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63), 잔디만 살리는 약 - 김시탁

조승래 승인 2024.11.07 10:12 의견 0

잔디만 살리는 약

김시탁

잔디밭에 약 쳤습니다 잔디 빼고 다 죽는답니다
풀 죽이는 약인데 잔디는 죽지 않는답니다
잔디만 살고 토끼풀 애기똥풀 제비꽃 민들레 모두
전멸한답니다
잔디는 살고 애기똥풀은 똥을 싸고 죽는답니다
잔디는 살고 토끼 제비 일편단심 민들레는 죽는답니다
잔디만 살고 다 죽는 약을 마당에 쳤습니다
‘좀 골고루 쳐요’ 아내가 골고루 죽이랍니다
그르렁그르렁 분무기가 사약을 뿜었습니다
잔디만 살리고 다른 것들 다 죽이는데 나흘 걸렸습니다
잔디 빼고 다 죽은 마당에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습니다

- 동행문학 2024 가을호

시 해설

풀이 마음먹으면 마당 하나 점령하는 데에 많은 시일이 걸리지 않는다. 방학 며칠 지나 학교 운동장에 가면 풀이 듬성듬성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람 발자국 없는 걸 잡초는 알고 있으며 잡초를 보면 사람들은 망설임 없이 뽑았다. 잔디밭을 보존하고 푸르게 가꾸려면 솟아오르는 풀들을 뽑아줘야 하는데 그게 힘이 드니까 잡초 제거하는 약이 발명된 것이다.

잔디만 남기고 다 죽이는 약이라서 토끼풀 애기똥풀 제비꽃 민들레 모두 전멸시킨다지만 시인은 고맙지만은 않은 것임을 나타냈다. 애기똥풀은 똥을 싸고 죽고 토끼도 제비도 일편단심 민들레도 죽으니까 시인은 마음이 편치 않고 ‘잔디만 살고 모두 다 죽는 약’을 치면서 ‘좀 골고루 쳐’라는 아내의 요구사항도 수용해야 했다. 정해진 목적에 충실하라는 당부 사항을 명심하고 분무기를 통해서 사약을 뿜었다.

‘그르렁그르렁’ 소리는 시인의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소리다. 잔디만 살면 뭐하냐는 시인의 안타까운 마음과 다르게 제초제는 사흘 만에 잔디만 남기고 다 제거해 버렸다. 잔디는 풀이 아니란 말인가, 잔디 하나 살리려고 나머지 생명들 다 앗아야 하는 의사결정을 하면서 시인은 가슴이 저렸다. 잔디 외 다 사라진 거기서 죽은 고기로 배를 채워야 하는 또 하나의 종種이 생존했다. 사람과 잔디, 둘이 살아있지만 진한 아쉬움과 외로움이 시를 통해 느껴진다.

주변에서 간혹 볼 수 있는 현상이지만 너와 나만 살기 위해 타인들을 다 제거해야만 하는 그런 현실에 직면한 시인의 아픔을 공감한다. 함석헌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에서 ‘너만은 살아다오 제발 살아다오’라는 고귀하고 아름다운 구절처럼 김시탁 시인도 당부하고 있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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