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21) 풍경, 서하
손현숙
승인
2024.03.16 10:57
의견
0
풍경
서하
못둑길에 산딸기, 볼이 쏘옥 들어가도록 빨아 당긴 담뱃불 같다
길 가던 노부부가 신기한 듯 들여다보는 산딸기, 할아버지가 풀숲 헤치며 성냥불 긋듯 미끄러져 들어가 “오만 손길이 다 댕기갔네” 하나씩 따 모은다
오므린 손바닥에 따 모은 산딸기, 바알간 불덩이를 할머니 입으로 하나씩 밀어 넣어 주며 “맛이 어떻노, 어떻노”
할머니 볼 발갛게 불 붙어 탄내가 솔솔 난다
시집 《외등은 외로워서 환할까》을 읽었다. ‘걷는사람 2023’.
이제 곧,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봄이 와글거릴 것이고, 꽃에서 열매까지는 그리 먼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세상을 걷다 문득, 시인은 지극의 한 장면을 만난다. 결국 시는 대단한 무엇이 아니고, 잊을 수 없는 한 장면을 잊을 수 없게 만드는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독자는 “볼이 쏘옥 들어가도록 빨아 당긴 담뱃불 같”은 매혹 앞에서 오래 서성거릴 것이다. 그러니까 삶은 그저 간절했던 한 장면, “맛이 어떻노, 어떻노” 다정하게 묻고, 고개를 끄덕이는 세상이면 족하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