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01) 새싹, 김정수
손현숙
승인
2023.09.23 10:53 | 최종 수정 2023.09.27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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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
김정수
새의 부리는
나무뿌리에서 생겨난다
겨우내 말을 아껴
날개를 품는다
구름의 흙이 일순 온순해지면
잔뿌리 같은 새들이
일제히
싹을 물고
가지 끝으로 날아간다
물오른 하늘에서
새 떼가 돋아난다
김정수의 시집 『사과의 잠』를 읽었다. ‘청색종이’ 2023.
생명은 어느 지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어가는 게 삶이라는 말은, 이 시 앞에서 하지 말자. “새의 부리”는 곧 “나무뿌리에서 생겨난다”. 오래오래 지난한 과정을 거치며 “말을 아껴” 이제야 “날개를 품는다”. 그렇게 “잔뿌리 같은 새들”은 복수의 생명이 되어 “하늘”을 향해 “날아간다”. “새 떼”가 되어 날아간다. 어느 지점에서 모두의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새싹이다. 우리는, 지구의 생명체는 모두 새싹이어서 함께 간다. 가만히 생각해 보자.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도, 이 시를 읽는 당신도 모두 ‘새싹’이다.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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