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물장사 4형제 ③치만이
그랬다. 이대로 언양에 가도 되는가, 혹시 함부로 걸음을 떼어놓았다가는 치만이형이나 언양바닥의 조씨집안 사람들로부터 멍석말이나 몽둥이뜸질은 당하지 않을까 망설이던 기출이가 용기를 내어 언양에 들어온 날이었다.
마침 장날이라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조심조심 소캐집 아저씨네 집에 들러 돌아가는 판국을 알아볼 요량으로 대장간 모서리를 돌아서는 그의 어깨를 누가 툭 쳤다.
“...”
뜻밖에도 치만이가 빙긋 웃고 서 있었다. 안 그래도 혹시 마주치면 어떻게 할까, 그 태산 같은 덩치로 메다꽂기라도 한다면 뼈도 못 추릴 판이라고 내심 조마조마하던 바로 그 치만이었다.
“새, 새이야. 미, 미안해. 내가 잘못 했대이.”
“쉬이, 쉿!”
치만이가 검지를 입술에 세로로 질렀다. 그러면서 다시 어깨를 툭 치며 남천내다리쪽을 가리키며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마침 떡집에 들렀던 길이었던지 다리를 지나 봇도랑을 한참이나 걷다 언양사람이 나시랭이라고 부르는 냉이줄기가 한껏 자라 솔보대기처럼 퍼진 그늘에 나란히 앉더니 부스럭거리며 떡을 꺼냈다.
기출이가 저간의 사정을 물어도 잘못 했다고 빌어도 그저 묵묵부답 먼 산만 쳐다보던 치만이는 마지막으로
“그럼, 나는 우째야 되겠노? 천지강산에 등 붙이고 살 곳이라고는 어미가 사는 이 언양바닥 밖에 없는 판국에 얼굴에 철판을 깔고 언양에 살아도 되겠나? 도대체 우짜면 좋겠노?”
고 울먹이자
“그, 그건, 서, 석암선생님 한테 무, 물어봐라.”
하고는 휘적휘적 걸어가 버렸던 것이었다.
그날 턱 앞에 제 집을 두고서 기출이는 먼저 아랫각단 복걸 을 돌아 석암선생댁을 들렀다. 이제 막 점심상을 거두고 장터에라도 한번 나서려고 의관을 갖추던 석암선생은
“허어, 왔구나. 기출이 니가 왔구나. 내 이렇게 한번은 올 줄 알았다.”
도로 주저앉아 절을 받았다.
“어디서 무얼 하고 왔는지는 몰라도 몸은 성해서 다행이구나.”
하고 먼 산만 바라보았고 기출이도 이말 저말 함부로 지껄일 형편이 아니라 한동안 서로 가만히 있는데
“모 호방이나 순님이, 끝님이 같이 죽은 사람도, 또 호방댁처럼 가슴에 멍든 사람도, 여직 제 노릇을 못 하는 치만이나 그 와중에 벙어리 냉가슴을 앓는 기출이 니도 똑 같다. 그 북새통에 살아남은 기출이나 치만이, 큰님이, 작은님이 같은 형제도 다 제 운명이고 팔자다. 여러 말 할 것 없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 오늘은 집에 가서 서촌댁이 니 엄마를 보고 내일쯤 언양장터 니 집안아재 이 서방한테 가서 묵고 살 일을 의논해 보아라. 아마도 그 쪽 일은 나보다 그 양반이 훨씬 더 도움이 될 끼다.”
그리고는 돌아앉아 물을 찾았다. 그리 알고 돌아가라는 신호였다.
묵묵히 축담으로 내려와 짚신을 꿰던 기출이가 휙 돌아서더니
“그런데 선생님요, 선생님.”
동그랗게 눈을 뜨고 올려보더니
“지는 와 글을 배우면 안 되고 글 아는 행세를 하면 안 되고 관물을 묵으면 안 된다고 했능교?”
단도직입(單刀直入) 도발했다.
“허허 이 아 좀 봐라. 니 지금 뭐라캤노?”
“...”
다시 한참 침묵이 흐른 후에
“내가 그 때 그랬제? 사내가, 아니 사람이 사는 것은 많이 배워 벼슬을 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 부자가 되거나 이름을 널리 알리고 죽어서도 남기기보다 그저 제 식구, 제 살붙이 잘 건사하며 온건히 살아남는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니 어미 서촌댁을 모시고 그저 밥벌이나 하며 집안을 지탱할 사람이 니 뿐이다 말이다. 거기 다 니 팔자다. 그리 알거라.”
“그러문 서이나 되는 우리 형님들은 다 뭥교? 둘째 재출이, 셋째 또출이형은 저보다 힘도 엄청 신데 말입니다.”
“허허, 그건 살아보면 다 안다.”
“뭐라고요. 그라문 선생님이 맹도(明道)란 말입니꺼? 남의 집안 앞일도 다 알고...”
“허허, 그놈 참. 그리 알고 그만 가라니까?”
석암선생의 말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힘이 실렸다. 꾸뻑 절을 하고 돌아서던 기출이가
“선생님, 그라문 한 가지만 더 묻겠심더. 도대체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무슨 몹쓸 죄를 지었길래 집안이 이리 풍지박산이 되고 저는 글을 배워도 안 되고 글 아는 티를 내도 안 되는 겅죠?”
“허, 거 참. 이놈이 오늘은 아예 작정을 하고 왔나? 하긴 이 판국에 속이 편하다면 사람도 아니지. 그래 그걸 아는 것도 다 때가 있다. 길게도 아니고 한 5, 6년만 기다려라. 니가 스물너덧이나 되는 장한(壯漢)이 되고 장가를 가서 식구를 거느리고, 아니 자식을 낳아 얼라 하나쯤 안고 오너라. 그러면 내가 니 증조부이시자 나의 먼 스승 뻘이 되는 둔터출신 가별감 반동선생님의 내력과 니 집안이 겪은 전말을 이야기해주지. 알겠제?”
“...”
“가거라. 얼른. 지금 니가 갈 곳은 니 어미가 있는 집이랑 장터거리 소캐집밖에는 없다.”
“...”
그렇게 찾아간 소캐집 아저씨가 이젠 여기저기를 떠도는 객지생활을 그만 하고 장사나 한번 배워보라며 우선 권한 것이 울산이나 경주감포에서 생선을 떼다 언양장날에 파는 장삿길이었다. 기출이는 물론 힘이 장사라는 곰통 같은 위의 두 형, 재출이, 또출이와 큰형 선출이까지 4형제가 건어물이나 대추 밤 같은 언양에서 잘 안 나는 제수용품을 도부꾼처럼 떼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으련만 우선 밑천이 없는 지라 혼자 두어 번 울산 장에서 갈치랑 조기, 고등어를 사다 판 것을 시작으로 장삿길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또 엄청난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단 열 살의 어린 나이로 불각 중에 고향에서 쫓겨나 무려 다섯 해를 저 먼 강원도의 갯가와 숯가마를 떠돌다 제집이라고 찾아온 지 단 사흘 만에 또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어미 몰래 객지를 떠난 지 또 한 해 이제 열여섯의 풋 총각이 되어 근 일 년 만에 어미 품을 찾아온 기출이를 보고 서촌댁은 입을 딱 벌리고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관세음보살! 기, 기 기출아! 니가 정녕 기출이란 말이가!”
어느새 키다리로 소문난 자신만큼 훌쩍 자란 막내아들을 얼싸안고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보는 어미의 두 눈에 고인 흥건한 눈물을 보면서 기출이가 역시 두 눈 가득 고였던 눈물을 먼저 쏟고 말았다.
“어, 어무이, 지가 잘못 했심더.”
“아이다. 니가 무슨 죄 있노? 다 부모 잘못 만난 탓이지. 세상에 가뜩이나 지 애비 얼굴도 못 본 유복자로 태어난 것만 해도 억울한데 어미조차 잘못 만나 이 나이가 되도록 날이면 날마다 목구멍에 풀칠할 걱정을 못 면하고 기껏 밥벌이를 한다고 나선 길이 그렇게도 눈치에, 괄세에, 역마살이 들어 천지강산을 떠돈단 말인가? 다 내 탓이다, 내 탓. 힘없는 에미를 만난 탓이다.”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일부러 팽 소리 나게 코를 풀어 마당바닥에 던지면서 서촌댁은
“아이구, 내 정신 좀 봐라. 한 해만에 온 우리 얼라 밥할 생각도 안고 무신 새실을 까고 앉았노? 야야, 쪼매만 기다리라이. 내 금방 뜨신 밥 해주꾸마.”
서둘러 정지로 들어갔다.
어미와 동생이 눈물의 해후를 하는 동안 방안에서 여닫이 문만 빼곰 열고 그 반들반들한 눈으로 가만히 쳐다보던 큰형 선출이가
“형님, 오랜만임더. 그간 잘 기싰능교?”
기출이가 꾸뻑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왔나?”
딱 한마디 짧은 인사를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도로 아랫목의 낡은 이불을 끌어당겨 무릎을 감싸고 등을 벽에 기대고 눈을 감아버렸다. 보통사람이라면 멀쩡한 사지육신으로 하루라도 저렇게 버티기가 지루하련만 저 조그마한 덩치에 눈만 반들반들한 사내는 태어난 지 이십 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빼지 않고 저렇게 벽을 지고 세월만 죽이는 것이 지겹지도 않는지 도무지 돈을 벌 생각도 장가를 들 생각도 않는 것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온 막내아들인지라 서촌댁은 죽은 영감의 제사 때 메밥을 지르려고 아껴두었던 쌀 한줌을 꺼내 보리쌀과 무를 섞어 솥에 얹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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