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43) 이별의 알고리즘, 이미산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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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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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알고리즘
이미산
다시 온 여름과
다시 떠날 여름 사이
매미가 있다
최선을 다했어요 고백하는
울음이 있다
장미꽃이 가시줄기 위에서 발그레 웃을 때
손가락을 모으는 장미
잠 속으로 이동하는 한 줌의 웃음
한 줌의 붉음
만개의 뒤편엔
헛간을 채우는 그 여름의 민낯들
이별은
초라해진 최선 같아
중얼거리는 허물 같아
울지 않아도 뜨거운 여름
슬프지 않아도 아름다운 울음
이별 후기로 남겨지는
매미라는 이명(耳鳴)
이미산 시집 《궁금했던 모든 당신》을 읽었다. ‘2022. 여우난골’
이별은 언제 오는가. 만남과 최선 그 이후에 오는 환멸일지도 모른다. 장미가 장미의 논리에 갇히듯 사랑과 사랑 그 사이에는 언제나 이별이 싹을 틔우고 있다. 시인은 여름과 여름 사이에 ‘다시’라는 부사어를 쓰고 있다. 시의 첫 부분 “다시 온 여름과/다시 떠날 여름 사이”는 사랑도 이별도 수순처럼 오고 간다는 선언적 문장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그리고 다음에 이어지는 ‘매미’는 여러 의미를 개방하는 슬픔의 기표로 발화한다. 그것은 울음. “손가락을 모으는 장미”의 붉음 뒤에 오는 “헛간을 채우는 그 여름의 민낯”처럼 시인이 바라보는 사랑은 결국 이별을 향해 가는 “초라해진 최선”이거나 “중얼거리는 허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耳鳴으로 남게 되는 당신이라는 이름. 지울 내야 지울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궁금했던 모든 당신》이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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