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25) 저 목련의 푸른 그늘 - 손현숙

손현숙 승인 2024.04.13 08:00 | 최종 수정 2024.04.13 08:46 의견 0

저 목련의 푸른 그늘

손현숙

햇살이 꽃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꽂고 정오를 넘는다 나는 매일 저것들의 생기를 빤다 밤이 오면 입술에 흰 피를 묻힌 채 잠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모르는 척,

나는 아침을 밟으면서 싱싱하다 꽃잎 한 장 넘기는 것은 내가 나를 낳는 일, 깊게 팬 쇄골의 그늘, 목젖까지 부푸는 저 목련의 푸른 그늘,


시작메모:

나는 목련이 무섭다. 저 흰 피 같은 투명이 그렇고, 주먹처럼 단단한 침묵도 감당이 안된다. 무엇보다 뒤를 살피지 않고 저가 저를 저버리는 단호함은 차라리 경쾌한 죽음을 동경하게도 한다. 그러니까 저 짙고 비릿한 환영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배반, 숭고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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