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5) 꿈마실 - 박완호
조승래
승인
2024.09.1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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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마실
박 완 호
아버지를 낳는 꿈을 꾸었다
녹슨 대못 같은 팔다리, 질끈
눈 감고만 싶어지는 흉터들이
살았을 적 그대로인
젊은 아버지가 나이 든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를 들러서 왔는지,
도깨비 풀 달라붙은 바지가
땀에 절어 풀럭거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술기운에 일그러진 말소리가
수멍의 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버지, 하고 부르면
저만치 달아나고 마는
한 사람이 다녀간 길을
밤새 걷다 오는 중이었다
-『시와시학』, 2024. 여름호, vol. 134
시 해설
젊은 날의 아버지는 녹슨 대못 같은 팔다리에 흉터가 선명하게 꿈속에 나타났다. 시인이 ‘아버지를 낳는 꿈을 꾸’어서 만난 것이다. 아버지는 지금의 시인보다 젊은 나이에 타계하셨고 나이 든 아들을 어린 아버지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장면이다. 시인의 의식 속에는 본인도 나이가 좀 들었고 ‘물끄러미 쳐다보는’ 아버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지 궁금했다.
꿈속의 아버지는 마실을 나오셨는데 ‘어디를 들러서 왔는지, 도깨비 풀 달라붙은 바지‘를 입은 아버지는 땀에 젖어 있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물꼬 열린 논의 물이 쏟아져 나오듯 많은 말씀을 하셨다. 자식이라서 아버지 말씀이 듣고 싶고 뭐라도 말씀 좀 해 주십사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되고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어떻게 타개해 나갔을까 하고 정답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시인은 꿈마실 나오신 아버지를 불러본다. ‘아버지’, 하지만 아버지는 대답도 안 하시고 ‘저만치 달아나고 마는’ 꿈이다. 아버지로부터 새로이 가르침 받을 것이 없을 만큼 나이가 들어버린 시인이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다. ‘한 사람이 다녀간 길을’ 갔다가 아버지를 만나고 시인은 ‘밤새 걷다’가 왔다. ‘녹슨 대못 같은 팔다리, 질끈 눈 감고만 싶어지는 흉터들’을 이제는 마음속에서 놓아버릴 때가 되었다. 꿈속에서 ‘아버지’라고 부른 그 마음으로 치유가 된 것이므로.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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