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45) 푸른빛 하늘, 심종록

손현숙 승인 2024.10.26 09:00 의견 0

푸른빛 하늘

심종록

가을강

꼽추 춤사위의
풀려나가는 옷고름 같은 가을 강

나는 그만 끝장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속살 탐하
려다 발부리 채여 꼬꾸라져서는 희열인지 오열인지 모를
것들을 토해냈던 것인데

본 척도 않고
윤슬 반짝이며 흘러가는 가을 강

강력하고 요망스러운
소문 사이로

푸른빛 하늘

심종록의 시집 《의기양양하게 쓸쓸한》을 읽었다. ‘2024. 달아실시선 082’

기지개 몇 번 켜고 하품 한번 크게 한 것뿐인데 가을이 왔다. 고개를 꺾어 바라본 먼 곳은 아뿔싸, ‘푸른빛 하늘’이다. 어디 숨을 곳 하나 없이 숨 막히게 투명한 가을 하늘, 가을 강, 가을 물, 당신의 뒷모습. 이상하게 아픈 것들은 가을하늘을 닮아 있다. 화자는 지금 가을 강 앞에서 “윤슬 반짝이며 흘러가는” 것들을 본다. 왜 가을 강은 아프고 서럽던 “꼽추 춤사위의/풀려나가는 옷고름”을 풀어헤치는 것인지. 왜 시인은 “희열인지 오열인지” 속으로 우는 울음 같은 것을 토해내고 있는지. 모든 것은 흘러가고 모든 것은 다시 돌아온다. 그러니 당신, 조금 아파도 괜찮다. 지금은 가을이고, 당신보다 조금 더 가을을 앓고 있는 시인의 전언은 푸른빛 하늘이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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