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7) 연두가 말을 걸어온다 - 김용아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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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6 09:00 | 최종 수정 2024.09.2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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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가 말을 걸어온다
김 용 아
누군가가 봉화 우구치
도로 가운데 두고 간 개
개 한 마리
차가 지나가도
먼 데만 바라본다
언젠가
저 개를 본 적이 있다
마지막 가족이 집을 나간 날
도로 한 가운데서
바라보던 곳
푸른 빛이 돋도록
떠나지 못한 그곳
오래전 집을 나갔던 가족들까지
다 모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낯익은 목소리들
연두가 말을 걸어온다
- 『시인정신』, 2024년 여름호 통권 104호
시 해설
반려동물을 키우다가 휴가철이 되면 가서 버리고 오는 사람도 있고 두고 떠나는 사람도 있다. 정을 주기에 받았을 것이고 정을 받고자 기대었을 사이가 어떤 현실에 직면하면 이별을 택하게 되는 사연이 흔하다.
누군가 두고 간 개 한 마리가 차가 지나가도 피할 생각도 안 하고 먼 데만 바라본다. 시인은 ‘언젠가 저 개를 본 적이 있다. 마지막 가족이 집을 나간 날’을 알고 있었으므로 결말을 예측했나 보다.
사람도 그렇지 않던가, 버려진 자식이 해외로 입양을 가서 일평생 뿌리를 생각하다가 부모 형제 찾아보겠다고 수소문하던 사연도 많이 보았다.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어 부모를 찾기 어려운 것이나 대화가 안 되는 동물이 주인을 잃고 무한정 기다리는 것이나 시간의 무게에 눌리어 살아가야 했고 참으로 기적처럼 우리의 간절한 소망처럼 이루어짐을 보아왔다.
저 개는 행운아다. 무작정 기다린 덕분에 떠났던 그들이 하나둘씩 되돌아왔으므로 막막함과 적막함의 어두운 기억의 흉터만 지우면 될 일이다. 연둣빛 주변이 푸른 빛으로 변하기까지의 기다림은 끝이 났다. ‘낯익은 목소리’가 천상의 노래 같을 것이다. 기다림은 만남을 위한 필수조건임을 알고나 있었을까, 신념의 마력일지도 모른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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