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139) 체념증후군, 문정영
손현숙
승인
2024.09.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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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증후군
문정영
불안의 모서리를 잊어버리고 싶어
잠의 가면을 썼습니다
나를 가둔 세상의 경계가 지워졌을까요
까맣고 하얀 점 위에서 내가 나를 쳐다볼 뿐이네요
사랑보다 불안은 몸으로 먼저 느껴져
네게 멀어져야 네가 다가오는 것을
잠으로 배웁니다
한없이 펼쳐지는 어둠에는 천사도 없습니다
꿈에서 늘 만지는 것은 어제였지요
꿈과 천사는 희망에 가까운데 나는 그 경계
어느 善에도 없습니다
‘누가 나를 들여다보는가 꿈 밖으로 뛰쳐나와서도 길을 잃었는데’*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사랑을 체념하면 오래 잠에 빠진다는데
내게 가장 무서운 사랑 체념증후군!
시집 《술의 둠스데이》를 읽었다. ‘2024. 달을 쏘다 시선’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시인의 시를 읽고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나는 그의 껍질만 보았을 뿐, 그의 시를, 내면을 깊게 읽어낸 적이 없다. 이렇게 따뜻한 청심淸心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몇이나 될까. 이렇게 애틋하게 움켜쥐지 않는 사랑을 이야기 한 시인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는 이제 “장난칠 여름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하는 말. “네게 멀어져야 네가 다가오는 것”을 체감하는 지금 그는 비로소 “마지막 사랑을 목숨으로 기다려야” 할 때임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가을 초입에서야 사랑, 행성을 건너온 뜨거운 발바닥에 관한 그의 시를 읽고 이해한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멀어도 걷는 사람》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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