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65) 붉은 흙을 보면 가슴이 뛴다 - 이경

조승래 승인 2024.11.21 16:04 의견 0

붉은 흙을 보면 가슴이 뛴다
이 경

어머니는 아직도 철책 부근을 배회하는지 모릅니다
혹시 그녀를 보셨나요
고막에 총성이 박혔습니다
가슴에 총탄 구멍 뚫려 있습니다
허리에 철사 가시를 둘렀습니다
척추 속에 못다 터진 지뢰가 녹슬고 있습니다
머리에 팔만대장경을 이고 있습니다
등에 아이를 업었습니다
일제 36년을 살아냈습니다
전쟁 통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봉선화꽃 같은 피 말로 쏟았습니다
다 키운 자식 휴전선 철책에 묻었습니다
시퍼렇게 뜬 눈으로 묻었습니다
자본의 이빨이 베어먹다 남은 허벅지 성한 곳 없지만
이곳은 법국토 감자꽃 피고 법국새 우는 땅
푸른 물에 비치는 사람의 마을들
다시 산다 해도 이 땅에 아이로 태어나고 싶다던
어머니 그 위대한 국토
당신 몸을 빌리지 않고 꽃 한 송이 필 수 없습니다

- 우리 땅 나의 노래, 한국시인협회 신작시 122편, 개미

시 해설

아직도 휴전선 철책 부근을 배회하고 있을지 모르는 그 어머니를 혹시 보셨나요? 총성이 고막에 박혀 있고, 가슴에 총탄 관통 자국이 있으며 허리를 철사 가시로 둘렀고 척추 속에 지뢰가 녹슬고 있어요, 이러고도 살아 있는 힘은 불교를 깊이 믿으며 일제 강점 36년을 견디었고 전쟁 중에 낳은 아기를 청년으로 키웠는데 군복무중 아까운 목숨 산화되었고 시퍼렇게 뜬 눈으로 피눈물 흘리며 묻었습니다. 이러고도 살아있는 그녀를 혹시 보셨나요, 아시나요. 모르셔도 됩니다. 이 세상에 분명히 존재합니다.

자원도 부족한 이 나라가 거대 국가와 경쟁하여 보리 고개 높고 길어 건너기 힘든 시절 다 보내느라 ‘자본의 이빨이 베어먹다 남은 허벅지 성한 곳 없지만’ 이겨내고 지켜내었습니다. 하얀 감자꽃 아래 알토랑 같은 감자를 키우는 정신계가 높은 이 나라에는 새도 노래할 때는 천상의 아름다운 노래를 부릅니다.

‘푸른 물에 비치는 사람의 마을들’에는 굴뚝에서 파란 연기가 피어올라 밥술이나 먹고 사는 곳이므로 다른 데로 떠나고 싶지 않고 ‘다시 산다 해도 이 땅에 아이로 태어나고 싶’은 ‘어머니 그 위대한 국토’에서는 ‘당신 몸을 빌리지 않고 꽃 한 송이 필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살면 꽃도 피울 수 있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황토를 보면 붉은 피가 스민 것 같아서 가슴이 뛰지만 황토에서 자란 고구마는 바늘 속에 숨어 여문 밤 맛 같아서 구황 식품으로 그만이지요. 여기는 살 만한 곳이라는 말입니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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