이 노무자석 오줌발 좀 봐라! 굵기가 아주 두레박줄 같구만.”
“내가 두레박줄이면 새야 니는 팔월 한가위 줄다리기기하는 동아줄 같구만.”
“머라꼬? 짜식 풍다리도 좋다. 그건 그렇고 아까 노란 약 미꾸라지를 서너 마리씩이나 먹었으니 오늘 밤 불두덩이 근질거려 잠을 우째 자겠노? 또출이 니사 똥누러간다 캐놓고 맨날 엉뚝 밑에서 손장난하는 거 내가 잘 알지만.”
“뭐라커노? 새이야, 그 손장난인지 용두질인지 내가 새야 니한테 배웠지 누한테 배웠겠노?”
나란히 언덕 밑에서 오줌을 누는 형제를 보면서 이제 도착한 선출이는 빙그레 웃는데
“이 시근 없는 새이들아, 넘 들으면 우짤라꼬 그라노? 좀 점잔해 봐라.”
기출이도 빙긋 웃으며 바지를 내리면서 나란히 섰다.
“그래, 니 말이 맞다. 우리 둘이사 이미 엄매가 손 처내 논 종내기들이고 점잔키사 우리 큰새이가 부처님 복판동가리 아이가? 평생 말 한 마디 없고 골 한 번 안 내니 거기 바로 부처가 아이고 머꼬? 진짜 똥만 빼면 부천기라 부처!”
또출이가 슬쩍 눙치자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재출이, 기출이도 따라 웃는데
“이노무 손들!”
선출이가 정색하는 척 하더니
“야들아, 우쨌기나 힘 있을 때 떠들어라. 나는 마 웃을 심도 없다.”
그 제서야 바지를 내리고 끼어들었다.
에헤야 에헤디야 에헤디야
훨훨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돌려라
장모님 디릴라꼬 굵은 호박을 삶았는데
삶고 삶고 또 삶아서 요강단지를 삶았네
에헤야 헤야디야 헤야디야
훨훨 돌아가는 물레방아를 돌려라
재출이가 포문을 열자 또출이도
님이 죽고 내가 살면 열녀가 되나요
한강수 깊은 물에 빠져나 죽자요.
에화 야로야 에화야로 얼싸 좋아 성화가 났구나.
조를 맞추며 겅중겅중 달렸다. 빈 몸으로 달려도 힘이 부친 선출이
“자알 한다. 저 넘들은 배도 안 고픈가? 내 같으면 배 꺼질까 싶어 노래는 안 하겠는데.”
그 작은 체구에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기출아, 아니 행수님, 점심 없능교?”
문득 멈춰선 또출이가 돌아보며 물었다. 어디서 보부상의 대장을 행수라고 부른다는 것은 들은 모양이었다.
“보자아, 경주까지는 아직 삼십 리나 남았고. 점심은 거기 가서 느지막이 묵기로 하고 우선 콩고물밥이나 묵읍시더”
그대로 길바닥에 둘러앉아 기출이의 지게에 매달아놓은 밥보따리를 풀었다. 낡아서 거무칙칙한 무명베에 새파란 콩고물을 깔고 고구마가 섞인 보리밥을 펴고 그 위에 다시 콩고물과 깍두기김치를 넣고 공처럼 오므린 보따리를 펴놓자
“우리 기출이행수가 가르소. 우리 성제간에는 큰 성은 워낙 점잖아서 말이 없고 우리 둘은 천둥벌거숭이로 날뛰는 날탕이니 만사 기출이대장이 해야지요.”
재출이가 시익 웃자 기출이가
“큰 새이가 하소.”
“아이다. 망내이 니가 해라.”
주고받다 마침내 기출이가 보따리 위에 열십자를 그어 넷으로 나누더니 자기 몫에서 한 덩어리를 떼어 침을 꼴깍거리는 또출이에게 밀어주자 바라보던 선출이도 밥 한 덩이를 재출이쪽으로 밀었다.
이튿날이었다. 밤늦게 도착해 감포의 주막집에서 대충 눈을 붙인 4형제는 새벽 일찍 부두에 나가 물건을 떼서 해가 중천에 똑 바로 선 정오께에 경주에 도착해서 또출이가 그렇게도 원을 하던 선지국밥에 막걸리 한 사발씩을 먹고 길은 나섰다. 한식경이나 걸어 용잠이란 마을을 지나는데 마침 동네어귀에 커다란 대나무 궤짝에 가자미를 잔뜩 넣어둔 중늙은이 하나가 마을사람들을 끌어 모아 가자미를 판다고 야단이었다.
“자, 참가지매기요, 참가지매기! 오늘 새벽 감포 앞바다에서 갓 잡은 참가지매기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
“보소, 이기 우째 오늘 새벽에 잡은 참가지매기요? 벌써 아가미가 농해서 물이 질금거리는데. 에이 여보슈!”
재출이가 아비 뻘도 넘는 사내에게 삿대질을 하자 또출이도 눈을 크게 뜨고 흘겨보았다. 불각 중에 싸움이라도 벌어질까봐 기출이가 조마조마 하는데 씨익 한번 둘러본 사내가
“아따, 그 어디서 사는 도령들인지는 몰라도 4형제가 하나같이 옹골차 거 보기도 참 좋구려. 그건 그렇고 총각 보소, 이 귀한 참가자미가 생물이라문 우째 이 촌구석까지 들어오고 보리쌀 한 되 값에 한 뭉테기를 주겠소? 그렇지만 옛 말에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명색 참까지매기라 그 본맛이 어디 가겠소? 물이 좀 갔다고 굽거나 무시를 넣고 지져먹거나 미역 넣고 국을 끓여도 좋지만 이미 서리가 내리고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이라 이대로 듬성듬성 상글어서 무시채랑 초장에 무쳐서 무도 될 것이요.”
“보소, 우리가 지금 길가는 중인데 초장이 어딨고 무시가 어딨소?”
재출이가 따지자
“사기만 사보소. 내가 그럴 줄 알고 초장하고 무시 채썰은 것을 쪼매 가져왔으니 그냥 좀 드리지요. 탁주도 있는데 그건 공짜로 줄 수가 없지요.”
“그래요?”
묵고지비 재출이의 눈이 번쩍하더니 또출이와 눈을 한번 맞추고는 기출이를 쳐다보았다.
“쪼깨만 삽시다. 그라고 생으로 묵으문 겁이나니 봉계쯤에 가서 꾸버 뭅시더.”
기출이가 얼른 돈을 꺼내 셈을 치르며 막걸리도 한 병 샀다.
다시 지게를 지고 일어나려는데 둘째, 셋째가 그새 주인의 칼을 빌려 가자미 서너 마리를 듬성듬성 썰더니 초장을 찍어 막걸리와 함께 먹기 시작했다.
“큰 성님도 좀 잡술랑교?”
“나는 생각 없다. 니나 같이 묵어라.”
“아임더. 점심 먹은 지가 금방이라.”
맏이와 막내가 나란히 앉아 한참이나 기다리자 얼굴이 불그레한 형제가 입가를 쓱쓱 문지르며 다가왔다.
“많이 기다맀능교?”
“아이다. 그래 물은 괘않터나?”
“좀 상하긴 해도 물만 하대요. 맛은 기가 차고요. 옛 말에 묵고 죽은 귀신은 화색도 좋다고 하는데 구디기 겁나서 장 못 담을 일이 뭐 있능교?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 백 년도 못 사는 인생에 그 뭐 가릴 것 있능교? 진짜 맛만 좋대요.”
“파발꾼이요?”
“아니요?”
“보발꾼이요?”
“아니요.”
“농사꾼이요?‘
“아니요.”
“그럼, 나무꾼이요?”
“아니요.”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이요?”
“장돌뱅이 지게꾼이요.”
“아하, 그래요?”
참가자미회에 탁주까지 걸친 형제는 잔뜩 신이 난 모양이었다. 작대기로 지개목발을 탁탁 두드리더니 이번엔 역할을 바꾸어
“그러면 당신은 뭐요?”
“난 노름꾼도 아니요.
“그럼 사기꾼이요?”
“아니요. 사냥꾼.”
“사냥은 무슨 사냥?”
"처자사냥, 술사냥.“
“에라이! 돌 상놈 같으니라구!”
“하하하.”
“하하하.”
역할을 바꿔가며 잘도 놀고 있었다.
이어
날 쫌 보소. 날 쫌 보소. 날 쪼매 보소.
동지섣달 꽃 보듯이 날 쫌 보소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재출이가 한 가락 뽑자 또출이도
수수밭 도지는 내가 갚아주마
구시월 되도록 기다려다오.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고개를 나를 넘겨주소.
척척 받아넘기더니 문득 걸음을 멈추고 뒤쳐진 두 사람을 한참 기다렸다. 이어 넷이 합류하자
“큰 새이도 창가를 하든지 이약을 하든지 뭐 한번 해보소.”
또출이가 채근하자
“내사 그마 신명이 없어서 노래는 못 하겠고. 재주가 없어서
이바구도 잘 못 하지만 마침 지게를 지고 이리 가니 돌아가신 아부지생각이 나는구먼. 내 입담은 없어도 쪼깨만 해보께.“
“하하, 우리 새이가 이바구를 다 한다고. 내일은 아마 서산에서 해가 뜰 끼라. 그건 그렇고 어서 해보소.”
재출이가 채근하자 험험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뒤 운을 떼었다.
“내 이건 우리 아부지가 돌아가셨을 때 곰쇠외삼촌한테 들은 이약인데 아마도 너거는 어려서 잘 모를 기다. 잘 들어봐라이.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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