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이 본 세상>
당신들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겨울의 매서운 기운이 여전했던 2024년 12월 3일 밤의 기억을 역사는 어떻게 기록할까? 봄은 이미 왔지만 12·3 계엄사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계엄사태가 지속될수록 감추어져 있던 한국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전이라고도 하지만 누가 누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단 말인가. 내란의 주체인 윤석열을 중심으로 그를 호위하는 여당 국회의원과 그 옹호자들이 절대다수의 민주시민과 전쟁을 치르겠다? 자가당착, 어불성설이다. 그런데도 대통령 탄핵을 두고 현재 벌어지는 찬반양론의 분열 심화 정도는 내란에 가깝다. 이로 인해 경제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국격은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위 보수 교인이라 칭하는 집단이 벌이는, 나라를 구하겠다고 나선 행보에 대해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기독교의 본질을 다시 성찰케 하는 사순절을 보내면서 한국기독교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떠올린다. 오랫동안 기독교 신앙을 지켜온 필자에게도 이들의 언행은 기괴할 뿐이다. 어쩌다 보수를 자처하는 교인들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됐을까? 보수 교계는 한국선교의 초창기부터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해 왔다. 그런데 왜 이들이 소위 정치권과 손을 잡고 예수의 이름을 팔며 정치 행각을 벌이고 있는가?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보수 교인들의 신앙 뿌리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뿌리에는 근본주의 신학사상이 자리하고 있다. 근본주의(Fundamentalism)는 성서의 절대적 권위를 토대로 교회 안의 변질된 신학과 더불어 교회 밖의 변질된 사회를 타자화 적대화하고 이에 대항함으로써 변화 이전의 기존 질서를 지키고자 한다. 기존 질서를 선으로, 변화 이후 새로운 질서를 악으로 단정하는 극단적 기독교 보수주의가 보수 교인들의 정치참여의 배경이다. 이들의 논리는 근본적 신앙을 지키고자 근본적이지 않은 믿음을 가진, 자신들의 신앙을 오염시키려는 이들과 투쟁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이념과 사조는 기존 세계의 정치와 사회 제도를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근본주의 신앙에 대한 믿음 때문에 한국의 보수 교인들은 반공과 동성애 반대를 현실적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12·3 계엄령 이후 드러난 보수 교인들의 탄핵반대와 그동안 벌인 반헌법적 작태가 과연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행위인가? 이들은 맹신으로 인한 사실 판단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계엄사태는 대부분의 국민이 인식하듯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용인할 수 없는 반민주적인 사건이다. 이는 바로 기독교가 그토록 신봉하는 정의와 공의에 반하는 행위이다. 예수의 정신을 뒤따르는 건강한 신자라면 이 사태에 대한 판단은 분명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왜 보수 교인 집단들은 이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탄핵반대만 외치고 있는가? 두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하나는 보수 교인들의 집단을 정치 세력화함으로써 그들이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이득을 기대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기독교의 뿌리인 예수의 정신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 결과이다. 탄핵반대를 외치고 있는 대표적인 교회들이 세속권력의 잘못에는 침묵하면서, 세속교회 왕국만을 지향해 온 모습을 확인하면 어느 정도 드러난다. 지상교회는 본질상 세속화되고 부패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단한 개혁을 지속해야 교회다운 교회로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존재할 수가 있다. 한국 보수교회는 근본주의 신학에 묶여 이 부단한 개혁을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맹신주의에 함몰되어 있다. 탄핵반대라는 정치집단화로 보수 교인들이 전락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창조적 긴장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예수의 참된 제자는 국가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오용해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할 때, 그리고 우리 헌법의 근본정신과 취지를 무시한 채 국민을 통치 대상으로만 볼 때, 선지자적 비판의 사명을 몸으로 감당하는 자들이다. 이들은 비폭력적 삶으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자들이다. 드러나지 않고 묵묵히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진정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다.
<부경대 명예교수,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