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어물장사 4형제 ⑧아들 무덤 찾은 서촌댁
그렇게 쓰러진 어머니는 눈이 오고 겨울이 깊어 신불산 능선에 산불이 불에 단 철사처럼 빨갛게 타오르는 한겨울이 지나고 설이 되도록 자리에 일어나지 못 했다.
기출이는 장사를 다니지 못 하고 밤낮으로 헛소리를 하며 뻣뻣하게 굳어져가는 어머니를 주무르고 끼니마다 미음을 끓여 숟가락으로 떠먹였다. 중간에 읍내의 솜집아저씨가 몇 번이나 약간의 찹쌀과 열합을 들고 찾아왔고 자형이 죽고 난 뒤 살림이 더욱 기울어 조카 만택이와 함께 천지강산 하늘 아래서는 제일 높은 동네라 실건에 얹힌 이부자리를 내릴 때말고는 팔을 위로 들어가 고개를 들 일이 없다는 보삼마을로 이사간 귀남이 누님이 딱 한번 닭 한 마리와 달걀 한 줄을 들고 왔다가 하룻밤을 울다가 돌아갔다.
그런데 문제는 선출이였다. 맏이인 자기라도 힘을 차리고 좀 움직이며 어머니를 수발들면 기출이가 다시 장사라도 하련만은 동생을 둘이나 길바닥에 묻고 와 무슨 큰 벼슬이나 한 것처럼 여전히 아랫목에 누워 밥만 죽이고 누워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기껏 서 마지기논의 양식마저 달랑달랑해졌다. 외삼촌 곰쇠가 아내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가져다주는 쌀 몇 되, 보리쌀 한 자루로는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았다. 잘못 하면 솥을 달아맬 지경에 이른 어느 날 기출이가 일부러 선출이의 밥을 주지 않기 시작했다. 처음 하루는 배가 고파도 모르는 척 누웠다가 다음날엔 이제나 저제나 밥을 주나 흘끔흘끔 눈치를 보던 선출이가 사흘째가 되는 날에는 기출이가 뒷간에 가는 틈을 타 부엌에 몰래 들어가 솥뚜껑을 열고 시래기가 섞인 보리밥을 들고 나오려는 순간
“성님아!”
화가 난 기출이가 고함을 치자 깜짝 놀란 선출이가
“새이 니가 뭐 했다고 소두배이는 만치노? 니가 뭐 밥물 자격이 있나?”
맏형님이라고 죽은 두 형과는 꼭꼭 새이가 아니라 성님이라고 부르던 그 성님이고 뭐고 없었다. 말을 그렇게 하면서도 얼른 찬장에서 동치미 한 사발을 꺼내어 소반에 놓고 형의 손에서 빼앗은 밥그릇을 올려 방안에 얌전히 차려주며
“천천히 무소. 얹힐라.”
고개를 돌렸다.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새까만 막내에게 그렇게 당하고도 선출이는 꾸역꾸역 밥을 우겨넣더니 동치미까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비우고 마침내 숟가락을 놓고 꺼억 트림을 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기출이가 숭늉그릇을 건네주며
“성님, 잘 들어보소.”
다시 형님자를 붙이며 다가앉았다.
“우리 이라다가 굶어죽심더.”
“...”
“둘이나 죽어뿌고 근근이 서이 남은 우리 식구가 아파죽는 기 아이라 굶어죽는단 말입니더.”
“...”
“할 수 없심더. 내가 내일부터 고기장사를 하러 갈라니까 성님이 밥도 하고 어무이도 돌보소. 사나흘에 한 번 씩은 씻기야 됩니더. 안 그라면 등창이 나서 어무이가 죽심니더.”
“...”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는데 그래도 나는 내일부터 장사하러 갈 낍니더. 내가 갔다 와서도 형님이 꼼짝 안 하고 이대로라면 나도 생각이 있심더. 어디 가서 마 팍 죽어뿌든지 아니면 다시는 버든땅에 발을 붙이지 않을 낍니더.”
“...”
신통한 건 그렇게 말 한마디를 않으면서도 기출이가 물건을 떼러 가고 팔기를 사흘째 되는 날 쌀과 열합을 싸들고 오자 방안에는 이미 동김치와 짠지에다 지렁장으로 차린 밥상이 놓여있었고 기출이가 세수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선출이가 비시시 웃으며 밥그릇과 시래기국을 들고 들어왔다.
너무나 흥감해서 오늘 시래기국 맛이 죽인다고 형을 한번 추어올린 기출이가 전대에서 돈 몇 푼을 꺼내 주었다.
그렇게 장사를 몇 번이나 다니고 설 안날인 작은설까지 제법 대목재미를 본 기출이가 제수용 생선과 조율이시(棗栗梨柿)등 과일을 갖추어 간단히 아버지를 비롯한 조상들의 명절제사를 지내려고 정지에서 두 형제가 떠부럭거리는데
“기출아, 기출아, 기기...”
어디선가 모기처럼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혹시 어미가 금방 숨이라도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어 형제가 부리나케 방으로 들어가니
“기기, 기출아, 서서 선출아!”
얼굴에 땀이 흥건한 서촌댁이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앉는 것이었다.
“엄마, 엄마!”
“어무이, 우리 어무이!”
기출이, 선출이가 손을 잡자 서촌댁은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마침내 정신이 돌아온 것이었다. 죽은 남편이 돌봤는지, 아니면 지리산뱀사골의 왕포수인 아비가 돌봤는지 그 키가 멀쑥한 홀어미는 이제 둘만 남은 형제를 먹여 살리려고 설이 지나자 말자 바로 정지출입을 하며 부지런히 힘을 찾아갔다.
그렇게 정초가 지나고 대보름의 마을 동제와 지신밟기에서 불각 중에 비명횡사, 객사를 한 서촌댁의 두 아들 재출이, 또출이의 명복까지 빌어주고 난 뒤의 정월 열아흐레 날이었다. 아침부처 물을 데워 머리를 감고 정성스레 비녀를 꽂던 서촌댁이
“선출아, 기출아!”
두 아들을 불러 앉히더니
“니 니 새이들 묻은 데 알겠제?”
기출이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이런 곤란한 일에 선출이가 묵묵부답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야. 압니더.”
“그라문 오늘 가보자. 내 내 새끼들 이불은 잘 덮고 자는지 봐야겠다.”
“야.”
“닭 한 마리 잡아라. 막걸리도 한 말 받고 조피도 두어 모 사고.”
“야.”
“갸들 입던 옷가지랑 숟가락과 밥그릇들도 챙겨라. 황천은 여보다 얼매나 더 춥고 배고푸겠노?”
“야.”
이렇게 모자가 주고받는 동안 단 한마디도 없이 눈만 반짝거리던 선출이가 기어코 사단을 만들었다. 기출이가 술과 두부를 사고 옷과 그릇을 챙겨 지게에 싣기 시작하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면서 이불을 깔고 드러누운 것이었다.
혀를 끌끌 차던 서촌댁이
“아이고 내 팔자야, 서방 복 없는 년이 자식복인들 있을라꼬? 아이고 내 팔자야!”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 쉬었다. 두 형이 죽고 어미가 쓰러지고 성한 큰형마저 손끝하나 얄랑거리지 않는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집에서 어떻게나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아직 어린 막내가 혼자서 발버둥치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평생 일이라고는 안 해본 그 손이 부드럽고 성질이 유하지만 눈만 반질반질하고 게으른 서방만큼이나 약한 장남이 미워죽다가도 어느새 안쓰러운 것이었다. 그 쓰린 속은 두고라도 아직도 가끔씩 눈앞이 뽀얗게 흐리는 경황에도 악착 같이 정신을 차리고 밥을 하고 빨래를 하던 억척스런 정성이 한 순간에 그만 맥이 빠지고 마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기출이의 지게에 술통과 옷 보퉁이, 그릇과 수저를 담은 기명(器皿)통을 싣고 찹쌀을 넣고 곤 닭은 국물이 흐를까 봐 서촌댁이 들었다.
“여겜더.”
지난 가을 두 형을 묻은 도랑가에 도착하자 아직 한겨울이라 무덤자리는 지난해 묻은 그대로 약간 시든 풀들이 흙먼지를 덮어쓰고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고 곁엔 그날 떼어오던 생선상자들과 땅을 파던 삽과 괭이가 여기저기 나부라져 있었고 도랑둑 풀잎 사이로 선출이가 들고 가던 마늘 꼬투리도 보였다.
“아이고, 우짜꼬 내 새끼들아!”
서촌댁이 옳게 봉분이라고 할 것 없는 약간 도도록한 자리에 펄쩍 주저앉아 온몸을 덜덜 떨며 흐느끼기 시작하자 기출이는
“새이야, 재출이새이야, 또출이새이야, 그동안 잘 있었나?”
그동안 장사를 다니며 여남 번이나 탁주를 붓고 절을 했지만 어미가 모르게 처음 온 것처럼 넙죽 절을 하고 기출이가 일어나자
“자, 어서 묵어라, 너거 좋아하던 탁배기 하고 닭괴기다. 세상에나 그렇게도 배가 커서 날이면 날마다 배가 고파 껄떡거리 쌓더니 아이고 이 불쌍한 것들아!”
그랬다. 그 조그맣고 게으른 선출이는 장남이라고, 또 손이 부드럽고 성질이 유한 죽은 서방 복성이를 빼닮았다고 끼고 돌고 또 막내 기출이는 자기를 닮은 데다 성질이 고분고분 연하고 눈치가 빠르고 부지런하여 어떻게든 먹고살려고 하는 품이 대견해서 끼고 돌다보니 불쌍한 것이 가운데 끼인 두 놈이었다. 사람들은 쉽게 하는 말로 아비가 죽으면 이제 온 집안을 떠맡아야 하는 큰 아들은 책임상주, 부모사랑을 가장 적게 받은 막내는 눈물상주라고 하면서 가운데 끼인 지차들은 호강상주라고 폄하했지만 죽은 아비나 어미에게 특별한 사랑이나 관심을 받아보지 못한 재출이, 선출이가 어떻게 보면 가장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는지도 몰랐다.
비록 말로 표현은 않았지만 서촌댁이 두 아이를 보내고 나서 곰곰 생각해보니 먹고살 것도 없는 집에 해를 걸러 태어난 둘째, 셋째는 하필이면 그 곰 같은 곰쇠를 닮아 말도 느리고 행동도 굼뜬 것이 어디로 보나 귀여운 구석은 없었으나 갓난애 때부터 그저 배만 고프지 않으면 특별히 보채거나 우는 법도 없이 먹고 나면 자고 자고나면 먹는 순하디 순한 아이들이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순한지 자고날 때마다 그 둥근 얼굴과 툭진 턱이 자꾸만 커는 것 같더니 축담 아래를 기자 말자 마당에 굴러다니는 닭똥은 물론 반쯤 익은 풋감이든 뭐든 닥치는 데로 주어먹어도 배탈 한번 나는 일이 없었다.
“아이구, 이 금쪽같은 내 새끼들아, 그렇게도 잘 먹는 놈들을 내 명색 어미로서 배 한 번 실컷 못 채워주고. 아이구, 불쌍한 것, 내 새끼들아?”
닭다리를 찢어 땅에 던지고 술을 뿌리며
“실컷 마시거라. 이 불쌍한 새끼들아 술 한 말을 다 묵고 배불리 떠나거라!”
단지 배 한 번 넉넉히 못 채워준 것이 걸리던 서촌댁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기출이 니는 저리 좀 가거라. 내 니새이들 마지막으로 젖이나 한통씩 멕이야겠다.”
훌러덩 저고리를 벗더니 치맛말을 젖혀 백일하에 가슴을 드러내고는
“자, 재출아, 또출아, 어서어서 묵어라. 너거 둘이는 깨알받은 너거 아부지가 일이라고 안 하는 바람에 우짜든지 묵고 살라고 날이면 날마다 젖이 퉁퉁 붙도록 논밭 매고 이리 저리 뛴다고 제때 젖 한 번 못 물렸지만 생전에 울지도 않고 아무데나 엎어져서 잠만 잘 자고 잘도 쑥쑥 커더니만. 아이고, 이 불쌍한 것들아, 부모라고 만나서 사랑 한 번 못 받고 호강 한 번 못 해보고 아이구 이 불쌍한 것들아, 이 불쌍한 것들아아...”
방금 양 팔에 아이 하나씩을 안고 젖이라도 먹이는 듯, 또 엉덩이라도 토닥이는 듯 갑자기 흐뭇한 눈길이 되더니
“그래 옳지, 내 새끼들. 우짜다가 한 번씩 집에 들어와 퉁퉁 불은 젖을 물리면 아따 그놈들 오물오물 빨 심도 얼매나 좋던지 복찌처럼 배가 불러 안긴 채로 잠이 들면 볼그레한 연지 볼에 새끈새끈 숨소리도 돼지새끼처럼 새첩던 놈들아...”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회상에 잠기더니
“사내 나이 열여덟에 스물이면 있는 집에서는 장개도 보내고 남았을 낀데. 아이구, 불쌍해라. 애미애비 잘못 만나 장가 한번 못 가보고 몽달귀신 된단 말가? 치렁치렁 삼단 같던 댕기머리로 보내다니...”
어느 새 울음에 가락까지 잡혀가고 있었다.
“어무이 이라면 안 됩니더.”
부아가 나서 탁주를 서너 잔이나 마시고 어머니에게도 두 잔이나 권한 기출이가 시뻘건 얼굴로 말렸지만
“그렇게 저녁마다 불두덩이 근질근질하다고 성제간에 쿡쿡거리던 것을 귓등으로 흘렸는데 세상에나, 세상에나 여자천신 못 해보고 몽달귀신 되단 말가...”
“...”
이번엔 또 치마를 훌러덩 벗고 속 것 차림이 되더니
“불쌍해라. 내 새끼들 지난겨울 동지섣달 허허벌판 이 도랑가 집도 없이 절도 없이 방도 없이 이불도 없어 오죽이나 떨었겠나? 불쌍해라, 불쌍해라.”
저고리를 바닥에 이불처럼 덮어주며 그 끝을 여며주듯 이리저리 당기어 돌멩이로 눌러주고 있었다. 어머니가 이상하다, 저러다가 실성이라도 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깜짝 놀란 기출이가
“어무니, 아라면 안 됨더. 고만 하이소. 어무이 고뿔들면 우짤라고 그라능죠.”
말려도 소용이 없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훌쩍 기출이를 밀어내고
“아이구, 내 새끼야!”
를 울부짖기를 반복했다.
자식 앞세운 여인네의 넋두리는 끝이 없었다. 마을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싶어 슬금슬금 나와 보더니 이내 빙 둘러서서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다. 이어 노파 몇이 코를 훌쩍이거나 눈물을 훔치기 시작하고 지난번에 삽과 괭이를 빌려준 할머니는 눈물을 질금거리면서도 연장을 챙겼다.
그 할머니와 마을사람들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절을 한 모자는 다음 형편이 피어 이장을 하러 올 때까지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를 하고서야 저문 신작로를 걸어 돌아오기 시작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별세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