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18) 아가위 열매가 익어간다
손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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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4 08:00 | 최종 수정 2024.03.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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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위 열매가 익어간다
손현숙
밤의 천변을 걷는다
물살 에도는 물목을 보며
나는 어디까지 살았더라,
만월에는 공손하게 허리 구부려
너의 안부를 묻는다
생각이 오고 생각이 가는 동안
저 달은 왜 자꾸 문을 여는가
그제는 남쪽에서 소식이 왔다
너는 거기서, 나는 여기서.
옆구리에 달을 끼고 오래 걸었다
만월은 야해, 아니 너처럼 슬퍼,
취중이겠지만, 느닷없는 고백에
달은 얼음의 각을 깬 불의 완성이다
혼자 델까봐 멀리 달아났던 장면
여전히 달 따라 길을 나선다
그림자 따라오거나 말거나 지금은
아가위 열매 붉게 익어가는 때,
너는 나를 잊어도 좋다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을 읽었다. ‘리토피아’ 2023.
인저리타임에서 연재를 시작했던 '손현숙 시인의 시의 아고라'가 벌써 118회를 맞이했다. 햇수로는 벌써 4년이다. 매주 한 권씩 시인의 시집을 읽고 거기에서 한 편씩을 골라 시 전문과 함께 단상을 싣는 것을 포맷으로 한다. 사실 이 과정은 그리 간단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업을 기꺼이 수행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개인적으로는 쏟아지는 시집을 모두 읽어내지 못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권이라도 정독을 해야겠다는 소망이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시인이 시집을 내고 사인을 하고 주소를 적고 우체국에서 수신자에게 보내는 일은 거의 전쟁과도 같은 일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집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따라서 시인은 사실상 모두 가난하다. 그러나 그 가난이 정신의 승리임도 잘 알고 있다. 그리하여 여기 '손현숙 시인의 시의 아고라'는 무위하게 시를 살고 쓰고 또 나누는 시인들을 존경하면서 격려하는 마음이다. 또한 동시대를 기리는 시의 예술혼을 조금 더 널리 독자와 함께 하고 싶은 열망이기도 하다. 지면을 열어주신 인저리타임의 ‘조송현 대표님’께 감사를 드리며,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 독자분들께도 감사한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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