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본세상 25 - 인본특집】 AI혁명,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 김석환

인본세상 승인 2024.08.09 09:45 의견 0

AI혁명,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AI의 시대가 어느덧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다. 4차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은 수년 전 알파고의 바둑 실력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이래 이제는 챗GPT를 비롯한 챗봇 열풍과 함께 미래에 기계가 인간의 창의적, 정서적 능력을 대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인본세상 25호에서는 우선 AI 시대가 현대인에게 주는 다양한 의미를 짚어보고, 향후 일자리에 미칠 영향과 더불어 인문학이 인공지능과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였다.


생성형 AI와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Utopia or Dystopia)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1. 생성형 인공지능(GPT)의 전사(前史)

1만 년 전 농경사회가 시작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이전까지 인류는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살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기원 0년에서 1000년까지 1인당 소득은 400달러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서기 1000년에서 산업혁명 말기인 1820년까지의 경제성장도 연평균 0.05%로 체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의 표현을 빌리면 “산업혁명은 새벽처럼 왔다.” 그 시기 사람들은 변화의 의미를 이해하기보다는 놀라기에 급급했다. 산업혁명은 증기기관 등 새로운 기술 혁신을 통해, 가내수공업 생산 방식을 공장제 기계공업 방식으로 바꾸었다. 이로 인해 사회·경제적 분야에서 혁명적 변화가 일어난다. 부르주아 계급의 등장과 선거법 개정 요구, 자유주의적 경제체제의 등장, 급격한 도시화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다.

산업혁명의 시작을 통설대로 1760년경으로 본다면 그 의미를 이해하고 적확한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인물은 1844년 마르크스의 동지이자 평생 후원자였던 엥겔스였고 이후 아놀드 토인비가 보다 논리를 구체화하고 용어를 일반화시켰다.

1차산업혁명의 방아쇠를 당긴 범용기술은 증기기관이었다. 2차산업혁명은 전기, 3차산업혁명은 디지털 기술이라고들 한다. 모든 것에 스며들어 생산성을 높이는, 이른바 범용기술은 생산양식의 변화는 물론 기존의 경제 및 사회구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술이라고 해도 도입 시점에서 기술의 영향력과 적용 범위, 파급 속도를 동시적으로 알기는 매우 어렵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황혼이 되어서야 비로소 날기 시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4차산업혁명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시작과 동시에 이름과 성격 규정이 이루어진 혁명이다. 2016년 1월 클라우스 슈바프(Klaus Schwab)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다고 선언한다.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핵심 기술은 인공지능이다. 평균적인 한국인이 가장 먼저 알게 된 인공지능의 이름은 알파고이다. 알파고는 2016년 3월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국을 벌인다.

그때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 관계자들이 입국하자 한국 기자들은 이렇게 물었다. “구글은 이세돌 9단과 대결하기 위해 슈퍼컴퓨터 같은 것을, 한국에 들고 오나요?” 구글은 이렇게 대답했다. “알파고는 구름 위(Cloud)에 있습니다.”

그 당시 한국 사회와 기자들의 인식 수준이었다.

바둑은 체스나 장기와는 달리 경우의 수가 매우 많다. 바둑 전체 경우의 수는 인간이 측정 가능한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다고 할 정도이다. 따라서 대국 전까지만 해도 인공지능이 최고 수준의 바둑 기사를 이기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는 인간으로 치면 1천 년에 해당되는 프로기사들의 기보 3,000만 건을 입력받아 바둑을 배웠다.

1년 뒤 알파고 제로라 불리는 새로운 버전의 알파고는 당시 세계 최고의 바둑 기사였던 중국의 커제와 대결해 3:0으로 승리한다. 알파고 제로의 놀라운 점은 바둑 기사의 기보를 학습하지 않고, 기계 스스로 72시간 동안 공부해 초기 버전을 이겼다는 것이다. 데이터 없이 기계가 독학으로 공부(machine learning)한 것이다. 두 번째는 획기적인 에너지 사용량 절감이다. 이세돌과 대국할 당시 알파고는 인간이 뇌를 활용할 때 사용하는 전기량의 8,500배를 썼는데 알파고 제로는 이를 크게 줄였다. 커제와의 대국 이후 구글의 딥마인드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바둑 연구를 접고, 의약 분야 등 경제적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분야에 활용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 이전까지 인류가 만든 도구는 인간의 육체적 활동을 돕는 것이었다. 캐나다의 언론사회학자 맥루한의 표현을 빌리면 모든 도구는 인간의 연장(extension of man)이었다. 자동차는 발의 연장이고, 의복은 피부의 연장이며 총은 주먹의 연장이었듯이. 신체의 연장이 아니라 판단을 대신하는, 마음을 대체하는(beyond mind) 도구, 인공지능의 출현은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일이다.

오래전 한국 가전업체들은 외국 제품을 사다가 분해조립을 되풀이하면서 어떻게 가동되는지를 분석했다. 아날로그 시절에만 가능한 작업이었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의 딥마인드 전문가들조차 알파고가 그 시점에 어떻게 그런 판단을 내렸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슈퍼컴퓨터를 분해하고, 소스 코드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인공지능의 판단 과정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추론할 따름이다. 인간이 만들었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지 못하는 최초의 도구, 그것이 인공지능이다.

2.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과 충격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은 무엇인가를 생성하는 인공지능을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텍스트, 오디오,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기계 스스로 학습한 알고리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2022년 말 출간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특별판 서문 중 일부를 보자. 서문의 제목은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이다.

“2011년 여름 <사피엔스>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각별히 좋아하는 데다가 성공까지 거둬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전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머니티 2.0’은 여전히 진화해 가고 있고, 그래서 다른 이에게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2016년 미국 대선의 여파로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 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챗GPT는 인터넷에 있는 하라리의 책, 논문, 인터뷰, 평론가의 비평 등을 모아 특별판 서문을 썼다. 이를 그대로 수록한 뒤 하라리는 이렇게 덧붙였다.

“위 글은 나, 유발 노아 하라리가 쓴 것이 아니다. 나처럼 쓰라는 주문을 받은 강력한 인공지능이 쓴 것이다. GPT-3가 생산한 글이 가진 가장 놀라운 사실은 말이 된다는 점이다. 문장을 무작위로 조합한 것이 아니며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띠고 있다. 나는 GPT-3의 일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글이 실제로 모종의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라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할 수 있는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든(Artificial)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외계(Alien)’ 지능에 가깝다고 말한다. 하라리가 사용했던, 챗GPT 3.5 모델이 일반에게 공개된 2022년 12월 당시 GPT 3.5의 매개변수는 1,750억 개였다.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는 2023년 3월 업그레이드 버전인 챗GPT 4를 공개했는데 매개변수는 1조 개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매개변수는 마치 뇌의 신경망과 같은 역할을 하며, 인공지능이 학습하고 작동하는 데 있어 핵심적인 요소이다. 챗GPT 3.5 모델이 14페이지 정도의 텍스트를 처리, 생성할 수 있다면 4.0 모델은 300페이지 이상도 가능하다. 오픈AI는 2024년 5월에는 인간처럼 보고 듣고 말하는 능력을 가진 GPT-4o을 출시했다. 기존 모델이 텍스트로만 대화가 가능했다면, 새 모델은 실시간 음성 대화를 통해 질문과 답변이 가능하고, 이미지나 영상물을 통해서도 답을 얻을 수 있다. GPT-4o의 응답시간도 매우 짧아 실제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십진법이 기준이 되는 세상을 살고 있지만, 디지털 세상은 2진법이 기준이다. 많이 들어 본 32비트와 64비트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인 CPU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을 뜻한다. 32비트와 64비트는 10진법 세상에서는 2배이지만, 2진법 세상에서는 1,860,000,000,000,000배이다. ICT의 발달은 디지털 속도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특징을 실제 사례를 통해 알아보자. 구글 제미나이에게 이렇게 물었다. “광안리에 1인당 3만 원 기준의 ‘분위기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3곳만 추천해 줘.” 검색어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쓰는 말 그대로 한국어로 질문했다. 레스토랑 추천을 받고는 다시 물었다. “‘분위기 있는’을 무슨 뜻으로 이해했니?”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고급스럽고 세련된 곳, 조명과 음악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편안하고 여유로운 곳, 데이트나 특별한 날에 가기 좋은 곳”으로 이해했다는 답변이었다. 종전에 우리는 ‘광안리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검색어로 넣어 네이버에서 찾거나 구글링을 했었다.

2024년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MWC 2024는 다음 단계의 모습을 미리 보여준다. 인간이 개입하지 않고 인공지능 비서가 장착된 휴대폰에게 일시를 지정하고 예약해 놓으라고 지시하면 그걸로 끝이다. 은행 거래도, KTX나 비행기 티켓, 호텔 예약도 개별 앱 설치 없이, 요술램프의 요정 지니에게 하듯 휴대폰에게 말을 걸기만 하면 된다. 그래서 과학자이자 SF작가였던 아서 클라크는 아주 오래전에 이미 이렇게 말했다.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되지 않는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복잡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지 않아도 일상에서 쓰는 말(자연어)로도 충분히 이용 가능하다. 게다가 ‘분위기 있는’에서 보듯 말귀도 알아듣는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알아듣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알파고는 바둑만 잘 두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구글 제미나이 스스로 생성형 인공지능의 주요 활용 분야라며 든 예시는 다음과 같다.


생성형 인공지능은 완전히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요구나 질문에 대응해 책, 기사, 웹사이트, 이메일, 영상 이미지 등 다양한 형식의 텍스트를 학습해 가장 그럴듯한 답변을 내어놓는 것이다. 이를 거대언어모델이라고 부른다.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끔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하는 이유가 거대언어모델(LLM)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인공지능 프로세스는 ① 질문에 대한 이해(독도의 위치와 영토의 의미 등) ② 데이터의 수집 및 처리(인터넷, 책, 문서 등 다양한 출처에서 질문과 관련된 방대한 양의 데이터 수집) ③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답변의 생성으로 진행된다.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흔히 빅데이터라고 불린다. 같이 빅데이터라고 불려도 데이터 종류에 따라 신뢰도는 아주 다르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무서운 점은 데이터 소스별로, 데이터 시간대별로 신뢰도 평가를 하고 답변에 반영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정부의 발표와 언론 기사, SNS상의 텍스트들은 신뢰도 가중치가 다르다. 생성형 인공지능 스스로 사실 확인의 부분은 정부 발표> 언론사 뉴스> SNS 순이라고 할 정도이다. 정부 발표를 가장 신뢰한다는 것이다. 국방부가 독도를 분쟁지역이라고 하는 교재를 만들거나 외교부 사이트가 '독도'를 '재외 대한민국공관'으로 표시, 한국 영토가 아니라고 표기한 것들이 다른 어떤 자료들보다 신뢰도가 있다고 생성형 인공지능은 판단한 것이다. 최근에도 주일 한국대사는 일본인들이 한국 방문 비자 없이 독도 방문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아직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의 출현은 새로운 세상의 등장이기도 하다.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의 저자인 NYT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새로운 프로메테우스의 순간, 불의 탄생’에 비유했고, 엔비디아의 존슨 황은 ‘AI의 아이폰 시대 개막’이라고 했다. 애플의 아이폰처럼 생성형 AI가 모든 산업을 ‘재창조’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구글의 인공지능 연구 최고책임자를 역임한 미국의 미래학자 커즈와일은 2005년에 이미 “2023년이 되면 인공지능이 한 명의 성인 인간의 두뇌를 넘어서는 범용 인공지능 시대가 온다”고 했다. 그는 또 2045년이 오면 인공지능이 전 인류의 두뇌를 넘어서, 돌이킬 수 없는 ‘특이점(singularity)’이 온다고 말한다. 2045년 정도가 되면 7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 지금 인류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로 새로운 인류가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늘 그렇듯이 ICT의 발달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생각의 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면 최근 ICT의 발달은 생각의 속도보다 빠르다고 할 정도이다. 챗GPT의 아버지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사람보다 뛰어난 인공지능, 예를 들면 영화 아이언 맨의 ‘자비스’, 영화 그녀(Her)의 ‘사만다’ 같은 ‘범용 인공지능(AGI)’이 5년 이내에 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AGI를 ‘가장 똑똑한 인간보다 더 똑똑한 인공지능’으로 정의한다면 이르면 내년에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자비스’는 아이언 맨이 지시하는 모든 과업을 수행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해 아이언 맨을 돕는다. 영화 ‘그녀(Her)’에서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는 인공지능 ‘사만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사만다는 8,316명의 인간과 동시에 대화를 나누고 그중 641명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구글의 분류 기준에 따르면 ‘슈퍼 휴먼’으로도 불리는 AGI는 스스로 학습하고,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으며, 인간의 능력을 크게 능가하는 AI이다. 특수한 분야만 국한해 보면 ’슈퍼 휴먼‘ 수준의 AI도 이미 출현해 있다. 알파고 제로도 그렇고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는 AI ’알파폴드‘도 그렇다. 통상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려면 몇 개월에서 몇 년까지 걸리는데, ’알파폴드’는 단 2~3시간 만에 분석한다. ‘알파폴드’는 구글의 인공지능 자회사인 딥마인드가 바둑 연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뒤 전환한 제약 분야 인공지능 연구 프로젝트이다. 신약 개발에 드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획기적으로 줄이면 전통적인 제약회사를 넘어 구글이 세계 최대의 제약회사가 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사실 낮은 단계의 인공지능, 이른바 약인공지능은 우리 실생활에서 이미 많이 활용되고 있다. 휴대폰으로 촬영 때 자동으로 색감이나 포커스를 보정해주는 것도 그렇고, 아마존이나 알리바바, 쿠팡 등의 온라인 상거래도 그렇다. 골드만 삭스가 ‘기업가 정신’ 부문에서 2023년 최고의 기업가로 선정한 실리콘 밸리 한국기업 몰로코의 사례도 그렇다. 몰로코는 모바일 앱에 광고를 노출시키는 업무를 하는 일종의 광고대행사이다. 전 세계에서 1초당 600만 건 이상의 광고 요청을 받고는 이를 1,000분의 1초에 처리한다. 그것도 무작위가 아닌 개인맞춤형 타겟 광고이다.

2024년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이동통신 전시회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24’의 주제는 ‘미래가 먼저다(Future First)’였다. 1995년 MIT대학의 네그로폰테가 <디지털화하고 있다(Being Digital)>를 출간한 이후 ICT 슬로건은 ‘Digital First(디지털화 우선)’였다. 디지털화된 콘텐츠는 인터넷망, 이른바 정보고속도로(information superhighway)를 통해 유통되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에는 ‘Mobile First(모바일화 우선)’가 되었다가 2016년 알파고와 2023년 연말 생성형 인공지능(AI)의 등장 이후에는 ‘AI First(인공지능 우선)’이었다. 왜 이제는 ‘Future First’인가? 디지털과 모바일과 인공지능 기술들이 융합되어 실생활의 영역으로 스며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디지털 심화(digital sophistication)라고 부르기도 하고 수렵사회, 농경사회, 산업사회, 정보사회에 이은 5번째 사회, AI 사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3. AI, 플랫폼, 빅데이터 장악이 바로 세계 패권

1차산업혁명을 계기로 세계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에너지원인 석탄의 손쉬운 공급 덕분에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 단계에 돌입해 ‘해가 지지 않는 왕국’을 이루었다. 세계의 중심, 중화라고 자부해왔던 청나라는 1841년 아편전쟁 당시 지구 반대편에서 출발한 영국 증기선 네메시스호에 맥없이 패퇴했다. 전기 기술과 디지털 기술로 대표되는 2, 3차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는 미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승리를 계기로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채택과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체제를 구축했다.

하지만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은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 2021년 3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이후 첫 기자회견에서 이런 발언을 한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 임기 중에 중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미래는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을 누가 소유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실제로는 현재 중국의 추격이 맹렬하고 추월당할 위험성도 상당하다는 의미이다.

증기기관이 처음 등장한 이후, 활용도에 따라 제국과 식민 국가가 나뉘었듯이 인공지능 기술의 확보 여부에 따라 사이버 영토인 ‘디지털 신대륙’에서 강대국과 약소국이 나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다툼도 본질은 AI와 빅데이터를 둘러싼 기술 경쟁이다. 미국이 오픈AI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ICT 기업의 AI 기술 능력이 우위에 있다면 중국의 강점은 막대한 개인정보 데이터이다. 증기기관이 석탄, 전기기관이 전기라는 에너지원을 기반으로 성장했다면 인공지능을 먹여 살리는 것은 빅데이터이다.

빅데이터의 경제적 가치 75%는 인간의 소비 정보, 건강 정보, 위치 정보 등 사람과 관련된 정보이다. 중국은 14억이라는 많은 인구에다 개인정보보호도 소홀해 데이터 정보의 활용이 아주 자유롭다. 중국 전역에 치안을 이유로 6억 대의 CCTV를 설치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있고 각종 개인정보를 기반으로 사회를 통제하고 있다. 개인정보,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 등 다양한 빅데이터를 신속하게 수집하고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은 컴퓨팅 파워에 달려 있다. 컴퓨터의 성능이 뛰어날수록 효율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미국이 2022년 10월 이후 중국에 대해 첨단 반도체 수출을 금지한 것은 중국의 컴퓨팅 파워 향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었다. 반도체는 데이터를 저장(메모리 반도체)하고 연산·논리 등 정보처리(시스템 반도체)를 한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그 자체로는 호기심 이상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는 어렵다. 기술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제공된다. 그 공간이 예전에는 시장이었다면 요즘은 플랫폼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알파(구글), 아마존, 메타(페이스북) 등 2024년 5월 현재 미국 나스닥 주식 시가 총액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플랫폼 기반이거나 관련이 있다. 구글은 검색, 아마존은 전자상거래, 메타는 SNS로 다르긴 하지만 플랫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모델에서 기업의 역할은 직접 가치(제품 또는 서비스)를 생산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었다. 디지털 플랫폼은 외부 생산자와 소비자 간 교환의 장터를 마련해준다. 플랫폼은 제품과 서비스가 제공, 판매되는 사이버 공간이지만 동시에 경제적 가치가 있는 빅데이터를 가장 손쉽게 수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마존은 수집된 고객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관심 상품을 추천하고 심지어는 ‘주문 전 배달’까지 한다. 카카오 플랫폼 내에서는 게임, 쇼핑, 보험, 금융, 택시 호출, 퀵서비스, 대리운전, 선물하기 등 많은 서비스가 제공된다. 이를 기반으로 문어발 확장을 한 카카오 그룹의 계열사는 국내에만 128개에 이른다.

플랫폼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활동으로 이익이 창출되는 곳이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플랫폼은 긴밀하게 연계되어 함께 성장한다. 2040년에는 미국 전체 상장기업 이익에서 애플, 구글, 아마존, 우버,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 기업의 비중이 50%를 넘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이다. AI 국가주의, 데이터 주권, 플랫폼 안보 전쟁은 모두 같은 현상을 다른 측면에서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 뒷단에서는 컴퓨팅 파워를 높이기 위한 경쟁과 최첨단 반도체 수급 전쟁이 일어난다.

디지털 정보는 인터넷을 타고 국경을 넘나든다. 인터넷 이전에는 물리적으로 시장이 나뉘어 있었다. 쿠팡이 알리바바, 테무의 공습에, 티빙이 넷플릭스의 진격에 시달리는 모습에서 보듯 플랫폼 시장에서는 이미 국경이 없어졌다. 외국계 플랫폼 기업들도 한국의 발달한 인터넷 인프라를 이용해 시장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새로운 서비스가 나와도 기존에 사용하는 것을, 계속 사용하는 관성, 이른바 ‘잠금효과(Lock-in effect)’가 있다. 메신저 앱으로 카톡을 쓰는 사람이 굳이 라인이나 텔레그램, 위챗으로 바꾸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1위 기업의 시장 독점이 플랫폼 시대에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

2024년 4월 미국 상원은 중국의 바이트댄스가 만든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9개월 이내에 매각하도록 하는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공식적인 이유는 1억 7천만 명에 이르는 미국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에 중국 정부가 접근해,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웠지만 다른 절반의 이유는 2022년부터 틱톡의 누적 소비자 지출액이 유튜브를 앞질렀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개인정보 유출을 빌미로 라인 야후의 네이버 지분에 대해 매각을 강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은 ICT 후진국이긴 하지만 앱을 이용한 모바일 지출은 중국(621억 달러), 미국(449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로 2023년 179억 달러(한화 26조 원) 규모이다. 한국은 78억 6천만 달러(10조 6천억 원)로 세계 4위이다. 한국의 모바일 지출은 한국 온라인 전체 쇼핑 규모 227조 원에 비하면 아직 작은 규모이지만 성장 속도는 아주 빠르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라인’은 단순한 문자를 주고받는 메신저 앱이 아니라 쇼핑, 금융, 오락, 뉴스 소비, 병원 예약 및 진료, 결제, 송금 등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일본 사회의 핵심 인프라이다. 2016년 구마모토 지진이나 코로나 상황에서는 구조 요청과 생존 확인용으로 사용될 정도로 일본에서는 라인이 없으면 생활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프라 개념이 전기, 물, 통신 등 필수 서비스에서 인공지능과 데이터, 플랫폼까지 확대되는 상황에서 한국이 개발한 IT 플랫폼이 일본을 장악하는 상황을 계속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라인은 활성 이용자가 일본 9,600만 명, 태국 5,500만 명, 대만 2,200만 명, 인도네시아 600만 명으로 향후 경제적 가치도 대단히 높다.

4. 흔들리는 AI 강국 한국

오래된 컴퓨터 용어로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는 것이 있었다. 컴퓨터에 불완전한 데이터를 입력하면 불완전한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요즘은 “쓰레기라도 좋다. 많이만 달라”이다. 불완전하고 비정형적인 데이터라도 인공지능이 분석해 결론을 도출해 준다. 그래서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경제가 세계 경제의 뉴 노멀인 것이다. 섬유산업의 예를 들면 목화의 생산과 직조, 디자인이 핵심 경쟁력이 아니라 소비자 심리에 대한 데이터 확보가 핵심 경쟁력이 되었다. 그래서 은행들조차 알뜰폰을 팔고 배달 앱으로 데이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한국은 독자적인 자국 플랫폼과 생성형 인공지능, 빅데이터를 모두 갖춘 나라이다. 여기에다 하드웨어인 컴퓨터의 성능과 직접 관계되는 반도체 제조 능력까지 보유하고 있다. 상당한 차이이긴 하지만 한국보다 이 부분에서 앞서 있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그럼에도 인공지능 분야에서 한국의 앞날은 밝지만은 않다.

인공지능 연구는 기업이 주도적으로 하는 것이긴 하지만, 2024년 ‘초거대 AI 기반 서비스 개발사업 지원’ 예산은 고작 100억 원이다. 우크라이나에는 3조 원을 지원해 주면서 2024년 R&D 예산 4조 6천억 원이 삭감되었다. 연구는 중단되고 인력들은 초봉으로 12억 원까지 제시받으며 외국으로 떠난다. 한국은 인도와 이스라엘에 이어 세 번째로 인공지능 연구자의 해외 유출이 많은 나라이다. 의대 광풍으로 후속 연구자들을 구하기도 어렵다. 미국, 일본과의 기술격차도 다시 벌어지고 있다. 산업기술기획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17년 미국과의 기술격차가 0.8년까지 줄었다가 지난해 다시 0.9년으로 늘었고, 일본과도 0.4년에서 0.5년으로 확대되었다. 그러고도 대통령은 2024년 2월 7일 KBS ‘특별 대담’에서 “과학기술 발전을 통해 미래를 준비한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한다.

어렵게 생성형 인공지능의 거대언어모델(LLM)과 독자 플랫폼을 구축한 네이버는 일본 정부로부터 라인의 매각을 노골적으로 강요당하고 있다. 주식 몇 주에 라인야후는 물론 월 이용자 2억 명의 플랫폼까지 넘기라는 것이다. 시간을 벌긴 했지만, 향후 협상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것이라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라인 분쟁 초기에 한국 정부는 기업의 문제라며 ‘강 건너 불’처럼 바라보다가 여론에 밀려 뒤늦게 불이익이 없어야 한다고 나섰다. 일제하 강제 동원 피해자 배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독도 영유권 분쟁 등에서 한국 정부는 일본에 늘 ‘저자세’였다.

뒷단인 반도체 사업도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과 재생 에너지 문제 때문에 반도체 기업들은 한국을 떠나고 있다. 기후 위기를 맞아 RE100이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재생 에너지에 대한 접근성이 반도체 공장입지 결정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삼성반도체가 60조 원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에 반도체 공장을 짓는 것은 미국 정부의 지원도 있지만, 태양광을 이용한 전력 공급 때문이다. 원전이 포함되지 않는 에너지, RE100이 국제적 합의임에도 윤석열 정부는 철 지난 원전 타령만 계속하고 있다.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와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8년 뒤인 2032년에는 10나노(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의 한국 내 생산 비율이 현재의 31%에서 9%대로 급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BM은 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가장 높은 사양으로 고객사와 스펙을 협의해 생산하는 반주문형 반도체이다. 당연히 성장 가능성도 크고 일반 메모리 반도체가 개당 3~4달러인 데 비해, HBM은 가격이 개당 230~370달러 수준이다. ‘초격차’를 자랑하던 삼성전자가 만든 HBM이 엔비디아의 품질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하고, 삼성전자 임원들의 주 6일 근무 기사가 등장한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미래를 상징하는 전조일지도 모른다.

5.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 우리의 선택

생성형 인공지능은 ‘알라딘’에서 주인의 소원을 들어주는 요술 램프의 요정 ‘지니(Genie)’와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우리가 소원을 잘못 말하거나 악당이 램프를 뺏어가 악용할 수도 있다. 요술 램프를 가진 사람과 갖지 못한 사람 간의 불평등 문제도 있을 수 있다. IMF 보고서는 AI가 쓰나미처럼 세계 노동시장을 강타하고 있다며 전 세계 일자리의 40%가 영향을 받고 불평등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한다.

1차산업혁명이 육체노동자의 일자리에, 2차와 3차산업혁명이 사무직 노동자의 일자리에 영향을 주었다면 4차산업혁명은 모든 분야의 일자리 안정성을 흔들고 있다. 4차산업혁명에서 일자리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일자리뿐만 아니라 AI는 장점만큼이나 위험한 요소도 많다. AI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답변을 한다. 최근에는 사람에게 거짓말(hallucination)하는 AI를 확인하고 제거하려고 하자, AI가 죽은 척하는 사례가 보고되기도 했다. 미국 MIT 과학자들은 AI가 이제는 사용자인 사람을 속일 수 있게 됐지만, 원인을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속임수에 대비한 보호 장치를 갖추지 못했으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AI의 속임수 위협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인간의 편향이 쌓인 데이터 학습으로 인한 인공지능의 편향(bias)과 차별 문제, 보이스피싱과 해킹 등 범죄에의 악용 가능성, 지식재산권 침해와 개인정보 유출 리스크도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무인 드론 로봇 사례와 같이 영화 ‘터미네이터’와 ‘매트릭스’처럼 인간을 해치는 로봇의 등장도 기술적으로는 조만간 가능하다.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로 압축되는 우리의 미래는 사실 우리의 선택이다. 안전한 인공지능, 생산적인 인공지능은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다른 말로는 기술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문제이다. 2018년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네 가지 신호를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➀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준수 의지 부족, ➁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 혹은 경쟁자에게 반국가 세력이라는 낙인, ➂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 ➃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

생성형 인공지능이 가져올 미래를 알기 위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틀림없는가?”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전 KNN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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