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50) 오후의 정경 - 박영욱
조승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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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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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정경
박 영 욱
주변에서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화단의 가지런한 초목들
먹이 찾아 이리저리 다니는 새들
놀이터의 아이들과
지켜보는 아이들의 엄마들
흔한 오후의 예사로운 정경이지만
지금은 소중하게 내 앞으로 다가온다
언젠가는 볼 수 없게 될 장면이 아닌가
먼 후일에 맞닥뜨릴 일로만 여기고
덥석 그런 생각들에 점령당하고 싶질 않아서
그때그때 먼발치로 뚝뚝 떨어뜨려 놓았다
설마하면서 그냥 놓치고 있는 것이다
오후의 묵직한 햇살이 마당에 내려앉는다
한쪽으로는 널찍한 그늘이 만들어졌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듯
내 삶을 바라본다
세월에 끼어서 바둥대는 내가 보인다
- 『동행문학』, 2024 여름호 vol. 7
* 시 읽기
흔한 오후의 예사로운 정경을 시인이 나열하면서 시를 전개한다.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화단의 초목들, 먹이 찾아다니는 새들, 아이들과 지켜보는 아이들의 엄마들, 이는 가까이에서 늘 볼 수 있는 일상들이다. 이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생명의 유한성 때문, 즉 언젠가는 내가 볼 수 없는 현상들이다.
지금 시인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일들이고 먼 후일에 당면해야 할 사실이지만 미리부터 그러한 생각으로 지배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때마다 멀리 거리를 두고 있다. 예외를 기대하면서 ‘설마’ 하다가는 당황하게 될 일이 발생할 것이다. 미리 예측 가능한 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간접 경험을 많이 한 것이며 그래서 시인의 연륜을 짐작할 수 있다. ‘오후’라는 표현과 ‘묵직한 햇살’로 추정한다. ‘넓직한 그늘’도 보인다. 한 걸음 뒤에서 여유있게 바라본 것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보듯’ 살피다 보니 그게 바로 ‘내 삶’이었다. 시인은 톱니바퀴처럼 얽혀 흐르는 ‘세월에 끼어서 바둥대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 발견은 깨달음이고 기쁨이 된다.
이 시는 박영욱 시인의 등단 작품이다. 청록파 박두진 시인이 아버지라고 소개하면 박 시인이 가려질 우려도 있지만 일흔을 바라보면서 등단한 시인은 ‘경이로운 숲’과 ‘쓸쓸함의 숲’을 파헤쳐 보고 싶다고 하니 시詩적 DNA가 독자들 가까이에서 유전됨을 볼 수 있겠다.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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