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래 시인이 읽어주는 좋은 시 (44)】 오늘 아침 달걀 - 함태숙

조승래 승인 2024.06.20 08:00 | 최종 수정 2024.06.20 10:40 의견 0

오늘 아침 달걀

함 태 숙

그 한 판의 마지막 하나였음을 알게 된다면

우주의 고독이 몰려올까/하얀 분화구처럼 핏기 없이

세계의 발자국을 모아 진동수를 세던/호주머니 속 작은 태양은

무심히 그의 궤도를 굴러가고 있을 뿐

어떤 칼끝이/이 타원형을 방해할지 의문이 없다

전선을 휘감고 쓰러진 전신주처럼/한꺼번에 모든 전구를 켜고

그 어떤 날들이 지속될 테니까

전류를 흘리며/가령, 심장은 다른 곳에서 켜질 테니까

우리들은/다만 손과 손을 만들 뿐이다

텅 빈 한 판의 사랑을 조심스레 운반할

- 시집 《가장 작은 신》, 현대시 기획선 97

시 해설

한 판에 모여 대기하던 달걀이 차례대로 불려 나가고 마지막 하나 남은 것을 발견했을 때 ‘우주의 고독이 몰려올까’, 시간을 기억하던 시계는 그 흐름에 아무런 저항이 없고 달걀도 그 타원형 계도가 벗어날 것에 무심하다. 털옷을 입고 알을 깨고 나오느냐 단황 그대로 나오느냐에 따라 시간이 이어지거나 멈추거나 할 달걀의 운명과 무관하게 시간은 간다. 깃털을 끌고 가거나 은하계를 돌리며 가거나 중량에 대한 마찰계수가 전혀 없는 시간의 본성은 절로 간다.

전신주는 제 몸 밟고 지나간 전선들이 그 끝의 모든 전구에 불 주렁주렁 밝히고 전류가 통하는 그 어떤 날들이 지속되는지를 모른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불이 켜는 심장은 계속 존재한다. 끝이 아니므로 우리들은 서로에게 다가가 ‘다만 손과 손을’ 내밀뿐이다. 달걀 한 판 같은 무대, 마지막 달걀 하나가 남아서 오늘 아침을 의미 있게 한다. 우리는 맞잡은 손으로 여전히 사랑을 조심스레 운반해야 한다. 그 한판은 생명들이 가득 차 있었던 무대였기에 ‘텅 빈 한판의 사랑’이 아쉽고 무겁다. 텅 비워졌으니 다시 채워질 일만 남았다.

조승래 시인

◇ 조승래 시인은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인협회 이사, 문학의 집 서울 이사,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구)포에지창원 '시향문학회' 회장,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함안문인회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취미생활로는 검도를 하고 있다(4단. 대한검도회 영무검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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