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27) 흔적 - 김원중

손현숙 승인 2024.04.27 10:38 의견 0

흔적

김원중

그가 떠난 후 이레가 지나갔다
아침에 손톱을 깍고 저녁엔 안경을 고쳐 쓴다
그리움은 저만의 통로를 타고
살갗으로 스민다
그의 온기와 소리는 얼어붙었는데
마지막까지 그를 간직한 것은
매일 밤 온몸이 일그러지던 베개였다
그가 머리를 뉘었던 곳
깊게 파인 골에 아른거리는
향기 뭉긋하다

추억은 상처가 피어낸 꽃
흔적을 지우는 또 다른 흔적

기억에 접붙인 나무
속으로만 하얀 꽃을 피운다

시집 《문인 줄 알았다》을 읽었다. ‘2014 천년의 시작’

그리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은 사랑이 지나간 자리에서 더 확실해 지는 경우가 있다. 정을 나누었던 누군가 당신 곁을 떠나가고, 그를 기억하는 방법은 사물의 어떤 형태 속에서 상기되기도 한다. 시인은 “추억은 상처가 피어낸 꽃”이라 발화한다. 상처와 꽃은 상충적인데 시 속에서의 울림은 알싸한 슬픔을 동반한다. 그런데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꽃, 추억이다. 기억에 “접붙인 하얀 꽃” 아름다움이다. 그것은 마치 대학 강단에서 31년 강의를 마치고 《고별강연》을 하는 오늘, 시인의 심정처럼 “향기 뭉긋”한 무엇이다. 오랜 동안 아름다운 선생으로 살았던 김원중 교수의 그동안에 갈채를 보낸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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