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0) 불문율, 한혜영

손현숙 승인 2024.05.18 09:45 | 최종 수정 2024.05.18 11:29 의견 0

불문율

한혜영

비가 오는 까닭을 따져 묻지 않는 것처럼 지천으로 널린 햇볕도 그러려니 하는 것처럼

슬픔이 내게로 오면 묻지 않고 젖을 거다

안개에게 먹혀도 투정이 없는 달처럼 고양이 푸른 눈에 떠도는 전설처럼

슬픔이 기억으로 오면 섬처럼 잠길 거다

한혜영 시인

한혜영 시조집 〈뒷모습에 잠깐 빠졌을 뿐입니다〉을 읽었다. ‘2024. 가히’

어느 만큼의 비탈길을 걸어 본 사람은 안다. 올 것은 오고 또 갈 것은 간다는 것을. 그 누구도 섭리를 거역할 수 없다. 한혜영 시인은 미국에 거주하는 시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의식주 모두를 한국식으로 산다. 언어가 다른 그곳에서 우리의 언어를 치열하게 탁마 한다. 그리고 그녀는 행동한다. 고국이 그리우면 어느 날, 훌쩍 인사동으로 부산 광안리로 또 용인으로 천안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매우 맹렬하고 또 적극적이다. 그 모든 에너지가 어디서 나는 건지 궁금했는데, 이번 시집을 읽으면서 다 알게 되었다. 시인은 늘 죽음을 사유한다. 그래서 오늘은 오늘만, 오늘의 기적에 감사한다. 삶과 죽음의 섭리를 몸으로 익혔기에 오늘 살아있음을 몸에 각인한다. 그러니까 그것은 불문율, 그것에 대항하거나 저항하기보다는 “묻지 않고 젖고” 또 “섬처럼 잠”기는 연습이 그녀 삶의 과정이다. 그것이 시인의 책무이고 또한 그녀 개인의 불문율이기도 하다. 아, 그런데 이 시집은 시조 시집이다. 위의 시는 2수짜리 연시조로 현대적 감각 발화를 한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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