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11) 갠지즈, 박형권

손현숙 승인 2023.12.08 14:14 | 최종 수정 2023.12.12 12:19 의견 0

갠지즈

                                           박형권

 

 

  문을 열 때 한 처녀가 꽃 한 다발을 들고 난감해 있다
  꽃 한 다발 어울리게 들이지 못하는 내 혈관으로
부끄러운 가난이 역류한다
  너무 과분한 꽃을 두고 가는 처녀에게
  나는 편지를 한다
  장밋빛
  장미에게 편지를 한다
  다시 꽃필 수 없는 내 스무 살과 꽃피는 그녀의
스무 살 사이에
  강이 흐른다
  꽃보다 쌀을 가져올 걸 하고 눈물짓는 처녀와 쌀보다
꽃을 가져온 게 좋았다고 생각하는 나 사이에
  갠지즈가 흐른다
  그날
  편지를 한다
  지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다 실패한
  한 발자국 앞의 연민에게

부산에서 태어나 2006년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도축사수첩》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새로움에 보내는 헌시》 《중랑악부》, 장편동화 『웃음공장』 『돼지 오월이』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나무삼촌을 위하여』, 청소년 소설 『아버지의 알통』을 냈다. 김달진창원문학상, 천강문학상, 수주문학상, 애지작품상, 오장환문학상, 구지가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을 받았다.
부산에서 태어나 2006년 『현대시학』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도축사수첩》 《가덕도 탕수구미 시거리 상향》 《새로움에 보내는 헌시》 《중랑악부》, 장편동화 『웃음공장』 『돼지 오월이』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나무삼촌을 위하여』, 청소년 소설 『아버지의 알통』을 냈다. 김달진창원문학상, 천강문학상, 수주문학상, 애지작품상, 오장환문학상, 구지가문학상, 한국안데르센상을 받았다.

- 박형권 시집 《내 눈꺼풀에 소복한 먼지 쌓이리》을 읽었다. ‘걷는사람’ 2023.

시인의 시 앞에서 무릎 꺾는다. 텅 비어서 꽉 찬 허공처럼. 사랑이 너무 많아서 보이지 않는 마음처럼 질문 없이도 내 생의 허접과 자본의 욕심을 본다. 거미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가는 사이 허기진 꿈을 깜빡 놓을지도 모르겠다는 시인의 일갈에 바람의 방향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도 모른다는 것을 왜 놓치고 살았던 걸까. 누구에게나 닿을 저 편이 있듯이, 그러나 누구나 또 닿지 못할 그곳에 대하여 사색을 놓친 것 같아서 잠시 들숨은 횡격막을 붙든다. 시집 속에 들어있는 이 많은 이야기 속의 사람들은 손에 쥔 것이 없어도 참으로 당당하다. 피기 위해 지는 꽃처럼 꼭 다문 입술은 피처럼 붉다. 나는 수순처럼 문밖으로 쫓겨나서도 희망을 갖게 되는 이, 이상한 경험.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면서 울음이 달다. 시가 사람을 반성하게도 하는구나, 시와 시인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생각한다. 12월이니까.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