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7) 강가에서, 이영광

손현숙 승인 2024.08.24 10:12 의견 0

강가에서

이영광

떠남과 머묾이 한자리인
강물을 보며,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미워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강을 보면서,
누군가를 따지고
무언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모르고서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서

이영광 시인


이영광의 시집 《살 것만 같던 마음》을 읽었다. ‘2024. 창비’

마음은 우리 몸속 어디에 살고 있는 것일까. 그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을 우리는 또 잘 따라는 가고 있을까. 이영광의 시집은 참 지독하게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런데 왜 이 시인은 자기 마음 하나도 힘든 세상에 타인의 마음과 상처를 이리도 집요하게 살피는 것일까. 한 때는 타인에게서 상처를 받을까 봐, 미리 상처를 입힌 기억도 허다하다. 그런 시시한 것들에 오래 붙들려 살았다. 그러다 문득,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치사한 일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란 것이 늑골을 치고 달아났다. 그렇게 강가에서 시인은 지금 “떠남과 머묾이 한자리인” 강물을 보고 있다. “무언가를 따지고/누군가를 미워”하면서 흘러간다. 그러나 다만 천지는 불인(天地不仁)하고 모든 것이 내 마음속에서 짓는 화인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되뇐다. 그런데 시인은 이제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없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차라리 상처받은 시인 자신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까맣게 모르고서” 이미 흘러갔거나 흘러가야하는 시간과 관계와 사랑 앞에 섰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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