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20) 사루비아, 신현정

손현숙 승인 2024.03.09 12:48 의견 0

사루비아

신현정

꽃말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사루비아에게

혹시 병상에 드러누운 내가

피가 모자랄 것 같으면

수혈을 부탁할 거라고

말을 조용히 건넨 적이 있다

유난히 짙푸른 하늘 아래에서가 아니었는가 싶다

사루비아, 수혈을 부탁해.

故 신현정 시인

시집 《빨간 우체통 앞에서》을 읽었다. ‘2024’

사루비아 꽃말은 열정과 사랑. 간절하면서도 강렬한 지금의 감정을 나타낸다. 위의 시는 시인이 병상에 누워있으면서 발표한 마지막(홍일표 시인의 발문 중에서) 시다. 생의 마지막까지 자신의 심정을 시로 표현했던 시인의 그때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죽어도 살고 싶다’라기 보다는 피어나는 생기였을 것이다. 꽃에게 부탁하면서 꽃처럼 사라질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랐던 마음. 신현정 시인은 갔지만, 그의 시는 남아서 우리에게 붉은 피를 수혈한다. 이제 봄, 얌전하게 입술 다물어 다시 한 번 일어서 보자. 지천으로 흐드러질 꽃들처럼.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