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14) 매생이국, 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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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06 06:16 | 최종 수정 2024.01.1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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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생이국
김윤
얼어붙은 겨울 아침
매생이 국을 먹는다
진초록 바닷풀이
흰 사발에 담겨서
향긋하고 시원한
겨울바다 소식을 전한다
갯벌에 대나무 발 펼쳐
맺히는 눈물처럼
정결한 바다가 길러낸 것
부지런한 내외가 쪽배에 엎드려
찬 손으로 뜯어 올린 것
사발 속 파란 바다에
흰 눈이 펄펄 날린다
김윤 시집 《기억은 시리고 더듬거린다》을 읽었다. ‘서정시학 시인선 208’ 2023.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일은 당신과 마주 앉아 숟가락 부딪히는 거. 다정하게 눈 맞추며 한 끼 식사를 나누는 일. 날씨도 맵찬 겨울 아침 매생이국 한 그릇 앞에서 시인은 생각한다. 아마도 이 작은 일상은 기적, 작고 소박한 이 사건의 과정과 수고와 손길에 대해 시인은 수굿하다. 그러니까 시인의 시가 보여주는 장면은 간단하다. 그러나 그 장면 속에서 펼쳐지는 정황은 그리 간단치가 않다. 하나의 사건 그리고 관찰만으로도 아름다운 시가 된다는 사실. 매생이국 담아내는 한 그릇 사발 속에는 광활한 바다와 흰 눈과 가난한 부부의 찬 손까지도 향긋하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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