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3) 아버지의 청명주 - 유수화

조승래 승인 2024.08.29 10:09 의견 0

아버지의 청명주

유 수 화

아버지가 즐겨하던 청명주를 채주 하는 날
추적추적 비는 오고

빽빽하기도 헐렁하기도 한 아버지의 시간이
용수에 출렁이던 그날, 술방처럼
층층이 쌓아놓은 술병상자에
눅눅한 습기가 아버지 모습으로 오종종 앉아있다

췌장암 수술을 완강하게 거절하시는 아버지
집을 팔 수는 없다며 등을 깊이 기울여
호주로 세대주로 보호자로 남편으로 마시던 청명주

추석 이틀 전, 아버지 기일
여과하여 한나절 가라앉힌 청명주
아버지의 함자 아래 제주祭酒로 올린다.

- 『PEN문학』, 2024. 5.6호, vol. 179

시 해설

과일 향과 누룩 향의 조화가 잘 된 화이트 와인 같은 청명주를 즐기셨던 아버지를 생각하는 날은 시인의 마음같이 ’추적추적 비가‘ 왔다. 아버지는 추석 보름달이 채 익기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

’빽빽하기도 하고 헐렁하기도 한‘ 시간을 사셨던 시인의 아버지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한 성품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아버지의 모습을 ’술병상자에 눅눅한 습기‘에서도 찾는다. 재산을 자신의 치료에 다 써 버릴 수는 없으니 ‘췌장암 수술을 완강하게 거절’ 하신 아버지는 집을 팔지 못하게 했다. ‘등을 깊이 기울여’서 거북 등 인양 외부의 충격을 보호자로서 막아내려고 했고 청명주로 마음을 달래시던 모습을 시인은 연상 한다. 시의 곳곳에 시인의 감정이 느껴지는 시어들이 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 ‘눅눅한 습기’ 등이 아버지 모습을 떠올린다.

아버지 기일을 맞이하여 ‘여과하여 한나절 가라앉힌’ 마음으로 채주한 청명주를 ‘아버지의 함자 아래 제주祭酒로 올’리는 시인의 경건한 마음이 보인다. 아실 것이다. 한 방울도 맛을 볼 수도 없으시지만 해마다 새 술 올리는 자식의 마음을 알고 흠향하소서,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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