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8) 그 바다로 가는 길, 김성오

손현숙 승인 2024.08.31 09:00 의견 0

그 바다로 가는 길

김성오

아내가 해산에 들어간
방문 앞에서
함께 들어가지 못한 나는
문이 가장 완벽한 벽임을 본다.

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듯이
아내도 아내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을까?
나는 자꾸만 떨렸다.

무작정 열릴 때를 기다려야 하는 문은
겨울이었다 추웠다 적이었다
덜덜 떨며 등을 돌린 채 안을 엿보는 것이
분만실 문 밖의 남자였다.

아내가 기어이 문을 여느라 악전고투다
안팎으로 잠긴 문은 아닐까?
보이지 않는 문이 슬그머니 나를 연다
그렇게 내가 잠시 열려있는 사이
거짓말처럼 정말 거짓말처럼
으―앙! 문이 열렸다
아! 바다다.

김성오 시인. 전남 여수 출생.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1995년 『현대시』
신인상 등단. 2001년 문예창작기금 숳혜. 〈시천지〉 동인. E-mail : sungo-k@hanmail.net


김성오의 시집 《살아있는 것은 다 아파요》를 읽었다. ‘2024, 북인’

시인이 나서 자란 곳이 아마 바다 어느 부근이었나 보다. 바다를 보고 자란 그는 바다를 버리고, 바다를 그리워하면서, 결국은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리고 오늘, 그 한없는 바다를 온몸으로 받아 안았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아내와 그는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한 사람은 안에서 또 한 사람은 밖에서 생명의 탄생을 기다린다. 지금 이 시간 아기도 문을 열기 위해 악전고투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내는 그 모든 광경에서 밖으로 밀려난 사람이다. 저 문이 열려야 바다를 볼 수 있는데, 바다로 가는 길은 늘 막막하다.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문이겠지만, 아무나 들어설 수 없는 문. 더러는 시인에게만 가혹하게 닫히기도 했던 문, 그 문이 열렸다. 유년의 바다에서 잃어버렸던 “아이에게 엄마가 없다는 것이/어떤 것인지 알아?”/곡소리 뒤에 숨어서 영정을 기웃거리던” 상복의 한 아이에게 지금 막 엄마가, 아니 바다가 “으―앙! 문”을 열고 돌아왔다, 거짓말처럼.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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