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28) 완벽한 타인 - 한명희

손현숙 승인 2024.05.04 07:00 | 최종 수정 2024.05.04 08:31 의견 0

완벽한 타인

한명희

그것은 길 건너의 소문에 불과 한 것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라도
남의 것이라면

어제는 꽃이 하나 꺾이었고
오늘은 별모퉁이가 하나 부서졌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거리의 소문에 불과한 것
꽃에게도 꽃은, 별에게도 별은 풍문일 뿐

속을 다 태운 채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은
사막의 소문에 불과할 뿐

소문이므로 우리는 기억하지 않고
풍문이므로 우리는 추념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끔찍한 고통이라도
그것이 남의 것이라면

한명희 시인

시집 《스위스행 종이비행기》을 읽었다. ‘2024. 여우난골’

생의 끝을 눈치챈 시인은 당차고 명징하다. 그래서 세상에 저항한다, 맞선다. 죽음은 삶처럼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사람에 기대지 않는다. 간보지 않는다. 그저 그냥 바라본다. 자신을, 타인을. 오만 세상의 비열과 비극과 비참을. 왜냐하면 타인이 내가 될 수 없다는 명제는 내가 타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비극. 그러나 현실임을 안다. 그래서 사물을 응시하는 한명희의 일갈은 담담해서 무섭다. 그리하여 거침없이 높은 곳을 향하는 그녀의 언어는 뭐랄까, 나는 그리움이라 쓰고 당당함이라 읽는다. 시집을 읽는 내내 아프면서, 그러나 아름다웠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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