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4) 꽃잎, 이병초

손현숙 승인 2024.06.22 08:00 | 최종 수정 2024.06.25 23:07 의견 0

꽃잎

이병초

점점이 떨어진 꽃잎들
벚나무가 간신히 내려놓은 숨결
차마 밟기 아깝다
혀 밑에 감춘 말들이 쏟아져 버렸을
땅에 납작해진 저 숨결 숨결에 아직도
따뜻한 시간이 째깍거릴 것 같다

이병초 시인


시집 《이별이 더 많이 적힌다》을 읽었다. ‘2024. 걷는사람’

아마 그때 그 시간은 꽃이 피는 시간 아니고, 꽃이 지는 시간이었나 보다. 시인은 그 벚꽃 “바람이 불 때마다 사르르르 꽃잎이 휘날리는 길”을 “풍 맞아 다리 왼쪽을 절름거리시”는 어머님을 모시고 소풍 다녀온 날이었지 싶다. 어머니 이제는 늙어 꼬부라져서 숨결 점점 희미해지시면서도 “이를 어쩐디야 어쩌면 좋다야” 연신 감탄이시다. 바람에 속수무책 떨어지는 저 꽃잎들. 시인은 그 속내를 숨결이라 발화한다. 저 아름답고 속절없는 사라짐에 대하여, 섭리에 대하여 차마 발로 밟을 생각은 엄두도 못 내면서, 쌍계사 벚꽃 그늘까지 꽃잎을 따라갔었던 모양이다. 그나저나 “교협 교수들은 2019년 9월 19일 본관동 앞에 대학 정상화를 요구하는 농성 천막을 쳤“(「농성일기」 중에서 일부) 던 일은 어떻게 되었을까. 시인의 근황 여전히 ”녹다만 쓸개 간장은 더 납작“ 해졌으면 어쩌나.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발화의 힘』, 대학교재『마음 치유와 시』▷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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