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5) 화부가 되어, 장인수

손현숙 승인 2024.08.10 09:00 | 최종 수정 2024.08.17 10:46 의견 0

화부가 되어

장인수

불을 굽는 인생은
불쏘시개처럼 살다 가는 것
중년을 건너는 것은 장작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
마른 등걸도
제 육신을 점등하는 모닥불이 된다
정신도 일렁이는 화농이 되는 것
섹스도 모닥불처럼 일렁이는 것이지만
소멸의 따스함에 닿는 것
잉걸불도 뜨는 것
곁을 주고, 등을 쬐다가
불빛과 함께 글썽이는 것
잘 익은 술처럼
장작은 스스로 출렁거리며 타는 것
모닥불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들기도 하지만
솔로 캠핑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해
씨앙씨앙 사르며 스러지는 것

장인수 시인
장인수 시인의 그림
장인수 시인의 그림
장인수 시인의 그림


장인수 시집 《슬픔이 나를 꺼내 읽는다》을 읽었다. 2024. 문학세계사

진실은 무엇이고,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가,라는 질문을 몸에 담고 살았다. 장인수 시인의 시집을 읽고 난 후, 어렵지 않게 대답을 얻은 것 같다. 행동. 오늘을 사는 것. 하루를 일평생처럼 움직이는 것. 여한 없이 자신을 사르는 것. 망설이지 않는 것. 밝고 건강하고 유쾌하게 대상에게 건너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 해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 몸으로 겪은 것들을 언어로 환원하는 것. 몸의 감각을 철저하게 믿는 것. 지금, 당장,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 뜨거운 불 앞에서도 쉬지 않는 화부처럼 “단 한 사람을 위해/씨앙씨앙 사르며 스러지는 것” 버려진 고양이나, 나나, 너나, 모두 안쓰러운 생명이라는 것. 잉걸불 같은 삶에 방점을 찍으며, 오늘도 여전히 환해질 것을 믿는 시인, 장인수의 시집을 읽었다.

손현숙 시인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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