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문서없는 노예가 되어(7)
한참이나 걸려 제 집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열찬씨가 돌아서려는데
“형님!”
가설건물 2층에서 열찬씨를 부른 김씨가
“내가 진짜 할라카던 이야기를 안 했네. 앞으로 사람 불러 삼겹살은 절대 굽지 마이소. 어제 형님 제수씨가 나를 잡고 지 땅도 아니면서 주인행세는 물론 기분풀이 다 한다고 얼마나 흉을 보던지 내 귀가 다 간지럽어서 말입니다.”
“알았어요.”
저녁에 영순씨의 전화가 오더니 낮에 윤여사가 안 왔다갔는지 뭐 다른 말은 없었냐고 물었지만 아무 일도 없다고만 했다. 그러면서 처제들은 별말 없더냐고 묻자 그게 별말이 없을 일이냐고 반문해서
“알았어. 만나서 이야기 해. 수요일 오후에 내려갈 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다음 수요일 오후 4시 180번 버스를 맞추어 평소보다 일찍 출발했다. 원룸이 있는 황토언덕을 지나 도로가로 접어드니 가로수로 심은 벚꽃의 꽃잎이 발에 밟혔다. 길가의 언덕과 도랑둑 여기저기에 참꽃으로 불리는 연분홍 진달래가 피고 자주 빛이 도는 진분홍의 개 꽃 철쭉이 피고 있었다. 요즘 그의 뇌리를 사로잡고 있는 두 여자, 영순씨는 참꽃처럼 담백하고 진실하지만 봄이 오면 금방 산과 들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번져가듯 한번 성이나면 도무지 걷잡을 수 없는 것이 탈이었다. 그런가 하면 전생에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어쩌다 지주와 소작인으로 만난 윤여사는 개꽃 철쭉처럼 질기고 끈적끈적하여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꿀에 빠진 개미처럼 거저 붙이라는 달콤한 말에 순간적으로 오리에 출입한 이래 나름대로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음풍농월 전원생활을 즐기지만 어찌 된 셈인지 윤여사가 한 번만 나타나면 그 모든 것이 마치 깨어진 어항이나 찢어진 사진조각처럼 어지럽고 난감한 현실로 다가오며 늘 무슨 불만이 있는 것처럼 또 무슨 잘못을 캐내기라도 할 것 같은 눈빛에 사내인 열찬씨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아 대범하게 대하기가 힘이 든데 같은 여자인 영순씨,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하는 걸 제일 힘들어 하는 영순씨는 마치 하동 최찬판댁의 마님처럼 윤여사를 떠받들고 소작인의 아내처럼 허리를 굽히기가 싫을 것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성격이야. 그 긴 토지를 세 번이나 읽고 수많은 남녀주인공들의 얼크러진 인연과 뒤틀린 사랑을 논하고 클래식과 불교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이, 또 저 건너 달음산이 다정해서 두말 않고 오리의 매실 밭을 샀다는 사람이...)
180번 버스를 타고 한빛 아파트를 빠져나오며
(아무래도 부동산이 생업 비슷하니까 그런가 봐. 남편도 세무 일을 보니까 모든 일상이 돈에서 시작되고 이익으로 마무리 되는 사람들, 어쩜 자기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자기에게 돈이나 이익을 줄 사람인지 아니면 손해를 끼치거나 번거롭게 할 사람인지로 판단할지 모르는...)
하다 손님이라고는 열찬씨자신밖에 없는 차안에서
“이 번 내릴 정류소는 월내초등학교입니다. 다음은 월내시장입니다.”
친절하다 못해 과분하다 싶은 안내방송을 듣다
“옳지. 이참에 버스정류소 이름이나 외울까?)
하고 눈을 감고
“음. 다음은 관음사입구, 임랑삼거리, 새끝, 문동...)
하고 더듬어 나가는데 가끔 하나씩 빠지기는 해도
(칠암, 신평, 동백, 동백선착장, 온정, 부대 앞, 이동수산, 이동방파제...)
눈을 감고서도 해안선을 따라 꼬불꼬불한 길과 시원하게 펼쳐진 바닷가와 오롱조롱 알록달록 깃발이 매달린 어선이 소복한 항구와 다시마를 널어 말리는 널따란 공터로 이어진 마을과 새파란 쪽파 밭으로 덮여진 들판이 떠올랐다.
(이동, 이천, 동부산 농협, 일광역, 일광해수욕장입구, 후동입구 기장체육관...)
그러고 보니 그 짧은 버스노선에 일광, 이천, 이동, 온정, 칠암, 문동, 임랑, 월내의 작은 포구가 무려 8개나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동해남부선을 타면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와 줄줄이 이어지는 작은 포구와 마을, 진달래나 동백꽃이 피었던 언덕을 마치 열차에서 내려 현장답사를 하듯이 다 지나가는 것이었다.
(기장성당, 기장읍사무소, 주공아파트, 청강사거리, 대변입구, 무곡, 청강리공영차고지.)
꼭 40분이 걸려서 마침내 종점에 도달했다. 잠시 기다려 63번 버스를 타고
(장보고 숯불갈비, 오신, 내리, 당사입구, 브라보중유소, 송덕주유소, 동일주유소, 송정역, 종정해수욕장입구...)
하는데 송정역 앞에서부터 차가 밀리기 시작해 도통 나가지를 못 했다. 시계를 보니 벌써 다섯 시 20분, 이러다가 여섯 시 반 야구를 시작하기 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하겠구나 걱정하다 스르르 잠에 빠졌는데
“이번 정류소는 스펀지입니다. 다음은 해운대역입니다.”
소리에 눈을 뜨니 버스가 마악 해운대신도시를 벗어나 옛철길을 넘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여섯시 반, 안내방송 뒤로 편파방송으로 유명한 K.N.N 방송의 야구중계 이성득해설위원의 걸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데 올해도 여전히 출발이 안 좋아 이 상태라면 4강 진출이 어렵다는 탄식이었다. 문득 아랫배로 묵직하게 밀려오는 압박에 버스가 어서 목적지에 닿아 오줌부터 누어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벡스코 4거리에 접어든 버스는 다시 꼼짝을 하고 롯데는 무득점으로 2회말 공격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까 그 반병쯤 남은 막걸리를 안 마셨으면 좋았을 걸, 무슨 술이든 뚜껑만 따면 기어이 밑바닥을 보려는 못 된 버릇이 사람을 잡는구나 생각하며 얼굴이 벌개질 때까지 참고 참아 마침내 수영아파트 앞에 내리자 어디서 이 급한 민생고, 민생고가 먹고사는 문제 뿐 아니라 <먹고 싸는> 문제라고 엉뚱한 생각을 하며 망미고가도로 밑을 지나다
(옳지!)
전에 몇 번 가본 보신탕집을 향해 뛰었다.
줄기차게 벋어 나오는 오줌발을 바라보며 비로소 숨을 돌린 열찬씨가 마침 눈이 마주친 주인여자를 보며
“아지매, 수백하나에 시원하나!”
주문을 시키고 방으로 들어갔다. 텔레비전의 야구는 3:0으로 끌려가면서 4회 초가 시작되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혹시나 싶어 영순씨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야? 아직 영서집이야?”
물으니
“응 당신은?”
“난 여기 보신탕집이야 망미고가도로 다리 밑에.”
“그래? 그럼 기다려요. 내 집에 가려던 참인데 모시러 가지.”
해서 사흘 만에 만난 부부가
“홍 여사, 잘 있었나?”
“지금 잘 지낼 기분이 되겠나? 그런데 당신은 얼마나 끄실었으면 얼굴이 인도지보다 더한 흑 국놈이 되었네. 그 선크림 좀 잘 바르라니까?”
“내가 지금 선크림 챙길 정신이 있나?”
하고 마주 보고 웃다
“윤 여사는 전화가 오거나 더 이상 무슨 일이 없어?”
“없어. 당신은 혹시 밭에 오지 않았어.”
“아니야.”
“그 말이 없는 것이 더 불안해. 마치 폭풍전야처럼 말이야.”
“혹시 호영이할매한테는 무슨 이야기 안 나왔어?”
“요새 농사 잘 짓느냐고 묻는 것으로 봐서 별 일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어쩌면 윤여사가 뭐라뭐라 하소연을 해서 넌지시 던져보는 말인지도 모르고.”
“같은 자맨데 성격이나 인품이 왜 그렇게 다른지.”
“그래 14층 형님도 그 때 우리 사정이 하도 딱해 소개는 해 줬지만 동생의 마음이 자기랑 너무나 달라 늘 불안하다는 거야.”
“그래. 그런데 처제는?”
언제 나와도 나와야 할 말, 너무 결백증이 심해 끝없이 고민하고 자책하는 영신씨의 이야기, 거기에 장모 순란씨와 막내 영아까지 네 병의 깔끔이들이 무슨 말을 주고받으며 얼마나 자책을 하고 후회를 하고 그런 일을 만들어낸 열찬씨 자신을 얼마나 원망했을 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말도 마소. 그 사람들 자존심에 그게 넘어갈 일이요.”
하고 집에 들어가 세수를 하고 소파에 나란히 앉아
“반여동 처제가 젤 심하지.”
“뭐 그런 여자가 다 있느냐고, 우리 형부가 그런 머슴대우 받아가며 굳이 농사를 짓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거기에다 언니까지 마치 식모처럼 온갖 수모를 견디며 밥이나 해 바친다고.”
“뭐 그렇게나 비약을 하나?”
“아니지. 당신은 모르지만 나는 정말 자존심이 이만저만 상하는 일이 아니지.”
“그래? 나한테는 공손한 편인데.”
“당신이사 시인에 높은 사람이니까 자기도 문학도라면서 존경하겠지만 돌아서면 돈 밖에 모르는 사람이 당신 앞에선 아무 소리 안 하고 나만 보면 오만상을 찌푸리고 인상을 쓰고 시비를 슬슬 걸지.”
“그런가?”
하는데 냉장고를 열어 캔 맥주 하나를 들고 온 영순씨가
“당신도 하나?”
하고 또 하나를 꺼내와 마시면서
“당신도 피로하고 나도 피로하니까 그만 일찍 자되 당신도 내려온 김에 한 이틀 쉬고 토요일오후에나 일요일아침에 나랑 같이 올라갑시다.”
“아니야. 다음 주에 고추랑 여름채소 심으려면 밭일이 바빠. 내가 금요일 저녁에 다시 올라와 이발이랑 목욕도 좀 하고 저녁에 당신 만나서 가도록 하지.”
“그러든지.”
하고 금요일에 내려 왔는데 연산동 미혜씨가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일요일아침에 출발하면서
“처형이 밭에 같이 가겠다는 이야기는 않던가?”
“요새 성경책 베끼느라 정신이 없나 봐.”
“왜 성경책은 갑자기?”
“모르겠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그런데 성경책을 베끼면서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면서 아주 재미가 붙었어. 현서 다 키워놓고 나 보고도 해 보래.”
“그런가?”
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
“운전하면 배고플 텐데 밥이나 먹고 가지?”
“아니 집에서 머뭇거리다간 너무 늦어. 밭에 가서 당신 비닐씌울 준비하는 동안 내가 당신 좋아하는 아구를 사왔는데 아 구탕 끓여서 아침 먹읍시다.”
하고 출발해 좌천의 종묘상에서 고추 250포기와 땡초, 가지, 토마토, 오이, 호박, 참외, 수박 묘를 갖추어 사고 검정비닐도 한 통을 샀다. 영순씨가 아침을 짓는 동안 자기가 점찍어둔 자리에 각종 모종을 옮겨놓고 대견한 듯이 그 동안 자기가 일군 밭을 바라봤다. 못 되어도 150평은 능히 될 평평한 밭, 거름을 넣고 삽으로 뒤져 봉긋하게 만들어둔 밭이랑이 끝없이 이어지는 것이 어느 대지주가 부럽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봄볕에 그을린다고 밀짚모자와 수건으로 단단히 무장한 영순씨와 둘이 고추밭에 비닐을 덮으려 나오는데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휘익 지나가더니 지난주에 황서방이 일껏 세워둔 그물이 넘어져버렸다.
“아따 그 참 바람도 세네. 그렇게 바람구멍까지 뚫어도 감당이 안 되네.”
열찬씨가 허허 웃는데
“그렇게 이런 허허벌판에 오기는 와 오요?”
“아니? 오리에 처음 오게 된 것은 당신 때문 아닌가?”
“나 때문이라니? 당신이 농사를 못 지으면 당장 숨넘어갈 사람 같아 내가 나선 거지.”
“그래 알아. 그러니까 내 말은 누가 잘못 하고 누구 때문에 그런 일이 생겼는지 따지지 말자는 말이지.”
“그 거야 만사가 당신이 그 촌놈근성을 못 버려 꼭 농사를 짓겠다는 데서 시작된 것이 그렇게 됐지. 약아빠진 교장선생을 만난 것도 그렇고.”
“거기서 교장선생이야기는 와 나오는데?”
“교장선생하고 안 싸웠으면 이렇게 목돈 들이고 힘들이면서 이까지 안 와도 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당신 말은 교장선생님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성질이 더러워서 이렇게 됐단 말이지?”
“아니, 좀 참으면 누가 잡아먹나? 꼭 그놈의 공무원생활, 직원들 부려먹던 버릇이 남아 아니꼬운 일은 참지 못 하고.”
“무슨 소리. 자존심 상하는 거야 당신이 더 못 참지. 그리고 무슨 일이 생기면 자기는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쏙 빠지고 나만 죽을 죄인으로 만들고.”
비닐을 덮으려고 둘이 한 쪽씩 잡고 이랑위로 펴는데 하도 바람이 세어 도무지 버틸 수가 없었다.
“그 바람 한 번 지랄맞네.”
“누가 이 바람뿐인 이 골짝에 오자고 했나?”
“당신 지금 무슨 소리 하노?”
“생각하니까 기자 찬단 말이지. 내가 현서 보는 일만 해도 힘이 들어 죽을 판인데 그 놈의 윤여산가 지주여잔가 비위를 맞추고 내일은 또 무슨 말이 나올지 신경 쓰고 거기다 조금만 마음이 상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책하거나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남편을 다독거리는 것도 그렇고 새벽부터 운전해서 오는 것도 그렇고...”
“미안하네. 그럼 당신은 빠지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농사는 나 혼자 할께.”
“저렇다니까? 뭐든지 자기 기분 내키는 데로 하고 은근히 사람 무시하고.”
“또 무슨 생트집이야?”
“와? 내가 헛말 했나? 당신은 좀 배웠다고 우리 동생 갑린이를 얼마나 무시하고 밥술이나 뜬다고 미국에 영옥이나 영아를 얼마나 또 업신여기는지 알아?”
“무슨 소리? 내가 아니고 당신이 아니면 처제가 우째 우리 집 다락에서 신혼을 보내고 아이 둘을 낳아 갔겠노? 또 영아만 해도 그렇지. 우리 농사지어서 김장이고 감자고 옥수수고 열무고 처갓집하고 영아네 집만큼 가져가는 집이 어딨노? 내가 어데 그런 것 가지고 말하던가?”
“아따, 별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생색은?”
“뭐 생색이라고?”
“...”
하고 마주보며 씩씩거리다 서로 고개를 돌려 각자 분을 삭이고서
“비닐 안 칠 거요?”
영순씨의 말에 다시 비닐 양끝을 잡고 펴 나가는데 잠시 잠잠하던 바람이 휘익 불며 돛처럼 나부끼던 시꺼먼 비닐에 힘을 받아 열찬씨가 휘청하자
“좀 단디 하소.”
“내가 어데 단디 안 하고 싶어 그러나? 바람이 불어 그렇지.”
“내사마 다음 생에는 남자가 좀 야무지고 깔끔한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당신 시방 무슨 소리 하노?”
“문학이니 농사니, 첫사랑이니 골치 아픈 소리만 하는 남자는 딱 질색이다. 두 번 만날까 겁난다.”
“좀 고만해라.”
“첫째 우리 집이 좀 잘 살아야겠지. 그래야 처갓집 못 산다고 괄시도 안 받고.”
“좀 고만하라고 했제?”
“와 째진 입에 말도 못 하나?”
“고만해.”
바람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이상 할 기분이 아니라서 멍하니 앉았는데
“당신 손 씻고 기장성당이라도 갔다오소. 아니지. 바로 저 고개 위에 온양성당 짓고 있던데.”
“일 하다가 성당은 무슨 성당?”
“노는 입에 염불이라고 앉아 노느니 성당이라도 가지.”
“아니 당신은 또 니는 성당 댕기는 사람이 말 하는 기 와 그렇노? 당신 성당에는 미사 때 뭐 가르쳐주느냐고 트집 잡으려고 그러지?”
“무슨 소리! 내 마누라 욕하고 처갓집 욕하는 거는 참아도 성당 욕하고 하느님 욕하는 거는 못 참겠다!”
“못 참으면 우짤 긴데?”
“뭐라꼬?”
장갑과 토시까지 벗어던진 영순씨가
“당신 혼자 잘 해보소. 어차피 당신이 원해 짓는 농사니까.”
단번에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서는데
“봐라, 홍여사! 부부간에 입씰레기야 예사 제?”
열찬씨가 불러도 들은 척을 않자
“지금 가면 후회할 건데.”
주춤주춤 따라가도 돌아보지 않고
“고추를 심든지 아예 여기 살든지 당신 알아서 하소.”
부웅, 매연 한 줄기를 뿜어내고 영순씨의 차는 고개를 내려가 버렸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