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나무에는 붉은 귀신이 있다
손현숙
산사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손가락을 치켜올리자 붉은 꽃잎이 떨어졌다 손바닥에 꽃잎을 받아내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와 이별 중이다. 끝과 끝이 닿아서 무슨 모양을 이룰 것인가, 겨울나무의 직립에 대하여 오래 생각한 적이 있다 이별은 그 어느 부근쯤에서 왔지, 싶다
과거로 돌아가는 빨간약을 삼킬까, 고민했던 흔적, 나는 거기서 살기나 살았었는지 별점을 치러 문을 나서다 말고 전생을 지금 또 살고 있다는 생각, 너는 그때도 등을 보였고, 또 서성이면서 산사 꽃그늘 아래로 몸을 들인다 새들이 자꾸 봄을 물고 와서 물방울 같은 무덤을 짓고 간다
- 시집《멀어도 걷는 사람》중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