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51)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고영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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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21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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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
고영
그제는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피기를 기대했지만 하루 만에 피는 꽃은 없었다 성급한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성급하지 않았다 질서를 아는 꽃이 미워져서 어제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을 보기를 기원했지만 하루 만에 민낯을 보여주는 꽃은 없었다 아쉬운 건 나 자신일 뿐, 꽃은 아쉬울 게 없었다 섭리를 아는 꽃이 싫어져서 오늘 또 수선화를 심었다. 하루 만에 꽃이 되기를 나는 또 물끄러미 기다리겠지만 포기할 수 없는 거리에서 꽃은, 너무 멀리 살아 있다
한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
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
고영 시집 《당신은 나의 모든 전말이다》를 읽었다. ‘2024. 시인동네 시인선 244’
이 이야기는 죽음을 담보했던 한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렇게 홀로 삶을 뒤집어쓴 채 이승에 남겨진 화자는 여전히 그녀를 바라본다. 수선화 앞에서 시간을 버틴다. 그러니까 이런 행위는 꽃이 피고 또 지는 것으로 그녀를 보내주는 그만의 독특한 제의이자 은유로 보아야 한다.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를 할 수 없는 사랑 앞에서 그는 오히려 환한 죽음을 본다. 아름답지만 섬뜩한 남성 화자의 담담함 속에는 “포기할 수 없는 거리에서 꽃은, 너무 멀리 살아 있다.”로 삶도 죽음도 모두 하나다. 그렇게 여백을 두고 화자는 “한 사람을 가슴에 묻었다./그 사람은 하루 만에 꽃이 되어 돌아왔다”로 수선화, 그녀는 꽃으로 환치 혹은 환생한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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